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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행복이 담겨 있다는 흥국사 법당 문고리
▲ 법당 문고리 행운과 행복이 담겨 있다는 흥국사 법당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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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로 가는 길은 솔바람소리, 댓잎소리, 새소리가 정겹다. 눈보라 휘날리는 정해년 끝자락이다. 한 번 만지기만 해도 행운이 찾아오고 좋은 일이 생긴다는 흥국사 대웅전의 문고릴 잡으러 갔다. 2008년 무자년(戊子年)에 모든 이에게 행운을 전해주기 위해,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문고릴 잡으면 삼악도(축생, 아귀, 지옥)를 면할 수 있다고 한다.

영취산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시리도록 맑은 개울물에 마음을 씻고 산문으로 들어섰다. 벚나무 고목 곁에는 ‘아미타불에 귀의 한다’는 의미의 ‘남무아미타불’ 비석이 유서 깊은 고찰임을 암시하고 있다. 푸른 이끼가 낀 비석의 전면에는 한자로 ‘南無阿彌陀佛’이라 음각되어 있고 좌측에는 한글로 ‘남무아미타불’ 우측에는 ‘임신7월 일(壬申七月 日)’이라 새겨져 있다.

대숲 우거진 왼편은 영취산 가는 길이다. 이곳 영취산은 해마다 4월이면 붉은빛으로 타오른다. 흥국사 대웅전 뒤의 영취봉(439m)과 진례봉(51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온통 진달래꽃무더기가 꽃동산을 이룬다. 눈이 살포시 쌓인 영취교를 지날 때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 청아하다. 개울가의 바위로 쌓은 담이 정겨움과 웅장함으로 다가온다.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비석
▲ ‘남무아미타불’비석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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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한 흥국사

천왕문의 풍경은 날개를 잃었다. 세찬 바람에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둔탁한 몸을 뒤흔들고 있다. 천왕문 좌우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거대한 몸집의 사천왕상이 지키고 서있다. 흥국사천왕문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805년에 기록된 ‘흥국사천왕중수개채기’가 있어 그 이전부터 천왕문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고색창연한 사찰에 햇살이 서려있다. 햇살이 지날 때면 그 웅장함이 더해진다. 대웅전 뒤의 영취산에는 뭉게구름 속에서 눈부신 태양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흰 구름 먹구름이 빠르게 흐른다.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는 흥국사는 여수 국가 산단에 인접해 있다. 흥국사 경내로 들어서니 오른편에서부터 선불장, 봉황루, 범종각, 우승수군유물전시관이 배치되어 있다. 행운을 안겨준다는 문고리가 달린 흥국사대웅전(보물 제396호)은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으며 대웅전 후불탱화는 보물 제 578호로 지정되었다.

법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 법왕문 법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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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건물이다.
▲ 대웅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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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과 봉황루, 법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이다. 법왕문 오르는 계단 구석진 곳에는 마른 잎이 회오리바람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건물이다. 이 건물을 흥국사의 본전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무게를 받는 포작이 배흘림의 기둥사이에 3구씩 있는 다포집으로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느낌을 준다.

안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셨고, 대들보위로 우물천정(천장 속이 보이지 않게 우물 정자 모양으로 막은 천장)을 설치하였다. 기단에 새긴 거북, 게, 해초, 석등 등은 이 대웅전이 지닌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그 짜임이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흥국사는 보조국사가 영취산 자락에 1195년(고려 명종 25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으나, 절이 모두 타버려 지금의 건물들은 인조 2년(1624)에 다시 세운 것들이다.

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심검당’이 있다.
▲ 심검당 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심검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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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참선한다는 ‘적묵당’
▲ 적묵당 말없이 참선한다는 ‘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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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의 법고를 해치상이 짊어지고 있다.
▲ 법고와 해치상 범종각의 법고를 해치상이 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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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풍경소리 마음을 흔들어 깨우네

대웅전은 영취산을 등지고 있다. 사찰 이곳저곳 불사를 위해 파헤쳐지고 빛바랜 단청 때문일까. 한기가 더해진다. 대웅전의 풍경소리가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대웅전 전면 좌우에는 말없이 참선한다는 ‘적묵당’과 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심검당’이 있다.

범종각에는 목어, 범종, 법고가 있다. 범종각의 법고를 해치상이 짊어지고 있다.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정의의 영물로 알려진 해치는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뿔로 받아버린다고 한다. 

의승 수군 유물전시관의 뒤편을 돌부처상이 삥 둘러싸고 있다. 흥국사는 의승 수군의 본부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활약했던 승군들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이곳과 주변 20여개의 암자에 머무르면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1593년 1월에 쓴 이순신 장군의 장계에 의하면 1592년 9월에 조직된 승군 400여명이 육지와 바다에서 전투에 참가했다고 한다.

마음의 근심을 푼다는 해우소
▲ 해우소 마음의 근심을 푼다는 해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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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전시관 곁에는 마음의 근심을 푼다는 해우소가 위치하고 있다.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수령이 100여년을 넘었다는 보리수나무 고목은 이끼가 뒤덮고 있다. 대웅전 곁에는 무사전이 있다. 다른 사찰의 경우에는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이라 불리는 전각이다. 흥국사에서는 이를 무사전이라 현판하고 있다.

무사전은 개인의 이유나 사정에 의해서 사후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과응보에 의해 과보를 받으므로 무사(無私)라고 했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하고 있는 흥국사 무사전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신이 협시하고 있다.

대웅전 뒤편에는 불조전, 팔상전, 응진전이 있다. 불조전은 흥국사와 관계된 역대 조사들의 영정을 모시는 전각이다. 1630년에 청파대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1820년에 침용대사가 중수했다고 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지금의 건물은 1935년 춘봉대사가 청운암에서 이건해 현 위치에 건립한 건물이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그가 살아가신 일생의 모습을 8폭의 탱화로 그려 모신 곳이다.
▲ 팔상전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그가 살아가신 일생의 모습을 8폭의 탱화로 그려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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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동백의 붉은 꽃송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풍경소리 요란하다.
▲ 동백나무 못다 핀 동백의 붉은 꽃송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풍경소리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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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8호로 지정된 팔상전은 법화 신앙이 행해졌던 사찰에 많이 지어졌는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그가 살아가신 일생의 모습을 8폭의 탱화로 그려 모신 곳이다.

흥국사 팔상전은 조선후기(17세기)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3칸 팔작집 양식으로 대웅전에 버금가는 부속건물로서 기둥에 배흘림과 안쏠림, 귀솟음이 나타나 전통적인 형식을 띠고 있으며 불단 위에 ‘亞’ 자형 닫집이 있어 매우 호화롭게 건립되었고 50여점의 조선후기 명문 기와가 확인되어 흥국사 불사의 연혁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은 부처님의 직계 제자를 모신 곳이다. 응진전 뒷 담장의 동백나무는 수많은 붉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직박구리 우짖는 동백나무를 거센 바람이 휘젓고 지나간다. 못다 핀 동백의 붉은 꽃송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풍경소리 요란하다. 하얀 눈발이 흩날린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전남 여수시 입구(국도17호선) - 석창(여수국가산단입구) - 중흥삼거리(우회전) - 흥국사



태그:#법당 문고리, #행운, #행복,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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