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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장면 #1.
 눈 내리는 장면 #1.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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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산길을 싸목싸목 걸었다. 오늘 눈발들은 그 어느 때보다 걸음이 빠른 것 같다. 이 골짜기를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저 앞산 골짜기에서 달음박질치고 있는 눈발.

때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찬 것들이 있다. 눈대중만으로도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벅찬 것들이 있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감정들이 가슴을 꽉 메이게 하는 때가 있다.

멀어져 가는 눈발의 움직임이 나를 숨가쁘게 한다. 저 자욱한 눈발과 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이,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아득하게 한다. 때로는 사람도 몇 송이 눈발이다. 저렇게 몇 송이 눈발로 굽이쳐 왔다가 저렇게 속절없이 멀어져 갔다.

눈 덮인 인삼밭.
 눈 덮인 인삼밭.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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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눈발을 바람만 바람만 따라가다가 숨이 차서 그만 제자리에 멈춰버린 눈발들이 있다.  산 기슭 아래 삼(蔘) 밭의 햇볕 가림막 위에 눈이 쌓여 있다. 흘러가는 것들은 머무는 것들에게 "어서 흘러오라"고 재촉한다. 잠시 머물면서 숨을 고르는 것들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에게 "이제 그만 쉬라"고 권유한다.

흘러가는 것들은 깊이를 축적하지 못한다. 자신이 흘러가는 길 위에 자꾸만 마음을 흘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들은 자유가 주는 황홀함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 정신의 궁극을 맛보지 못한다.

시방, 삼(蔘) 밭 햇볕 가림막 위에 쌓인 눈은 깊이를 축적하는 중이다. 자신이 골짜기를 넘을 때마다 느꼈던 아득함, 시내를 건널 때마다 느꼈던 현기증. 그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흘러가면 아름다운 표면을 가진 깊이가 될 것이다.

눈 쌓인 숲.
 눈 쌓인 숲.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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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들 사이에 선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
 잡목들 사이에 선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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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도 귀가 있을까. 그래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일까. 잡목들 사이에 선 소나무 한 그루가 남쪽을 향해서 자신의 몸을 굽히고 있다. 나무에도 눈(眼)이 있을까. 그래서 눈발이 휘몰아쳐 오는 방향으로 서둘러 마중을 나가는 것일까.

어쩌면 겨울의 차가움과 매서운 눈보라가 있으나 마나한 나무의 귀, 그 잠자코 있던 세포를 하나하나 다시 살아나게 하고, 겨울의 아주 미미하고 사소한 햇볕이 봄, 여름, 가을이 흘러가는 동안 내리감고만 있던 나무의 눈을 다시 뜨게 한 것인지 모른다.  

겨울 소나무는 내게 "결핍이 커야 그만큼 강한 각성이 있다"라고 귀띔한다.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느닷없이 각성이 오는 것은 아니다. 결핍이 없다면, 아린 통증이 없다면 새해 첫날이 골백번 계속된들 무슨 각성이 있을 것인가.

지지 않은 채 겨울을 나는 참나무 잎파리들.
 지지 않은 채 겨울을 나는 참나무 잎파리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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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중간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잎사귀를 떨어뜨리지 못한 참나무들이 있다. 가지마다 성글게 달린 잎들이 마치 남쪽 바닷가의 파래 말리는 풍경을 닮았다. 말린다는 것은 수분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한 겨울을 나는 시래기가 그렇고, 무말랭이가 그렇다. 철저하게 수분을 제거해 버린 것들에게선 부패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저 어린 참나무는 나뭇잎에게로 흘러가는 제 몸의 물기를 어떻게 차단했을까. 야윌 대로 야윈 나무의 욕망이 한겨울을 나고 있다.

눈내리는 저수지 풍경 #1.
 눈내리는 저수지 풍경 #1.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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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저수지 풍경 #2.
 눈내리는 저수지 풍경 #2.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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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저수지와 산 풍경.
 눈 내리는 저수지와 산 풍경.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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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한가운데로 이따금 눈발이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눈발이 흔적 없이 물 속에 녹아들고 있다. 저수지는 눈발의 떨어짐을 기억이나 할까. 무수한 물방울 속으로 소리없이 흘러드는 눈발은 아무런 파문도, 출렁임도 만들지 못한다. 

사람의 기억은 결핍의 순간을 더욱 확실하게 기억한다. 풍요는 일종의 스침이지만, 결핍은 각인이자, 각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의 기억이란 것도 결핍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눈 내리는 저수지 가를 거닐었던 기억은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오늘의 산책에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결핍도, 정신의 내출혈도 없었으므로, 적당한 용량을 유지하길 희망하는 내 기억 세포들은 오늘 일을 오랫동안 저장해두지 않을 것이다.

등산객이 주차해 놓은 차 바퀴 옆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등산객이 주차해 놓은 차 바퀴 옆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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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주차해 놓은 차량의 바퀴 옆에 고드름이 달려 있다. 어딘가에 맺히고 싶어하는 물방울들의 안간힘. 너무 노곤해서 흘러가기를 그만 포기한 물방울들. 고드름으로 맺힌 물방울들은 아마도 오래 전에 태어난 늙은 물방울들일 것이다.

맺힌다는 것과 매듭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까. 맺힘과 고임 사이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것일까. 잠시 맺힌다는 것의 어정쩡함과 확실하게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 사이엔 얼마나 커다란 다름이 있을까.

올바로든 거꾸로든 맺혀 있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안이함과 이미 풍요의 맛에 너무나 깊숙이 길들여져 버린 일상. 그 나른함을 깨부수고 새로이 꿈을 꿀 채비를 해야 한다. 썩지 않으려면, 액체는 쉼 없이 흘러가야만 한다. 정신이라는 액체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2007년에 맺혀있는 고드름인지도 모른다.


태그:#눈 ,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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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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