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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에서 내려다 본 고복저수지 풍경
▲ 고복저수지 풍경 오봉산에서 내려다 본 고복저수지 풍경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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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높지 않은 오봉산으로 겨울산행에 나섰다. 산에 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미끄럽다. 날씨가 포근하여 땅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산에 오르자 길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이곳을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인가 !

가만히 산속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내복 바람에 서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다. 그런 자기들의 속내를 감추려는 듯 무척이나 애쓰는 눈치다. 오르는 산길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 이곳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지 전혀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겨울나무의 모습
▲ 겨울나무1 겨울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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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의 모습
▲ 겨울나무 2 겨울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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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없는 조용한 산길을 가만 가만히 걸어가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나무는 입은 속옷이 헤어져 무릎이 벌겋게 드러나 있었고, 어떤 나무는 실밥이 튿어진 듯 하얀 줄무늬 모양의 속옷을 입고 있다. 산속의 나무들이 대부분 짙은 회색의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간간히 하얀 내복이나 붉은 내복을 입고 폼을 잡는 나무들도 있다.

또 어떤 나무들은 너무 큰 속옷을 입었는지 바람이 솔솔 들어갈 정도로 헐렁해 보였고, 너무 작은 속옷을 입은 녀석은 이음새가 튿어져 속살이 훤히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 우리네 사는 모습과 그렇게 흡사한지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지금 겨울 산속은 날씨가 포근하여 모두가 편안한 옷차림으로 사랑방에 와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몇 해를 두고 오랫동안 쌓인 두툼한 솔잎이 산속을 솜이불처럼 덮고 있다. 그래서 산속이 더 따뜻하고 편안해 보인다.

이처럼 따뜻한 겨울산속에서 살갑게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있고, 짓굳게 장난을 치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과연 산속의 나무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사랑을 나누는 나무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서로 두 팔 벌려 보듬어 안고 눈을 질근 감은 모습이 마치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사랑을 나누는  나무와 괴롭히는 나무들
▲ 오봉산의 겨울 나무들 사랑을 나누는 나무와 괴롭히는 나무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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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옆에는 장난이라고 보기엔 심하다 할 정도로 힘센 녀석이 가냘픈 녀석을 칭칭 감아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어떤 나무는 양팔이 부러진 채  길가에 서서 사람들에게 침묵시위를 하는 것도 있고, 숲속을 찾아온 사람이 부끄러운 양 큰 나무 뒤에 숨어 새색시 처럼 훔쳐보는 나무들도 있다.

소나무에 큰 혹이 달려 있다
▲ 혹이 있는 겨울나무 소나무에 큰 혹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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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산속의 하늘을 보았다. 앙상한 겨울나무가지 사이로 하늘이 시원히 뚫려 있다. 눈이라도 내리면 속옷 바람에 그냥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이 내리면 산 속이 더 훤해지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 왜냐하면 모두들 하얀 털옷으로 갈아입고 멋진 패션쇼가 펼쳐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오르니 어느덧 산 정상에 이르렀다. 멀리 보이는 고복 저수지가 안개에 가려 신비롭게 펼쳐져 있다. 한참을 물끄러미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본다. 눈이라도 내리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질 것 같다. 다음에 눈이 내리는 날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내리막길로 하산을 재촉하는데 여기저기서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나무이 버섯이 피어있다
▲ 버섯나무 나무이 버섯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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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가 나는 방향을 향해 한참을 눈으로 쫒다보니 멀리 산 노루가 달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들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자 방금 산 노루가 싸 놓은 배설물이 보인다. 아마도 나로 인해 볼 일을 다 못 보고 급하게 달아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은 산 친구로 이곳을 찾아 왔는데 아마도 그들에게는 불청객이었나 보다. 하지만 초봄처럼 포근한 겨울산행에서 산속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나를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벌써 새해가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숲속을 지키는 겨울나무처럼 내실 있고 진실한 삶을 펼쳐나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오봉산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비암산의 내맥이며 조치원의 진산(鎭山)이다. 높이가 262m이며 다섯봉으로 이루어져 오봉(五峰)산이며, 풍수지리상 제1봉은 목형봉(木形峰-정상봉), 제2봉은 화형봉(火形峰-牛角峰 또는 평상봉), 제3봉은 토형봉(土形峰-聖主峰), 제4봉은 금형봉(金形峰-主峰 또는 두루봉), 제5봉은 수형봉(水形峰-平當峰)으로 오행을 갖추었다. 동쪽은 조치원읍 봉산리, 서쪽은 전동면 송정리, 남쪽은 서면 고복리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오봉산에 안선사와 흥천사란 절이 있었고, 절터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석불과 유물은 불일선원과 연기향토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오봉산 중턱의 약수터에서는 기우제와 산제를 지내어 영험한 산으로 유명하며 산의 모양이 장엄하고 엄숙한 기상(氣象)이 마치 유덕(有德)한 거인(巨人)이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많은 시객(詩客)이 오봉산을 칭송했으며 연기팔경(燕岐八景)중의 하나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321호인 봉산향나무가 있다.



태그:#오봉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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