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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서 본 1층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서 본 1층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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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들어서자 전시포스터 한 장이 우선 먼저 들어왔다. 박물관 전시실 3층 높이에 이르는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제86호)' 앞에 걸린 '때때옷의 선비' 포스터였다.

-전시명: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
-전시 기간: 2007. 11. 20(화) ~ 2008. 1. 27(일)
-전시 장소: 상설전시 역사관
-전시 유물: 이현보 초상화(보물 제872호) 등 총 20건 30점


'아이들이 설빔, 추석빔으로 입는 때때옷을 어떤 연유로 입어야만 했을까?"

유물들을 만나는 동안 어렸을 때 읽었던 어느 정승의 효도 이야기가 반갑게 떠올랐다. 어떤 늙은 정승이 어렸을 때 부모가 종종 해 입히던 때때옷을 입고 연로한 부모 앞에서 재롱을 부렸단다. 이미 며느리 손자까지 있는 이 늙은 정승이 때때옷을 해 입고 늙은 부모 앞에서 재롱을 부린 것은 순전히 자신의 부모에게 웃음을 안겨드리고픈 마음 때문이었단다.

농암 이현보의 행장이 기록된 <퇴계 선생 문집>
 농암 이현보의 행장이 기록된 <퇴계 선생 문집>
ⓒ 전시도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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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는, 우리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이 동화의 주인공인 농암 이현보의 정신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이현보는 자연을 노래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시조작가로 우리 국문학사에 중요한 위치에 있다.

퇴계 선생은 이현보에 대해 적고 또 적었다. 거듭 적었다. 그렇게 적고 적어도 적을 일이 많고 또 많았다. 그 주인공이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요. 우리에게 남겨진 <퇴계 선생 문집>인 것이다.

32세의 성균관 생원 이현보는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정9품의 품계를 받는다. 연산군 시대였다. 그리하여 이현보는 사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신출내기 사관이 품계첩지를 받은 직후 '제대로 된 정사기록을 위해선 말단 사관도 정청에 참여해야 한다'는 직언을 하여 연산군에게 거절당한다. 연산군은 훗날 이런 이현보를 기억해 내 형벌을 내린다.

이현보의 별명은 '겉모습은 질그릇 병처럼 투박하지만 내면은 소주처럼 맑고 엄격하다는 뜻'의 소주도병(燒酒陶甁, 소주 담은 질그릇)이다. 사헌부 시절 이현보의 인간 됨됨이를 흠모한 동료들이 지어 부른 별명이다. 질그릇처럼 후덕하고 투박한, 맑고 시원시원한 성품의 이현보는 중종 조에 이르러 출세가도를 달린다. 이런 때 그는 지방근무를 자청한다.

무엇보다 연로한 부모를 잘 모시고 싶어서였다. 중종은 거듭 붙잡고 이현보는 거듭 청한다. 그러기를 몇 번, 이현보는 결국 지방 수령으로 고향에 내려가 분강 농암 바위에 자신의 부모와 고을 어버이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 정자를 짓는다. 이것이 '날을 아껴 효도하겠다는 뜻'의 '애일당(경북 시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이란 정자다.

부모와 고을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그린 '화산양로연도(보물 제1202호 수록)'
 부모와 고을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그린 '화산양로연도(보물 제1202호 수록)'
ⓒ 전시회도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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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아껴 효도한다 함을 오늘 날 우리식으로 풀이하면 혹, 훗날에 잘살게 되면 효도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하여 해석될 수 있겠지만, 현판에 담긴 뜻은 오늘만이 아닌 시시때때로, 하루도 빠짐없이 살펴 효도를 하고 또 하고, 더하겠다는 뜻이리라.

이현보는 애일당에서 명절이나 시시때때에 자신의 부모와 고을 어버이들을 모셔다 잔치를 베푼다. 남녀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잔치 때마다 종종 안동부사 이현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자식으로 돌아가 때때옷을 해 입고 자신의 부모와 고을 어른들 앞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재롱을 부린다.

이현보의 시호는 그래서 효절공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이현보의 행적을 중심으로 ‘농암 종택’에서 보관 중인 유물을 모아 기획한 것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다.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유물들은 어떤 것들일까?

16세기 전반에 그려진 것으로 역사 및 미술사 중요 자료인 이현보 초상화(보물 제872호)와 보물 제1202호에 수록된 ‘애일당구로회첩(아홉 노인들의 애일당 모임 기록)', '화산양로원도(애일당에서의 부모와 고을 노인들의 잔치를 그린 그림)' 등을 만날 수 있다.

강세황이 그린 '도산도(보물 제522호)'나 낙향하는 이현보에게 중종이 내린 관복띠(금서대, 경북 시도유형문화재 제63호)도 만날 수 있다. 애일당 현판, 어부가 목판도 만날 수 있으며 퇴계 문집 속 이현보에 대해 퇴계가 적은 글도 다수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은 목민관이요, 자연을 노래한 시조시인으로서의 선비 이전에 부모에게는 살갑고 지극한 효도를 다하였으며 체면치레와 허식과는 거리가 먼, 출세와 벼슬에 집착하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 '이현보'이다.

유물들 대부분은 이현보의 이런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라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그중 선생이 별세하기 1년 전에 지인에게 쓴 듯 한 편지는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이현보의 편지
 이현보의 편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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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사람의 자제 혼례날이었나보다. 하지만 연로한 선생은 마침 병중이라 잔치의 끝을 보지 못하고 먼저 일어나야만 했나보다. 선생은 집안의 경사를 끝까지 즐겨 축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잔치 다음날 편지로 자근자근 적으면서 나이가 연로했음에도 출가 못한 자식이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선생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지였다.

이야기 하나. 공자가 어느 고을을 지나는데 어떤 여인이 슬피 울고 있더라. 그 영문을 물으니, 몇 해 전에 호랑이가 남편과 시어른을 잡아먹더니 이번에는 자식을 잡아먹었노라. 남편과 자식을 호랑이에게 잃은 이 고을, 언제 호랑이에게 잡아먹힐지 모르는 이 고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럼에도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자 “이곳에는 가혹한 정치와 무거운 세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혹한 정치와 무거운 세금이라는 말이다.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제대로 되지 못한 지도자의 그릇된 정치와 혹독한 세금이 더 무섭다는 뜻이니 말이다.

보물 제872호인 농암 이현보 영정을 바탕으로 한 포스터. 선생의 이 영정은 동화사의 승려 옥준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16세기 전반(1537)에 그려진 이 영정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이다.
 보물 제872호인 농암 이현보 영정을 바탕으로 한 포스터. 선생의 이 영정은 동화사의 승려 옥준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16세기 전반(1537)에 그려진 이 영정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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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개 고을 수령과 경상도 관찰사로 일하는 동안 청백리로 소문난 농암 이현보.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길마다 수많은 백성들이 울며불며 이현보의 옷소매를 붙잡고 더 머물러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던가.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음에 다시 꼭 와 줄 것을 청하고 또 청했다던가. 두루 두루 존경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원과 희망이 많은 새해를 앞두고 만났기 때문일까?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참, 이번 전시 유물들은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던 것들이 대부분이요, 따라서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서둘러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를 만나볼 일이다.


태그:#농암 이현보, #국립중앙박물관, #때때옷의 선비, #퇴계선생문집, #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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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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