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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남해 가천마을의 다랑이 논.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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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9일 지긋한 나이에도 마음은 늘 청춘인 김호부 선생님,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 케빈(Kevin), 김해에 사는 콩이 엄마와 함께 남해 나들이를 했다.

그날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는 날로 내겐 마치 하루를 덤으로 얻은 휴일 같았다. 최종진 시인의 '대통령'에 나오는 시구(詩句)처럼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통 매달고 시골 사는 시인 친구 찾아가는, 그런 대통령을 그리면서 한 표를 행사한 뒤 나는 약속 장소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 입구로 갔다.

구불구불 계단식 다랑논과 암수바위를 찾아

 
▲ 미륵불이라 불리어지는 암수바위의 숫미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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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20분께 마산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아름다운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지나서 11시 20분께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도착했다. 남면 평산마을에서 그곳 가천마을을 거치는 15km 정도의 남면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겨울 햇살을 받고 반짝거리는 쪽빛 바다가 꿈꾸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가천 해안 갯바위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 또한 한가롭기 그지없다.

가천마을은 옛날에는 간천(間川)이라 부르다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加川)으로 바뀌었다. 지난 2005년에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그곳 다랑논을 바라보면 한 뼘이라도 농토를 더 넓히려 했던 옛사람들의 고달픈 마음과 억척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석축을 쌓고 계단식으로 100여 층의 구불구불한 다랑논을 만들어 마늘과 벼를 심었다.

 
▲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의 밥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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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를 세워 두고 가천마을로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조선 영조 27년(1751)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나타난 노인의 계시에 의해 발견된 한 쌍의 암수바위(민속자료 제13호)를 볼 수 있었다.

만삭이 된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듯한 바위를 암미륵, 높이가 5.8m, 둘레가 2.5m 크기로 남성의 성기 형상으로 서 있는 바위를 숫미륵이라 부르며 해마다 음력 10월 23일이 되면 풍요와 다산(多産)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또 미륵불로서 자리 잡은 암수바위 앞에 엎드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옥동자를 얻으려고 지극 정성으로 빌었을까. 척박하고 비탈진 땅을 열심히 일군 옛사람들의 노고만큼이나 그 눈물 어린 소망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해마다 음력 10월 15일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동제(洞祭)를 지내는 밥무덤 또한 인상적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사람을 제주(祭主)로 정해 마을 뒷산의 깨끗한 황토를 밥무덤의 기존 황토와 바꾸어 넣고 햇곡식, 과일, 생선 등으로 상을 차려서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 뒤 젯밥은 한지에 싸서 밥무덤에 묻어 두었다.

마침 마을 회관에서 나오던 친절한 할머니가 권수경 감독의 <맨발의 기봉이(2006)>를 촬영한 집을 가리켜 주었다. 달음박질치듯 신나게 갔는데 폐가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너저분한 광경에 실망했다.

우리는 마산에서 출발할 때부터 가천마을에서 오르는 설흘산(481m) 산행을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입산 금지 기간이라 어쩔 수 없이 산행 계획을 취소하고 참게 양식장이 있는 둑에 앉아서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했다. 바람이 꽤 차가웠지만 소풍 나온 기분이 들어 참 좋았다.

 
▲ 권수경 감독의 <맨발의 기봉이>가 촬영된 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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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바람과 바람개비의 약속이 있는 곳

 
▲ 남해 바람흔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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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람흔적 미술관(남해군 삼동면 봉화리)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인 공간과 무료 전시실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합천 바람흔적 미술관을 처음 만든 최영호씨가 남해로 옮겨 와 새로 꾸민 이색적인 미술관이다.

올 5월에 손수 차를 끓여 마시고 차 값도 알아서 함지박에 넣는 즐거움을 은근히 기대하고 합천 바람흔적 미술관을 찾았는데 운영 방식이 바뀌어 적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그곳을 처음 열었던 사람이 지금 남해에서 바람흔적 미술관을 하고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꼭 가 보고 싶었다.

 
▲ 무료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남해 바람흔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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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람흔적 미술관은 바람의 흔적 따라 바람개비가 빙빙 돌아가면서 차임벨이 울리는 이색적인 미술관이다. 음계에 맞춰 바람개비마다 하나의 음(音)을 조율해 놓아 바람이 부는 흔적 따라 하나의 음악이 탄생된다. 사람과 바람과 바람개비의 약속에 의해 소리가 창조되고 바람개비는 그 소리를 내는 악기인 셈이다.

 
▲ 하나의 음을 조율해 놓은 바람개비들이 바람의 흔적 따라 잔잔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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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주인이란 표현을 굳이 고쳐 주고,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고 얼굴을 찍는 것을 꺼리던 최영호씨.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솔, 레, 도'의 음이 울리고 계절마다, 달마다 바람개비 소리가 다르게 들려온다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다가서는 신선한 미술관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비 탄생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와의 만남

 
▲ 남해 나비생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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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늦었지만 그 부근에 있는 나비생태관에도 잠시 들렀다. 나불나불 나는 모습에서 이름을 얻었다는 나비. 섭씨 25~27도의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어야 하고 햇빛이 없으면 잎사귀 뒤에 숨어 날아다니지 않는다 한다.

우리는 나비온실의 갈대에서 극남노랑나비가 잠자고 있는 모습 등을 구경하고 체험학습실로 내려가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의 시기를 거쳐 한 마리의 예쁜 나비로 탄생하기까지 마치 아이 돌보듯 정성을 쏟고 있던 신윤석씨를 만났다. 애벌레 한 마리를 다룰 때 50~100 마리의 나비를 보는 듯 한다는 그는 팔순이 되어 가는 나이인데도 지난해 3월부터 아예 그곳에서 자면서 일을 돕고 있었다.

 
▲ 예쁜 '암끝검은표범나비'로 날아갈 번데기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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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들이 잠자고 있는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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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부터 시작하여 40일 정도 지나면 나비로 탄생하는데, 그 나비의 수명이 3~4주밖에 되지 않아 늘 안타깝다"는 그는 암끝검은표범나비의 번데기들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었다. 암끝검은표범나비의 번데기는 짙은 갈색으로 가장자리 쪽에 은색 점무늬가 보석처럼 있고 가시 모양의 돌기가 나 있어 실에 그대로 붙어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 같다. 아름다운 창선,삼천포대교를 거쳐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나비는 알에서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태그:#암수바위, #바람흔적,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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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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