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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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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답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철학과 소신, 양심에 반하는 정부조직개편법안에 대해 서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가 통일부 존치 선에서 정치적 절충을 해 정부조직개편안을 넘긴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철학과 양심

노무현 대통령은 그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정부조직 개편 내용과 그 방향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다. 대부가 과연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이명박 당선인 노선에 부합하는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대부 체제가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획예산처나 과학기술부, 여성부의 설치 배경과 시대적 요청, 그 기능에 대해서 일일이 지적하면서 통폐합의 근거를 따졌다. 통일부에 대해서는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지켜지겠지요"라고 말해 노 대통령의 '이의제기'는 '통일부 존치' 차원 그 이상인 점도 분명히 했다.

또 하나는 자신의 철학과 양심, 소신과 배치되는 법안에 대해 과연 서명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양심의 문제', '정치적 소신'의 문제를 제기했다. 양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장이기도 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 정부 출범 이후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자신의 손'으로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천명하고 나선 데에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을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은 이미 식물대통령이 돼버렸다"는 자조적인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여기에는 인수위원회가 대통령직 업무 인수라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사실상 점령군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이전 정권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고려하지 않는 마당에 새 정부의 무리한 행보에 더 이상 '협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신문들, 거부권 행사 발언 이구동성 비판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행 18부4처인 중앙 행정조직을 13부2처로 축소조정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한 가운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직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고 있다.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행 18부4처인 중앙 행정조직을 13부2처로 축소조정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한 가운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직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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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신문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조·중·동>은 말할 나위도 없고, <경향신문>과 <한겨레> 같은 신문도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동아일보>는 '대선 민의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투정과 미련을 접고 새 정부가 곧바로 ‘가동’될 수 있도록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바른 도리'를 다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인간의 도리'까지 들고 나섰다. "대통령은 하기 싫은 일도 국가 위해선 해야 하는 법"이라며 후임 정부의 순조로운 출항을 위해 도와줄 것을 촉구했다. "후임 대통령의 정상적 출발을 이렇게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도 했다.

그대로 두 신문은 점잖은 편이다. <세계일보>는 "'나는 식물대통령 됐으니 너는 유령정부로 출범하라'고 윽박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힐난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제목과 내용이 '따로국밥'이다. 사설 제목은 '떠나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협박'이라고 세게 붙였다. 그러나 사설 내용은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주장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그러나 새 대통령의 일과 새 정부의 출범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양시 양비론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문제지만, 무작정 밀어붙이는 식의 인수위 일처리도 문제라는 식이다. 정부조직 개편의'‘효율성' 못지않게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무래도 사설 제목이 '오버'한 것 같다.

이들 신문들이 주로 노 대통령에게 초점을 맞춘 반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국회' 쪽에 방점을 찍었다. 노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 국회가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라는 시각이다.

<한겨레>는 노대통령은 거부권 시사 발언 이전에 먼저 국회의 논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관련 법에 무조건 서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 정부 출범에 협조해야 한다는 '정치적 도의'에도 '정도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패장에 대한 예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겨레>는 결론적으로 국정에 큰 영향을 끼칠 정부조직개편을 졸속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제점을 짚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급'은 바로 "국회가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에게는 '열린 토론 자세'를, 통합신당에게는 '정치적 절충에 앞서 적극적인 토론 자세'를 각기 주문했다.

<경향신문> 역시 비슷한 주장을 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할 대목이 있지만 "입법부가 미덥지 않다고 해서 먼저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는 것 역시 입법부를 무시한 월권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식물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구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 한 인수위의 무소불위 행보 역시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회가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인간적 도리' 호소 과연 먹힐까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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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들의 이런 주문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기대처럼 국회에서의 활발한 논의와 원만한 합의가 가능할까?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혹은 다른 신문들의 당부처럼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노무현 대통령이 '인간적 도리'를 다해서 아무 소리 않고 이를 수용할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에는 도저히 명분이 서지 않을 정도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돼 '압도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커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도리', '인간적인 도리'를 다할 것을 주문한 오늘 신문들의 사설에 별로 힘이 실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처음부터 화해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왔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갑작스레 '도리'를 내세우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어차피,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지 않은 '인품'인 줄은 이들 신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조선일보>는 노대통령의 이런 '오만'과 '실책'에 관한 기획 시리즈를 한창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괜히 노무현 대통령 비난이나 하고 자족할 게 아니라면, 이들 신문들은 서로 말이 통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에다가 뭔가 주문을 하더라도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일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협량함'을 비판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이들 신문이 새삼 이제 와 노 대통령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태그:#정부조직개편, #거부권 시사, #적대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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