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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육성'을 통해 확인됐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한사코 부인해왔던 바로 그 내용이다. "내가 BBK란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이 후보는 2000년 10월17일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16일 공개된 동영상은 지금까지 이 후보의 해명과 검찰 수사결과의 신뢰성을 뿌리째 흔드는 내용이다. 이 후보가 이날 밤 특검법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17일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최종적인 진실규명은 특별검사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지만, 육성을 통해 확인된 명백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지금 곧바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의 본질은 피해자 5200명, 피해액이 600억원에 달하는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 후보가 과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느냐에 있다. 이 후보는 김경준씨와 '한때 동업자 관계'였다는 사실까지만 인정할 뿐, 주가조작이 실행된 시점에서는 이미 김씨와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최종적인 결론에 대해 예단할 수는 없다. 특검 수사 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투표일까지 이대로 덮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후보는 이번 동영상에 담긴 자신의 육성과 그간의 해명에 왜 '불일치'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투표장을 향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BBK 투자를 권유했을까

 

무엇보다도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통해 "BBK와 직접이든, 간접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는 그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주식 보유 등 직접적인 소유관계가 있는지는 나중에 특검 수사를 통해 정확히 밝혀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후보가 BBK를 자기 회사로 선전하고 다녔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후보는 17일 YTN 방송연설에서 "당시 신금융산업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정확한 표현이 있었던 것 뿐"이라고 해명을 시도했다. 그는 "바로 그 강연 전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BBK가 김경준이 설립한 것임을 명확히 한 바 있다"며 "이 부분은 검찰도 이미 수사했던 내용으로 수사결과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어제 다시 확인했다"고 말해 <동아일보>와 검찰을 '결백'의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이 후보의 이런 해명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국민 기만인지가 명백히 드러난다. "BBK를 내가 만들었다"는 그의 말은 결코 순간적 실언이 아니라 강연의 전체 맥락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김경준과 새로 시작한 인터넷 금융사업을 자랑하면서 사실상 사람들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공개 강연석상에서 이 정도였니 사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더 노골적으로 BBK 투자를 권유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시 <문화방송> 기자였던 박영선 의원이 이 후보로부터 투자권유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고, 그런 권유를 받았다고 비공식적으로 증언하는 기자들도 많다. 그의 투자권유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던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후보의 평소 해명대로 설사 김경준씨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도중에 관계를 끊었다 하더라도 그를 보고 BBK에 투자해서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정황이다.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이 후보가 김경준씨에게 사기를 당한 셈인데, 그는 이 사실조차도 자신의 입으로 시인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입에 담기 싫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수록 의혹은 커지고 그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인터뷰 시치미... 언론인 '능멸', 독자 '우롱'

 

이런 거짓말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언론인과 그 뒤에 서있는 독자, 국민들을 속이고 능멸했다. 이 후보가 BBK를 자신의 소유라고 말한 것은 문제의 광운대 특강에서만이 아니다. 2000년 10월16일자 <중앙일보>, 11월12일자 <일요신문>, 이듬해 3월 <월간중앙> 등 다수 언론 인터뷰 기사에 같은 취지의 발언이 나온다.

 

이 후보는 이런 기사들에 대해 '와전됐다'거나 '오해'라고 해명해왔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오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들이 이 후보가 하지도 않은 말을 곡해하거나 확대해서 잘못된 기사를 썼다는 식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당시 인터뷰 기사들도 모두 사실임이 밝혀졌다.

 

동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의 위세에 눌려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들은 엉터리 기사나 쓰는 무능한 기자로 낙인 찍힐 뻔 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언론인 몇 사람쯤 '바보'로 만드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그의 사고방식이 무섭다. 그의 인생과정을 통해 철저히 몸에 뱄을 법한 '강자의 논리', '정글의 법칙'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 능멸은 한 개인에 대한 위해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인에게 '알 권리'를 위탁하고 있는 독자와 국민 전체를 우롱하는 행위이다.

 

이명박 후보는 정면으로 답하라!

 

이 사건의 '진실'은 이명박과 김경준 등 당사자 몇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대선 전까지 100% 진실이 드러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후보의 육성 동영상 공개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 이 후보가 끝내 침묵하고 넘어간다면 이는 두고두고 후환으로 남을 것이다.

 

이 후보는 '공작'이나 '오해'라는 애매한 말로 이 국면을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의 해명 가운데 숨기거나 거짓말 한 부분이 어디인지, BBK 투자자들에게 입힌 직·간접적 피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또 그가 인터뷰한 언론인들을 능멸하고 국민을 우롱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소한 이 정도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드러난 사실의 의미를 국민들이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부족해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정상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기는 힘들다. 허물을 덮기 위해 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불신이 불신을 낳고, 혼란이 혼란을 부를 것이다.

 

이명박 후보에게나 우리 국민에게나 이보다 더 불행한 사태는 없다. 그런 당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태그:#BBK, #이명박, #2007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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