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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에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나는 몸에 관한 한 유난을 떤다 싶을 정도로 애착이 심해졌다. 임신을 한 뒤에는 몸에 좋다는 뉴질랜드 초유 제품들과 산지에서 직송해 온 한우, 각종 과일들을 상자째로 쟁여놓고 먹었다. 배가 불러갈수록 엥겔 계수는 점점 높아졌다.

출산 2주 전까지 남편과 나는 광주와 서울에 떨어져 살았는데, 주말에 만나면 인터넷으로 검색한 맛집을 찾아 다녔다. 급기야 어떤 달은 교통비를 이기고 외식비가 생활비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날 무렵에 엄마를 뚫어지게 보는 쿠하.
▲ 작은 새가 목을 가누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날 무렵에 엄마를 뚫어지게 보는 쿠하.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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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산 침 붙이다가 출산하러 가고, 분만대 앞에서 꿀에 녹용 타먹고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하는 '아빠의 권리'를 뺏지 말아야 한다는 친정 어머니와 선배 언니의 조언에 따라 남편의 직장과 시댁이 있는 전라도 광주로 아이를 낳기 위해 내려갔다.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찾은 사람은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라 당시 한의학과 대학생이던 이권호씨였다. 몇 번인가 그가 놓아주는 침을 맞고 효과를 봤던 탓도 있지만, 언젠가 들었던 '순산 침'을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산 침은 귀에 붙이는 작은 침을 아홉 개 정도 배와 골반 주변에 붙여두고 일주일이나 열흘쯤 뒀다가 낳으러 가기 전에 떼는데, 특별히 따끔거리거나 불편하지 않다.          

임신 5개월부터 시작한 임산부 요가와 수영을 출산예정일까지 계속 했다.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 순산 침과 녹용 덕인지 모르겠지만, 첫 출산인데도 나는 남들이 끙끙대며 고통스러워하는 분만대기실에서 모로 누워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고 있었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들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흘끔 쳐다보고 갔고, 곁에 앉아계시던 시어머니도 황당해 하셨다. 책을 읽다가 새벽에 진통이 시작된 지 2시간 30분 만에 아이를 낳았다.

분만대에 오르기 직전, 침을 놔준 이권호씨가 선물한 녹용가루에 꿀을 타서 떠먹는 요구르트 1개 분량을 먹고 들어갔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알 수 없는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 힘 주세요!" 소리를 딱 세 번 했을 때, 첫아이 쿠하(태명)가 태어났다.   

출산 당일 축 늘어져 있는 다른 산모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는 튼튼했다. 평소 몸이 허약한 편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는 양가 어머님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실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산한 날에도 누워서 책을 읽거나, 엎드려서 스케치 북에 육아일기를 색연필을 색마다 바꿔가며 쓰기도 했다.

아이를 낳은 날 저녁, 모유수유를 하느라 매운 것을 자제해야 하는 산모가 보쌈을 시켜 달큰한 겨울 배추에 돼지 고기를 얹어 먹고, 이튿날부터 어혈을 풀어준다는 한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다른 엄마들은 모유수유를 하는데 한약을 먹으면 어떡하느냐고 묻기도 했고, 모유수유를 도와주던 간호사들도 한약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못들은 체 보름치를 빼먹지 않고 마셨다.

유난히 잠이 없는 아기는 귀에 "쉬익쉬~"라는 소리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포근하게 해 주면 잘 잡니다.
▲ 아기 잘 재우는 비법을 공개합니다. 유난히 잠이 없는 아기는 귀에 "쉬익쉬~"라는 소리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포근하게 해 주면 잘 잡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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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은 날 저녁, 보쌈 시켜 먹고 한약 마시고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쉬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숲 해설사로 활동하시고 산행과 여행을 자주 떠나시는 시어머님이 산후조리를 해 주실 수 없어, 출장 산후도우미를 한 달간 부르기로 했다.

산후조리원 비용이 120만원에 사설업체의 출장 산후도우미 비용이 또 120만원. 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를 산후조리 기간으로 스스로 정했기 때문에 한 달 반 뒤부터는 이틀에 한 번 오는 가사도우미를 신청했다.

시댁에 가 있던 탓에 마냥 누워있기도 민망해서 이틀에 한 번 오시는 분께 빨래와 청소·간단한 반찬 만들기를 부탁했다. 최소한 백일이 될 때까지는 집안일도 미루고 싶었다. 산후조리에 들어간 기본 비용만 300만원이 넘었지만, 다른 가족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 몸도 마음도 한결 편안했다.

출산과 함께 하던 일을 모두 그만뒀기 때문에 남편 혼자 버는 것으로 적잖은 출산비용을 지출하는 게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사석에서 만난 의사들이 산후조리가 망국적인 '한국형 풍토병' 가운데 하나라며 유난 떠는 사회분위기를 비난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몸에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을 특별한 보호로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보내고 싶었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여러 가지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시기에 충분히 쉬면서 아이와 엄마의 몸과 마음의 건강만 생각하고 싶었다.

산후조리원도 넓고 조용한 방에 배치되어 갑갑하지 않았고, 산후도우미도 아기나 산모에게 정성을 다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모유 수유나 아기 돌보기에 대한 책을 읽어도 막상 실전에서 하려면 서툴고 조심스럽기만 한 초보엄마에게 곁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선배가 있어서 한 달 반 동안 어렵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태어난 지 백일 후,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아기와 꽃구경을 갔습니다.
▲ 백일 후의 외출. 태어난 지 백일 후,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아기와 꽃구경을 갔습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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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낳고 더 건강해진 나, 이제 둘째 아이 기다린다

아기 재우고 씻기고 먹이는 데 필요한 이런 저런 정보를 입에서 귀로 전달받는 것이 문자로 읽는 것보다 왠지 더 빨리 습득되는 것 같았다. 

모유수유를 하는 13개월 동안 우리 집 밥상에는 늘 미역국이 올랐다. 매일 먹는 미역국이 질리지 않도록 산후조리를 도와준 분들께 국 안에 넣을 재료를 다양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백일이 지나면서 도우미 분들이 오지 않게 되자, 인터넷 요리 블로그들을 열어 두고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쇠고기는 물론 바지락·홍합·굴·버섯·황태 미역국 등 갖가지 재료를 바꿔가며 끓이다가 그래도 질리는 날이면 들깨가루를 듬뿍 넣거나 찹쌀 옹심이나 조랭이 떡국을 넣기도 했다. 그렇게 1년 넘게 매일 끓여 먹으니 이제 미역국에 관한 한 친정엄마보다 내가 더 선수가 됐다.

산후조리를 잘 해서인지 아이를 낳기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가까운 사람들은 산후조리에 유난 떨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가끔 놀리기도 하지만, 스스로 편하게 쉬면서 아이와 나 자신에 대해서만 집중했던 세 달 간의 시간은 이제와 돌이켜봐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지금 나는 둘째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10주 된 작은 생명이 초음파 기계를 타고 내게 쿵쾅쿵쾅 빠르고 세찬 심장소리를 들려준다. 첫 아이를 건강하게 낳고 산후에 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번에도 요가와 수영을 열심히 할 것이고, 순산 침과 녹용가루를 먹을 생각이다. 물론 어혈을 푸는 한약도 마시고, 산후도우미와 가사도우미에게 도움도 요청할 것이다. 남편의 지갑이 많이 헐거워질 테지만 산후 백일간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엄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기도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제대로 하셨습니까?> 응모글'



태그:#산후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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