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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보송보송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미토끼는 털을 뽑아서 덮어줍니다.
▲ 태어난지 5일된 아기토끼 털이 보송보송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미토끼는 털을 뽑아서 덮어줍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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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에 토끼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휴일(27일)을 맞아 어머니가 사시는 집에 갔더니 식구가 늘었다고 자랑을 하십니다. 지난주에 갔을 때는 마당가에서 뛰어노는 걸 보았는데 7마리의 어미가 되어 있더군요.

날씨가 추운 탓에 빈 방 한 칸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강릉시내는 눈이 대부분 녹았지만 조금 변두리인 모산은 쌓인 눈이 그대로입니다. 어린 토끼의 어미는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둘째 아이를 키워주시는 어머니의 소일거리를 위해 북평장에서 토끼 한 쌍을 사왔습니다. 토끼집도 만들고 틈틈이 칡넝쿨․싸리나무․아카시 어린가지도 베어다 놓곤 했는데 벌써 손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마당가에는 호박엿을 만들거나 옷닭을 삶을때 쓰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가출한 토끼가 이곳에 둥지를 마련하고 새끼를 낳을려고 했습니다.
▲ 토끼가 처음 새끼를 낳을 려고 자리를 잡았던 곳 마당가에는 호박엿을 만들거나 옷닭을 삶을때 쓰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가출한 토끼가 이곳에 둥지를 마련하고 새끼를 낳을려고 했습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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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지 2달이 넘었지만 집주변에 살고 있습니다. 새끼들이 있는 방문을 열어두면 바깥에 나가 수컷과 어울려 놀다가 문앞에 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립니다.
▲ 어미토끼 가출한지 2달이 넘었지만 집주변에 살고 있습니다. 새끼들이 있는 방문을 열어두면 바깥에 나가 수컷과 어울려 놀다가 문앞에 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립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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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토끼의 어미도 한 겨울에 태어나 방안에서 키워졌답니다. 이웃집에 한두 마리씩 분양하고 두 마리가 남았는데 이제 어미가 되었네요.

사실 40여일 전에도 한 배의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집이 응달이라 추워서인지 토끼집을 탈출한 이 토끼 부부가 앞 집 수돗가에 굴을 파고 새끼를 낳았답니다. 어머니는 그걸 아시고 하루 종일 헛간을 손질해 따뜻한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날도 마침 집에 들렀는데 앞집 할머니가 토끼를 미워해 그냥 둘 것 같지 않다고 걱정을 하셨지요. 집을 만들어서 새끼를 옮겨와야 할 것 같다고 해서 강아지가 살던 집에 보온덮개를 깔고 서둘러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토끼가 만든 굴에 갔더니 입구가 흙으로 메워져 있고 토끼기 어쩔 줄 몰라 껑충껑충 뛰어 다니더군요.

굴 입구를 파헤치고 합판을 들어내니 그 속에 9마리의 토끼가 하얀 털에 쌓여 꼼지락 거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한 마리는 흙에 묻혀 싸늘하게 식어가고…. 어머니는 죄 없는 짐승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앞 집 할머니 욕을 많이 하시면서 서둘러 둥지로 옮겼습니다.

어미 토끼도 붙잡아다 놓고 추울까봐 백열전구도 켜놓았지요. 하지만 며칠 뒤에 살펴봤을 때는 모두 죽어버렸더군요.

처음에 만든 굴 속에 그냥 두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너무 추운데 옮겨 놨나 하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컸습니다. 앞집 할머니가 밉기도 하고, 마주 쳐도 인사하기가 싫어집니다. 우리 둘째는 2년여 동안 자주 봐왔지만 이 할머니를 '왜왜 할머니'라고 부른답니다. 말할 때마다 '왜 왜' 하고 소리를 질러서 그렇게 부른다나요.

오리와 오골계 닭 토끼가 한데 어울려 생활합니다.
▲ 동물가족 오리와 오골계 닭 토끼가 한데 어울려 생활합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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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토끼는 한 달 여 만에 또 새끼를 낳았습니다. 집 뒤가 산이지만 도망가지도 않고 집 주변을 맴돌며 살고 있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토끼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좀처럼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토끼는 개처럼 새끼를 돌보지는 않는다고 하는 군요. 털을 물어서 덮어주기는 하지만 품에 안지는 않고 젖을 먹일 때만 가까이 간다고 합니다. 아마도 야생동물의 습성이겠지요. 새끼들이 있는 곳에서 멀리 있어야 인간이나 다른 짐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이놈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올 때는 '새끼 낳거든 키워서 잡아먹어야지'했는데 엄두가 안 납니다. 중학교 다닐때는 닭도 잘 잡고, 겨울에는 뒷산의 토끼사냥도 잘했는데 이젠 못하겠습니다.

그냥 키우는 재미에 만족 할 수밖에요. 닭장에는 오골계와 오리가 두 마리씩 있습니다. 닭도 두 마리였는데 쥐약을 먹고 죽어 뒷집 아저씨가 맛있게 드셨답니다. 그래도 가끔 알을 하나씩 낳으니 시골 살림에 보탬이 됩니다. 이놈들이 태어난 지 5일째라고 합니다. 무럭무럭 잘 컸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온 마당이 토끼집이 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최원석기자는 자전거포(bike1004.com)를 운영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태그:#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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