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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마을 소식지
▲ 무릉골소식2007년12월 무릉마을 소식지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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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여. 이게…."
"소식지…. 마을 신문이여요."
"고생많네."
"난 글도 모르는데…."
"사진 많이 넣었어요."

무릉리 70여 집을 돌면서 마을 소식지를 돌린다. 우편배달부가 된 기분으로. 처음엔 우체부 아저씨께 음료수나 하나 사 드리고 도움을 요청해 볼까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소식지 돌리는 일이 즐겁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게 할까. 간사가 뭐하러 이런 일을 해. 마을 사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혹은 농산물 판매나 잘 할 것이지 하는 분들도 있다. 반면에 나를 보곤 화색이 돌며 너무 수고하신다고 말을 건네는 분도 있다.

마을 간사 생활 시작  몇 달 동안 마을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마당의 풀이 나는것을 용납하지 않는 시골의 삶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나의 오만함이기도 했다. 무료임대 받았던 방문자센터에서의 삶도 6개월 만에 마을대표들이 모여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하는 것으로 그쳤다. 이후로 나의 목적은 정착. 땅을 구해서 집을 짓고, 간사라기보다는 주민처럼 행동하고 움직여왔다. 생각해보건대 행정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기대하는 주민의 눈에 낙제점을 받을 만하다.

"개를 먹인다며?"
"음식점에서 잔밥 가져다가 먹인디야."
"그려, 몇 십 마리 키우나보네."
"몰러 하여튼 많이 키운댜."

2006년 여름, J간사가 나에게 와서 진안 읍내(진안읍은 마을에서 30㎞ 거리에 있다) 미용실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앞뒤 상황까지 보태 맛깔나게 전한다. 내 이야기다. 세 마리의 개가 있었다. 닥스훈트, 잡종, 진도. 이놈들은 고창에서 혼자 생활할 때 내 친구이자 식구였던 놈년들이었다. 신경이 쓰였던지 제일 미운털이 박혔던 단이년(닥스훈트종)을 입양보냈다. 근처에 살았던 L간사에게.

두 마리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꿈을 꾼다. 개장수가 와서 강토(진돗개)를 집어갔다. 나는 슬프지만 이내 쾌활해진다. 플토(잡종)를 슬며시 산으로 끌고 간다. 줄을 풀고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하산하여 집에 온다. 밤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플토. 슬며시 미소짓는 나. 잠에서 깨고 멍하게 흔들리는 몸을 이끌고 창을 열어 마당 한 켠에서 나를 바라보는 플토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황망하다. 그놈의 눈이 처량하게 나의 눈에 놓인다. 창문을 급히 닫고 이불을 뒤집어 쓴다. 도대체 2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얼 했을까. 마을 간사로서….

 마을 앞 산에 올라서 찍은 마을의 전경. 자연부락 세군데로 나뉘어 있다.
▲ 무릉마을 전경 마을 앞 산에 올라서 찍은 마을의 전경. 자연부락 세군데로 나뉘어 있다.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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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마을 행사와 풍광을 틈나는 대로 카메라에 담는다.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부담스러운 앨범 촬영비 대신 마련한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좀 더 표현이 자유롭다. 그럴듯하게 담기고, 인물도 자동카메라에 비해 잘 살아난다. 수백 장은 될 법한 사진들 중에 아들 사진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마을 행사, 진안고을 행사, 다른 마을 행사 사진들이다.

마을 소식지는 A4 4page로 항상 1면에 큰 사진을 넣고 나머지 면도 반 이상이 사진이다. 지난 겨울에 편집 교육도 몇 시간씩 받아가면서 애써온 소식지는 진안군의 큰 자산이다. 매월의 각 마을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져 나온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1년여 기간 동안 소식지를 접한 주민들은 최근에서야 조금씩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번 기사 중에 어떤 부분은 좀 과하지 않느냐. 이런 행사나 사건은 왜 안 들어갔느냐며.

나는 반갑다. 무반응보다 욕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연예인처럼.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도 기사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매우 뿌듯해지는 것이다. 꿈을 꾸듯이 이참에 마을신문 기자로 밥벌이를 해봐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마을 가꾸기의 일부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소통체계로의 소식지를 바란다.

기자가 몇 명은 되어야하고, 매달 편집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올릴 기사와 내릴 기사를 선별하고 그럴듯한 인쇄로 보이는 사진의 질도 높이고.

"왜 칼라로 안 찍냐."
이장님이 묻는다.

"돈이 없어서요."
"돈 좀 달라구 해봐."
"어디다가요?"
"……."

"임 간사 정말 수고하네."
"뭘요. 하는 일이라곤 이것 밖에 없는데요."
"아니, 큰 일 하는 거야."
"비용은 누가 대는 거야."
"면사무소에서 복사해서 써요."

인쇄를 하지 않고 출력물을 복사해서 만드는 신문이라 상태가 조악하다. 그나마 주천면사무소의 복사기가 신형이라 초반에는 상태가 좋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쇄상태가 불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의 모양을 갖추어서 나오기가 힘들다. 결국 12월에는 접어서 배포하던 A3복사를 포기하고 A4를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돌렸다. 그나마 바로 출력하는 것이 사진을 잘 보이게 하니까.

"갑자기 사진이 좋아졌네."
"프린터로 출력했어요."

마을과 1사1촌으로 자매결연한 주)축산물등급판정소에서 기증한 프린터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작업도 더 조악해 졌을지 모를 일이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시 왔다. 간사에서 물러나왔지만 소식지 작업은 놓고 싶지 않다. 다음 간사가 오면 졸라서라도(?) 꼭 참여하고 싶은 작업이 이것이다. 소식지를 통해서 마을 구석구석을 다녔고 각 집에 어떤 분이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비오는 날이면 김치 안주에 담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새해엔 <무릉골소식>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3월부터 전북 진안군 관내 11개 마을에 전국 최초로 시행되어 2008년 20여개 마을로 확대될 예정인 마을간사제도는 농림부에서 농어촌마을에 시행하고 있는 사무장 제도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각 마을에 시행되는 대단위 사업의 경영과 운영을 돕는 동시에 도시의 삶을 탈피해 촌에서 느린삶을 지향하는 청년들의 기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진안군 홈페이지 : www.jinan.go.kr
귀농1번지: refarm1.jinan.go.kr
진안사람들 : 다음카페 cafe.daum.net/jinan4u

이기사는 진안군 마을간사 연간보고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을신문, #마을간사, #진안군, #무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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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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