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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빼앗긴 비통함으로 한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국은 조국이 아니라 어머니를 죽인 원한의 나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어머니를 죽인 조국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재중동포 오연(25·한국명 '오정화')씨는 할아버지의 조국 대한민국을 '원한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러나 원한에 사무친 저에게 용서를 가르쳐 준 분이 계신다"면서 "중국동포들과 함께 하는 김해성 목사"라고 밝히면서 조사(弔詞)를 이어 나갔습니다.

 

"단속반원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어머니를 천국으로 떠나보낼 수 있는 길이기에 단속반원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김아무개 팀장을 비롯한 5명의 단속반원들은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사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 때 단속반원들은 죄책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오보다 용서의 마음을 품은 스물다섯살 난 딸의 당부

 

재중동포 고(故) 권봉옥(50·중국 길림성 용정시)씨 장례식이 5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2호 영안실에서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고인은 지난달 15일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에 쫓기다 추락사 했습니다.

 

이날 장례식은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졌습니다. 무리한 단속으로 고인을 추락사 하게 한 단속반원들의 장례식 참석과 사과요구를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격앙된 전화가 오간 끝에 서울출입국 관계자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지만 단속반원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북경사범대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서 재직 중인 고인의 딸은 재원(才媛)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용서의 품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증오와 원한을 품기보다 용서의 마음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그는 서울출입국 관계자의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정부에게 세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무자비한 단속을 방지할 수 있는 '인권보호지침' 마련"과 "단속반원들의 '인권교육'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비극을 겪는 동포의 자녀들이 생기지 않도록 '동포들의 자유왕래'를 조속히 보장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울러 경고의 목소리도 남겼습니다.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와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저는 반민족적이고, 반인권적이고, 반생명적인 한국의 출입국 정책을 세계에 고발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4시 인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됐습니다. 고인은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14일 딸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우리 딸이 너무 보고 싶다, 이젠 돌아가겠다, 구정에 고향 가는 티켓을 미리 예약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정을 앞둔 5일 한 줌의 재가 되어 딸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딸은 이런 눈물의 기도로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 그 무서운 단속도 없는 나라, 빚에 쪼들리고 독촉 당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육신의 고통과 슬픔도 없는 나라 천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세요. 하나님 품에 안기셔서 이 땅의 고통을 영원히 잊어버리세요."

 

 

노무현 대통님께 호소합니다!

 

다음은 오연씨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호소문 전문입니다.

 

국정에 수고하시는 대통령님의 노고에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지난 1월 15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체류 단속 과정에서 8층에서 추락하여 숨진 고(故) 권봉옥씨의 외동딸 오연입니다.

 

저는 어머님을 잃은 비통함에 마냥 잠겨 있을 수 없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님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에서 세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억울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망 사건을 냉정히 짚어본 결과 법무부 단속반의 법집행은 법과 도의를 벗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속반원들은 어머니를 간접 살인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고 현장을 네 번 가보았습니다. 경찰과 호텔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단속반원들은 정부의 단속 집행서류도 없었고, 복장도 국가 공무원의 정복 차림이 아닌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야구모자까지 쓰는 등 불량배 같은 차림이었다고 합니다. 한 증인은 저에게 "주유소 습격사건을 봤느냐"고 하면서 "그 영화에 나오는 습격대 사람들 같았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단속반원과 마주친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802호 방으로 피신한 뒤 문을 잠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단속반원들은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매우 살벌한 말을 사용하면서 벼랑에 몰린 어머니를 압박했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야 말로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쥐도 달아날 곳을 두고 쫓으라고 했는데 단속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로에 선 어머니는 목숨을 끊을 듯이 조여 오는 단속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피신할 마지막 창구나 다름없는 창문에 매달렸다고 보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보니 그 창틀에는 어머니가 매어 달렸다가 미끌어진 손자국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단속반원에 쫓긴 연약한 여성인 어머니는 힘이 다하면서 손을 놓쳤을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는 "쿵" 소리와 함께 추락하였습니다.

