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부 정책으로 폐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폐교 활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활용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도 적지 않고, 교육부의 폐교 매각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살아난다'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아울러 최근 개교한 오마이스쿨에서 12월 20일부터 1박 2일 동안 바람직한 폐교 활용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번에 우리가 찾아간 곳은 경북 예천 상리면 고항리에 있는 산업곤충연구소.


16일 새벽밥을 먹고 찾아간 이 연구소는 지난 1996년 3월에 문을 닫은 은풍초등학교 고향분교에다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곤충연구소예요. 오랫동안 곤충을 연구하여 농사일에 써서 더욱 좋은 열매를 거둬들이고 돈을 벌어들이며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를 하는 곳이지요. 말하자면, '폐교'를 활용하여 아주 멋진 연구소를 만든 거랍니다.


제가 사는 구미에서 예천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다고 여겼는데, 김천·상주·점촌·문경을 거쳐 굽이굽이 돌아가는 버스라서 그랬는지 꼬박 세시간을 탔답니다. 그래도 모처럼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가는 기분은 무척 설렜답니다.


예천 읍내를 지나 곤충연구소를 찾아가는 길. 927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달리더니, 차츰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바로 산 밑에서야 연구소를 만날 수 있었답니다. 어쩌면 예까지 오면서 보던 시골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도 한 그런 멋진 건물이었어요.

 

문 닫은 학교가 곤충연구소로 다시 태어나다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의 은풍초등학교 고항분교. 1962년 4월 7일에 처음 문을 열고 1996년 3월 1일에 문을 닫을 때까지 574명이나 되는 졸업생들이 배우고 자랐던 삶터였답니다. 지난 날에는 이 작은 마을에 150집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고항분교가 문 닫을 즈음에는 50집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요. 요즘 어느 시골이나 자기 삶터를 도시로 차츰 옮기는 게 흔한 일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요.

 

이렇게 옛 기억 속에만 자리잡고 묻힐 뻔한 이 폐교가 오늘날 멋진 연구소로 새롭게 태어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게다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다준 곳이라면 믿기세요?

 

지난 1998년 당시 김수남 예천 군수(지금도 예천군수입니다)는 60%가 농사일을 해서 살아가는 예천 군민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한 가지 생각해 냈어요. 그게 바로 이 폐교에다가 곤충연구소를 차리게 된 첫걸음이었어요. '곤충을 잘 키워 농사일에 쓴다'. 아주 남다른 생각이라 여겨지지 않나요? 한 지도자의 깨이고 앞선 생각과 실천이 밑거름이 되어 그 때부터 아홉 해가 지난 2007년 8월에는 '2007 예천 곤충바이오엑스포'를 성공으로 이끈 열매를 맺게 했답니다.

 

네? 곤충이 돈이 된다고요?

 

여기에 올 때부터 매우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곤충연구소 이름 앞에 '산업'이란 낱말이 왜 붙을까? 산업이라면 '돈'과 잇닿아 있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곤충이 어떻게 돈이 된다는 것일까? '산업곤충연구소'의 오규섭 시설운영담당과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먼저 물었던 게 바로 이 물음이었어요.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산업곤충연구소'라고 하면 틀림없이 돈이 된다는 얘기인데요. 도대체 곤충과 돈이 무슨 연관이 있지요?"

 

"네. 맞습니다. 곤충이 돈이 됩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곤충을 키워서 농사일에 쓰고 있는데요. 옛날에는 환경이 깨끗해서 벌, 나비 따위 곤충이 많아서 열매를 맺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꽃의 암술과 수술이 수정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지요. 그러나 환경이 오염되면서 이런 큰일을 하는 곤충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곤충을 인공수정을 하여 많이 키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워진 곤충이 꽃들이 수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요. 이런 곤충을 '화분매개곤충'이라고 하는데요. 그 가운데 머리뿔가위벌과 호박벌(땅뒤영벌)이 있는데요, 이것들을 많이 키워서 농사일에 쓸 수 있도록 보급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꽃의 암술과 수술을 수정하여 좋은 열매(과일·채소)를 맺게 하는 데 곤충이 쓰인다는 거네요."

 

"네. 그렇지요. 그뿐 아니라 옛날에는 호박벌을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 왔답니다. 한 통에 30만원에 들여왔는데, 우리 연구소에서 인공수정으로 키워서 농가에 8만원에 보급하고 있답니다. 거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값이지요. 곤충을 이용하여서 농사를 지으면 기형 과일도 줄어들고 수확량도 많고, 매우 질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렇군요. 이제야 곤충이 왜 돈이 된다고 했는지 알겠어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장수풍뎅이 같은 애완곤충도 있고요. 벌이나 누에처럼 양봉, 양잠, 약용곤충 따위에 쓰이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돈이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물이 맑고 깨끗한 자연을 자랑하는 예천에서 곤충을 키워 농사에 쓴다는 건 바로 그만큼 깨끗한 지역이라는 걸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고, 이런 지역에서 나오는 과일이나 채소는 소비자가 믿고 살 수가 있다는 거죠.

 

실제로 예천군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가가치입니다. '예천 하면, 곤충군!' '곤충이 많이 사는 예천에서 나온 과일과 채소는 깨끗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지역 군민들이 잘 사는 건 틀림없겠지요?"

 

 

 

 

효자 곤충이 예천군의 가장 큰 사업

 

오규섭씨의 얘기를 들으니, 예천에서는 이 곤충들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더구나 지난 8월에 열린 '곤충바이오엑스포'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둔 행사였어요. 사람 수가 4만9천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군에서 하는 엑스포에 61만2천명(행사 기간 12일 동안에 61만2375명이 다녀감)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처음엔 30만명쯤으로 기대를 했는데, 그것보다 두 배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니 꽤 성공한 행사가 틀림없지요.

 
 이것이 모두 남다른 생각으로 폐교를 그대로 두지 않고, 이곳에다가 연구소를 차리고 꾸준하게 애쓴 열매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런데 한 가지 매우 안타까운 게 있었어요. 이 산업곤충연구소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고, 효자와도 같은 많은 곤충들이 나고 자랐던 학교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올해 치른 곤충바이오엑스포를 앞두고 옛 건물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다가 곤충생태원과 곤충생태체험관을 새로 지었어요. 지난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던 운동장에는 곤충분수대를 만들어 두어 이곳을 찾아오는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고 동무가 되었답니다.


 

문 닫은 학교. 비록 낡아도 지난날 학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라고 갔기 때문일까? 몹시 아쉬웠지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돈이 되고, 깨끗한 자연을 살리는 훌륭한 연구가 오랫동안 이어왔다는 걸 생각하니 그리 많이 서운하지는 않았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치단체에서 투자를 하고 꾸리는 산업곤충연구소는 오직 예천 한 곳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이 산업곤충연구에 더욱 힘써 FTA에도 맞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이밖에도 곤충역사관, 곤충생태관, 곤충자원관, 곤충체험관 따위를 꾸리면서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도 소중한 교육마당으로도 꾸준히 이끌어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곤충엑스포를 잘 치른 뒤에도 한 주에 500명쯤 되는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번에 산업곤충연구소를 돌아보면서 큰 믿음을 안고 돌아왔답니다. 곤충과 농사일이 만나서 돈이 되고, 깨끗하고 물 좋은 환경에서 농사꾼이 더욱 잘사는 예천군이 되리라는 굳은 믿음을 말이에요.

 

덧붙이는 글 | 예천 산업곤충연구소 054)650-6466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산업곤충연구소, #예천, #폐교, #곤충, #오규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