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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신고와 관련해 필자가 제안한 '잠정적 신고와 강력한 검증의 교환'은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는 북핵 협상의 '본게임'이라고 일컬어지는 핵폐기 협상을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 검증과 시간적으로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검증 과정에서 북한이 신고한 내용에 완전성과 정확성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사안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이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해, 일단 고려되어야 할 점은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IAEA 사찰단이 북한과 핵사찰 범위를 협의하는 데 수개월, 특수장비들을 제조하고 설치하는 데 1년 정도, 핵사찰 수행에 2~3년 정도,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수개월이 걸린다. 일반적인 절차에 따르면 북한이 사찰단에 원활하게 협력하더라도 검증 완료까지 3~4년은 족히 걸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검증 기간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IAEA 사찰단에게 장비, 인력, 예산을 대폭 지원함으로써 크게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 완료까지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검증 끝나고 핵폐기하는 건 너무 늦다

 

이처럼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핵폐기 협상과 검증 사이의 관계를 '선(先) 검증 완료, 후(後) 핵폐기 협상'이 아니라, 둘을 분리하여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일단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부터 폐기에 돌입하고, 핵폐기 단계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추가적인 에너지 지원 등 상응조치를 '행동 대 행동'의 맥락에서 취해나가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접근법을 택하면,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수준의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

 

우선적인 폐기 대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시적 불능화 조치가 취해진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인 불능화 조치로 격상시킴으로써, 북한이 이 핵시설들을 재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과 핵무기의 폐기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누락된 것이 존재하더라도, 북한의 핵무장 능력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해법과 관련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테러지원국 해제,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등의 상응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소될 수 있다. 첫째는 이러한 해법은 북한이 자신의 신고 내역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비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북한이 지속적이고 강력한 검증체제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북한의 핵폐기는 기본적으로 불가역적인 반면에, 미국의 상응조치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IAEA 사찰단에 협력하지 않으면 그 불응(non-compliance)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제재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 에너지 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고,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할 수도 있으며,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한 새로운 제재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다. 북한에게 불리하면 불리했지, 미국이 결코 손해보는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압박을 받는 쪽은 북한이 될 수 있다. 핵시설과 신고된 핵물질 및 핵무기를 폐기한 상태에서 북한이 다시 핵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은 사실상 없어진다. 또한 북한이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공한 것들의 불가역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찰단에 협력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

 

검증시 불거질 갈등, 해결 방안 미리 마련해야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의 검증 과정에서 북한이 신고한 내용과 사찰단이 검증한 내용 사이에서 불일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불일치 문제가 불거지면, 사찰단은 특별사찰을 포함한 강도 높은 사찰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은 주권침해를 들어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사찰단의 검증 결과가 미국이 주장한 내용과 차이가 발생할 경우, 미국 내 강경파들이 'IAEA 사찰의 불완전성'에 불만을 터뜨릴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면, 북핵 협상은 또 다시 총체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불일치 문제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둘 필요가 있다. 갈등 해결을 위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검증 문제와 관련해 IAEA에게 사실상의 전권을 위임하는 것이다. 북한은 IAEA의 편파성에, 미국은 IAEA의 불완전성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IAEA가 사실상 공정한 심판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IAEA의 사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존중한다는 입장에 미리 합의해두어야 한다.

 

단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IAEA가 사찰한 내용 가운데, 핵 프로그램과 관련이 없는 것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IAEA가 광범위한 사찰을 하게 되면, 민감한 군사 정보까지 접하게 될 수 있고, 이는 북한이 IAEA에 협력 수준을 낮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IAEA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의 완전성과 정확성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경우, 북한은 IAEA의 조치에 따르겠다는 것을 미리 공약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과 누락, 혹은 은폐된 것이 확인된 핵 프로그램의 즉각적인 폐기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6자회담 회의론? 아직 이르다

 

북핵 신고가 해를 넘기고, 북한과 미국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6자회담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은 모두가 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게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강경한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핵협상의 결렬이 양측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착상태가 지속되면 상황은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 20년 가까이 지난 한반도 핵문제의 교훈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교착상태를 풀어내 6자회담 프로세스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국내외 일각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야 할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그:#북핵, #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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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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