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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웃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방문했다. "왜 이렇게 감기가 독한지 모르겠다"며 설 명절이 다가오니까 또 감기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하신다. 내일이면 손자들도 오고 괜히 나 때문에 감기 옮아가면 안 되는데 하시며 설날 이야기를 꺼내신다.

 

"어휴, 설날이 안 왔으면 좋겠어."

"왜요? 자녀들과 손자들도 만나고 좋잖아요?"

"좋기야 좋지만, 그냥 힘들어서…. 나이가 먹으니까 만사 귀찮고 그러네요."

"이젠 아들 며느리가 일할 텐데…. 그렇게 힘드세요?"

 

"며느리가 한다고는 해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디 옛날 우리들처럼 일 하간디."

"며느리 일하는 거 도와주느라 종종거리며 하루종일 보내고 나면, 오히려 일할 때보다 다리에 알도 배기고 몸살이 난다니까, 그래서 힘이 들지 뭐유."

 

 

두부 만들기 하루, 술 담그기 하루, 놋그릇 닦기 하루

 

그러면서 할머니는 예전에 설 명절을 보냈던 일들을 기억을 더듬으며 들려주신다. 예전에는 하루 장보는 것 빼고도 한 삼사일 전부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단다. 하루는 두부를 만드느라고 보내고, 또 하루는 술 담느라고 보내고, 또 하루는 놋그릇을 닦느라고 보내야 했다고 한다.

 

두부는 맷돌에 콩을 직접 갈아서 끓이다가 지름찌꺼기를 부어서 저으면 거품이 삭는다. 그것을 끓여서 간수를 넣고 또 저으면 두부가 몽글몽글 생긴다고 한다. 그것을 또 한 번 살짝 끓여서 자루에 넣고 꾹 눌러놓으면 두부가 완성이 된다. 적당한 시간 동안 눌러서 모양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두부가 완성된다고 한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뜨끈한 비지에 김치를 넣고 비벼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며 군침을 삼키시는 할머니, "요즘 두부는 그 맛이 안 난다"며 "쉽게 하니까 맛이 덜한 모양"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래도 설 명절 보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는데도 이제 늙어서 몸이 불편하니까 설 명절이 오히려 안 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아마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명절이 다가오면 대부분 여자 분들이 느끼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아닐까.

 

그렇게 일에 대한 큰 부담감으로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은근히 자녀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 그 옛날 놋그릇을 닦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놋그릇은 어떻게 닦았는지 지금 젊은이들은 모를 거란다.

 

"기와장이 있는데, 시커먼 것은 수놈 기와고 뽀요스름한 것은 암놈기완디, 그 암놈 기와를 가루로 곱게 빻아서 지푸라기로 수세미를 만들어서 하루 종일 빡빡 문질러 닦는데,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도록 놋그릇을 닦았어유. 그 기와 가루를 곱게 빻지 않으면 그릇을 닦을 때 긁혀서 그릇이 못쓰게 되거든유. 아주 곱게 만든 가루로 한 소쿠리도 넘는 놋그릇을 닦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설 명절은 아무것도 아녀유.

 

술상을 보는데 한번 볼 때마다 서너 상을 봐야 하고, 그것을 하루에 몇 번씩 차렸다 치웠다 했으니 일이 보통 많았간디, 옛날에는 명절에 모이면 40~50명은 됐으니께 밥 한끼 준비하는 것도 꽤 힘들었다니깐. 그런데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명절만 되면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는데 친정엄니, 시어머니가 왠만한 일은 다 해놓으면 그 때서야 내려와서 하루 거들다 가는디, 집에 가서 몸살 나서 며칠씩 알아 눕는다는 걸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 일을 너무 못 혀유, 안 그래유?”

 

"네, 할머니, 저부터도 평소에 안 하던 일이라서 명절 지내고 나면 한 일도 없이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가래떡 뽑아놓고 설 기다리는 할머니

 

할머니는 그래도 명절이나 돼야 자식들과 손주 녀석들 얼굴 실컷 보지, 안 그러면 얼굴 보기 힘들다며 설 명절을 은근히 기다리시는 눈치다. 어느새 가래떡도 뽑아놓고 장도 봐다 놓았다며 설날을 기다리시는 할머니, 말씀은 설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도 마음은 하루빨리 설 명절이 되어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고 싶은가 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오매불망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고 집안 곳곳을 살펴 한 보따리씩 싸 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과연 자식들은 얼마나 헤아려 줄까?

 

당장 오늘 오후부터 귀경 길에 오르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룰 것이다. 해외나 국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향으로 조상들과 부모님을 만나려고 떠나는 사람들로, 역 대합실과 버스터미널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리라 짐작한다.

 

이번 설 명절에는 여자들만 일을 해서 힘든 시간이 되지 않도록 남자들이 도와주면 어떨까? 그리하여 할머니, 어머니, 아내들이 느끼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기를…. 서로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면서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나누며 웃음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고향을 찾는 모든 분들, 안전운행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태그:#설,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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