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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부모님들이 주를 이루는 플레즌튼 지역에 있는 분교에서 2월 9일 열렸던 설날잔치의 모습-한국 입양아 딸과 함께 참석한 미국 어머니도 함께 떡국을 먹고 학생들의 세배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 신나는 한국학교 이스트베이 분교 설날잔치 사진 영어권 부모님들이 주를 이루는 플레즌튼 지역에 있는 분교에서 2월 9일 열렸던 설날잔치의 모습-한국 입양아 딸과 함께 참석한 미국 어머니도 함께 떡국을 먹고 학생들의 세배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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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한국학교 표 복주머니

"이번 설날잔치에는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넣을 수 있는 복주머니를 주면 어떨까요?"                                                                                 "복주머니를 어디서 구하지?"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이번 설날에 한국학교 학생들에게 나눠준 세뱃돈 주머니다. 한국 같으면 복주머니를 사서 줬겠지만 미국에서 복주머니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라 설사 복주머니가 있다 하더라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특색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미국에는 직접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판매하는 곳들이 있어서 쉽게 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천들과 알록달록 끈도 구했는데, 이걸로 어떻게 복주머니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J 씨였다. 일일이 손으로 박음질을 하자면 30개 정도의 복주머니를 만드는 데에만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기에 J 씨의 세탁소에 가서 재봉틀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남편이 직접 들고 가서 박아왔다. 그런데 그걸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주머니는 만들었지만 그것을 세뱃돈 주머니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리미로 눌러주는 작업이 필요했고, 아이들이 어깨에 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끈을 달아야 했다. 고민 끝에 가위로 일일이 구멍을 내고 거기에 끈을 넣어 핀셋을 가지고 매듭을 짓는 방법으로 끈을 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놓은 주머니가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그래서 학교의 로고를 붙이기로 하였다. '신나는 한국학교'라는 학교 이름이 들어간 로고를 붙이고나니 그런대로 설날 세뱃돈 주머니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2~3일을 주머니 만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설날 잔치 하루 전날에는 떡국을 만들 재료들을 장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직접 제작한 세뱃돈 주머니로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 신나는 한국학교 표 세뱃돈 주머니 직접 제작한 세뱃돈 주머니로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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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까지 만든 떡국 고명


목요일 밤에 늦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바로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구분하여 은근한 불에 타지 않도록 부치기 시작하였고, 간 쇠고기도 양념하여 볶아 놓고, 김도 썰어서 고명을 준비해 놓았다. 사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해 주시는 떡국을 먹기만 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부터는 매년 이 일을 해 왔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렇게 고명을 준비하고나니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금요일에 있을 사우스베이 분교와 토요일 아침에 있을 이스트베이 분교,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있을 외국 학생들을 위한 어드로이트 칼리지 설날 잔치에 쓸 고명을 한꺼번에 준비하려니 적어도 60명분 이상을 준비하여야 했으니 웬만한 잔치상 준비에 버금가는 양이었다.

설날 잔치 당일날에는 남편도 한복을 갖춰입고 윷놀이 우승팀에게 줄 상품부터, 직접 그려서 만든 자석용 윷놀이판, 윷, 한복이 없는 학부모님들을 위한 한복까지 빠짐없이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노래 동영상까지 틀어놓고 한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렸다. 하나 둘씩 예쁜 한복과 예쁜 머리 장식까지 하고 설날 잔치에 들뜬 아이들이 들어왔다.

"혜은이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 한복!' 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복 입고 윷놀이 한다고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몰라요."

아이들이 얼마나 설날 잔치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였다. 한 시간 동안은 각 반에서 설날에 대해서 공부를 한 후에 휴식 시간에 떡국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과자를 먹고 싶어서 떡국은 먹기 싫다고 하던 아이들까지도 두 그릇씩 뚝딱 해치워서 부모님들을 위한 떡국이 모자를 정도였다.

떡국을 맛있게 먹는 한국학교 유치부 학생의 모습
▲ 맛있는 떡국 잘 먹었습니다! 떡국을 맛있게 먹는 한국학교 유치부 학생의 모습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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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도 하고 세뱃돈도 받고

떡국을 먹고나서 모두 모여서 세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가장 어린 유치부 학생들도 의젓하게 부모님들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도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부모님께서 보시는 사극을 보고 배웠다면서 어른들도 힘들다는 큰절을 아주 예쁘게 하는 희수도, 황진이 옷을 입고 황진이 춤을 춘 이솔이도, 의젓하게 세배를 하여 부모님과 보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기도 했다.

세뱃돈을 받기 전에 아이들은 직접 제작한 신나는 한국학교 표 주머니를 하나씩 받았는데,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진 주머니들 중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색깔의 주머니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주머니를 걸고 세뱃돈을 모으다보면 아이들의 웃음도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빨간 치마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왜 빨간 옷을 입었는지 안다고 하면서 중국 설날이라서 그렇지 않느냐고 묻던 준영이도 이제는 음력 설이 중국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생각된다.

집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세배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고사리같은 손을 모으고 세배하는 아이들 모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사리같은 손을 모으고 세배하는 아이들 모습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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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찾아오는 행복한 명절 증후군

매해 추석과 설날이면 남편과 나는 무척 바빠진다. 미국으로 온 후에는 한국에서 설이나 추석을 쇤 적이 거의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명절을 준비할 일이 없었으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이 된 이후로 추석이나 설날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날들이 되었다.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이 진심이 아닌 역설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자진해서 학교의 일을 도와주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다. 세뱃돈 주머니를 직접 박아주기도 하고, 윷놀이 판을 자석판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떡국을 직접 날라 주는 봉사까지 마다하지 않는 우리 남편이야말로 나와 함께 매년 행복한 명절 증후군을 앓는 고마운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남편들이나 마음적으로 힘든 명절증후군을 앓는다고 하지만 우리 남편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뿌듯한 그런 행복한 명절증후군을 앓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명절, 남편들도 두렵다구요> 응모글
'신나는 한국학교'는 '어드로이트 칼리지' 의 부속 한국학교로서 2007년 9월에 개교한 어린이 대상의 한국학교입니다.



태그:#설날, #명절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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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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