 

단속반 김아무개 팀장은 어머니가 추락한 그 순간, 추락 지점인 L호텔 1층 옆 마당과 벽 하나 사이인 1층 현관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옆 건물 사람들이 L호텔에 달려와서 누군가 추락했으니 신원을 확인해 보라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추락을 야기한 8층의 단속반원과 추락에 의한 "쿵"소리를 선명히 들었을 팀장은 비극적인 사건을 알고도 외면했습니다.

 

이로 인해 옆 건물 경비원 아저씨가 경찰과 병원에 전화로 신고했습니다. 호텔 사장께서 달려 나와 추락한 어머니를 옆 건물 보일러실로 옮길 때도, 병원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이동될 때도 단속반원들은 전혀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텔 8층에서 1층까지 엘리베이터로는 15초 가량 걸립니다. 하지만 긴박한 5분 동안 단속반원들은 호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원들에게 부여한 직무와 권한은 무엇입니까? 임무수행 중에 숨 돌릴 틈새도 주지 않고 목숨까지 빼앗는 것도 서슴지 말며, 오직 실적만을 위해서 일하라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까? 임무수행 중에 생긴 돌연 상황에 간섭치 말고 발뺌만 하라고 하였습니까?

 

중국동포는 죽어도 좋을 만큼 중죄인이 아닙니다!

 

 

우리 중국동포들 중에 어느 누가 불법체류자(미등록)가 되고 싶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단속반의 단속과 강제추방에 가슴 졸이며 살고 싶은 사람이 누구 하나 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중국동포들은 가족과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 온갖 차별과 불안을 참아내며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은 동포를 중죄인 취급하며 무자비한 단속을 일삼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생명을 잃어야 했습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노동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조국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희 어머님은 조선시대 당시 세도가이자 양반 중의 양반이라는 안동 권씨입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상당수의 조선 사람들은 일제에 항거하고,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주했고, 조국의 전쟁과 분단 등으로 인해 싫든 좋든 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공민이 됐지만 한시라도 조국을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북경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조국의 언어를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국을 잊지 말라고 가르친 어머니를, 몸이 부서지도록 고생하면서 딸자식을 키운 어머니를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물론 직접 손으로 떼밀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억지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단속반원들은 강박과 압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어머니를 떼밀어 죽게 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억울해서 잔인한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딸이 왔는데도 어머니는 이별을 나누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차디찬 영안실에 누워 계십니다.

 

단속 인권 지침과 중국동포의 자유왕래를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를 잃은 비통함으로 한국에 도착했을 때 저는 울부짖으며 '한국은 조국이 아니라 어머니를 죽인 원한의 나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어머니를 죽인 조국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한의 나라에도 용서를 가르쳐주는 좋은 목자님이 계셨습니다.

 

중국동포들과 함께하는 김해성 목사입니다. 어머니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목사님은 서둘러 빈소를 마련하고 중국동포들로 하여금 유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아버지를 초청하시는 등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이를 보면서 저는 하나님을 은혜를 느끼게 되었고, 그 하나님과 목사님이 부탁하신 용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속반원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어머니를 천국으로 떠나보낼 수 있는 길이기에,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는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단속반원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습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김아무개 팀장을 비롯한 5명의 단속반원들은 어머니의 영정 앞에 와서 사과하고, 사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딸로서의 간절한 부탁일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도리를 하는 게 마땅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이 땅에 남아 살아야 할 단속반원들이 죄책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부탁드립니다.

다시는 절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어머니의 비극이 마지막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자비한 단속을 방지할 수 있는 '단속 인권 지침'이 꼭 필요합니다.  불법체류자 이전에 천하보다 귀한 생존의 권리를 가진 인간임을 잊지 않도록 단속반에게 인권교육을 강화해주십시오. 끝으로 중국동포들의 자유왕래를 조속히 보장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비참한 자식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조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어머니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스물다섯이 되어 이렇게 찾아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엄마의 얼굴을 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몹시도 그리워했을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살아서 얼굴을 부비며 얼싸안고 기뻐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저와 같이 슬퍼하는 딸이 없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민족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같은 민족이 조국을 마음 놓고 방문하고 꿈을 이루는 일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저는 한국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불초한 중국동포 딸의 당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2008년 2월 5일 어머님을 천국으로 보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고(故) 권봉옥씨의 외동딸 오연 올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재중동포, #추락사,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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