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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 그 피해 현장은 참담했다. 사고 8일째를 맞은 지난 14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의 신두리 해수욕장은 검은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로 신음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사고 초기에 비해 상당히 복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물위에 떠있는 기름띠와 백사장에 스며들어 층을 이룬 기름들이 상처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독한 냄새와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해안이 예전의 푸르고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해경과 소방대원,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 등 6440명이 참여한 신두리 해수욕장 방제작업 현장에 다녀왔다.


밀려드는 자원봉사자..."현장에 갈 버스가 없어요"


밀물과 썰물을 고려할 때, 이 날 해안 방제작업이 가능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전 9시 20분경 태안 터미널은 이미 도착해있는 자원봉사자들과 연이어 속속 도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방제작업이 진행 중인 곳까지 운행하는 차편을 알아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모든 버스가 방제작업에 참여할 군 병력을 수송하느라 터미널에 운행이 가능한 버스 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없어 자원봉사자들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이날 전역했다는 인근 32사단 군 장병을 만나 부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전역 직전까지도 방제작업에 참여했다는 그는 “5분 대기조와 경계근무 인원 등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장병이 방제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부대의 수송트럭만으로는 부족해 시내버스와 좌석버스 등이 병력수송에 동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복구 작업에 지역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고 있는 긴박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방제 물자 부족, 지휘체계 부재 '이중고'

 

현장에 마련된 재해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이 날 방제에 지원된 물자는 유흡착제(흡착포) 3600kg, 1회용 작업복 1200벌, 고무장화 800족, 포대 1만8000장에 이른다. 그러나 작업인원과 작업량에 비해 지원되는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제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방제전문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매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데다 원유에 노출된 장비는 재사용이 어려워 물자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사고 초기, 해경이 보유하고 있던 방제도구가 대부분 피해가 극심했던 만리포로 집중됐던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주요한 방제수단인 유흡착제의 경우 기름을 흡착한 것들은 전량 폐기하기 때문에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고육지책으로 자원봉사자들의 헌옷가지들과 현수막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부족한 물량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이에 재해대책본부와 업체 관계자는 봉사에 나서는 단체나 개인들에게 작업복이나 장갑, 장화 등의 기본 장비를 지참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물자 부족과 더불어 지적되는 악재는 지휘체계의 부재다. 피해복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다른 일들을 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나 중앙의 통제가 없기 때문에 작업은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동원된 물자와 인원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대다수 인원이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방제작업을 위한 효과적인 통제가 어렵다.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에게 작업순서, 방법, 주의사항 등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시로 자원봉사자들이 오가는 데다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봉사자들 모두를 통제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효율적인 작업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작업 주의사항조차 재해대책본부 앞에만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재해대책본부에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방송통제 외에 보다 효과적인 통제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폐기물처리 늦어져 2차 오염 우려

 

방제작업에 투입된 물자가 많은 만큼 기름을 빨아들인 흡착포, 기름에 오염된 모래, 방제작업 도구 등의 폐기물은 매일 대량으로 발생한다. 3km에 달하는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생기는 폐기물 양이 너무 많아 담당 업체에서는 추산조차 못하고 있다. 하루의 작업이 끝나면 해안에 가득 쌓인 이 폐기물들은 모두 수거되어 폐기물처리장으로 보내진다.

 

인근지역에 폐기물처리장이 없어 이천, 군산 등으로 보내지는데 부족한 차량으로 먼 거리를 오가느라 폐기물처리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처리가 늦어져 이미 폐기물하치장 주변은 포대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2차 오염의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서 폐기물 운반을 위해 덤프트럭 5대와 페이로다 2대를 현장에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희망의 손길로 푸른 바다를 되찾는다


지난 95년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여수 앞바다 해저에는 채 제거되지 않은 기름찌꺼기들이 남아있다. 서해안 사고는 당시보다 유출된 원유의 양이 많아 복구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전국에서 몰려드는 자원봉사자의 힘 때문에 희망적인 예측도 나오고 있다. 12일 20시 현재 신두리 해수욕장의 누적 방제인원은 2만1618명으로 집계된다. 14일 이곳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집계가 어려운 개인자원봉사자를 제외하고도 43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35명의 인원과 함께 자원봉사에 참여한 대학생 최영기(26)씨는 학생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고 한다. 태안지역 자원봉사를 위해 개설한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greesea)의 부운영자인 그는 “카페 개설 이틀 만에 2천명이 넘는 회원이 몰렸다”며 피해복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어려울 때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얻어 함께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위해 혼자 이곳을 찾은 김성민(20)씨는 “뉴스를 통해 피해현장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아직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곳의 모습을 직접 봐야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 날 방제작업에는 개인봉사자와 소규모 단체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했다. 대한불교 조계종과 불교환경연대는 충남지역 사찰의 신도와 승려들로 구성된 800명가량의 인원을 투입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방제작업에 350여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피해복구지원본부를 마련하고 30~40명이 사고현장에 상주하며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한지적공사, 강동구 자원봉사센터 등 많은 단체가 피해복구에 동참했다.

 

도움의 손길은 방제작업뿐 아니라 의료지원으로도 이루어졌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은 이 날 지역주민과 지원봉사자들의 진료를 위해 응급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내과, 외과, 안과, 피부과,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약사 등 24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은 2박 3일 간 현장에 머무르며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매일매일 수많은 자원봉사의 손길이 태안에 도착하고 있지만 자원봉사자에 대한 정보제공이 아쉽다. 만리포, 천리포, 신두리 등 이름난 해수욕장의 경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찾고 있지만 작은 포구나 사람의 통행이 적은 해안의 경우 방제작업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실제 피해지역과 작업인력이 필요한 곳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자원봉사자들이 한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태안군청은 홈페이지에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단체나 기관을 위한 안내 전화번호를 게시하고 있지만 개인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안내는 전무한 실정이다. 더욱이 개인봉사자의 경우 현장에서 장비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장비를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개인봉사를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참여방법이나 방제작업이 시급한 지역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이 시급하다.

 


복구 작업이 더디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함께 안타까워하고 애쓰는 이들이 있어 피해 복구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안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기사의 내용과 사진은 모두 작성자의 직접취재에 의한 것으로 무단 사용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태그:#태안, #기름유출사고, #신두리,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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