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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지난 11월 12일 가칭 '통합민주당'으로 합당을 선언했다.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오충일 대표,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박상천 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4인회동을 통해 당대당 통합에 합의한 뒤 손을 잡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지난 11월 12일 가칭 '통합민주당'으로 합당을 선언했다.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오충일 대표,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박상천 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4인회동을 통해 당대당 통합에 합의한 뒤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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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후보는 13일 정치적 텃밭인 호남을 훑었다. 전남 여수에서 순천, 목포, 광주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돌았다. "10년 전 김대중, 5년 전 노무현이 들었던 깃발을 지금은 정동영이 들었다"며 정통성을 강조했다.

이날 목포 유세를 마치고 광주로 넘어오는 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함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당부에, 정 후보는 "정신적으로는 이미 민주당도 하나라도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물리적으로는 해볼만큼 해봤다는 판단일까?

"민주당과는 정신적 단일화"... 호남표 흡수 단독 플레이

지난 10일 재개되었던 정동영-이인제 후보 단일화 및 통합 협상은 이틀만에 끝을 봤다. 무산이다. 이인제 후보가 당론을 받들겠다며 완주를 선언했다. "대선 선거일까지 일체 통합신당과 단일화 및 통합 논의는 하지 않겠다"며 최후 통첩장을 날렸다.

정동영 후보측도 더는 미련이 없다는 분위기다. 신당측의 협상파트너인 정대철 총괄선대위원장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 분위기는 대체로 "물 건너갔다"는 쪽이다. 민주당과의 물밑 협상을 진행해온 한 핵심관계자는 "이제 정신적 통합을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며 "끌어안거나 말려죽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는데 결국 민주당이 회생불가능한 길을 선택했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 후보쪽은 민주당이 결국 등을 돌렸으니 호남인들을 직접 상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냐는 판단이다. 단일화 협상이 깨지자, 정 후보가 호남을 누비며 자신이 적자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 후보에게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가치' 측면에서의 질적인 통합이라면 이인제 후보와는 세력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양적 팽창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앞서의 핵심관계자는 "정동영+문국현=2지만, 정동영+이인제=10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5 대 5로 지분을 나누는 것에도 합의해 줬던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은 물론, 수도권의 호남 지지자들이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선택지가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는 현재 호남에서 60% 수준의 표를 회수했다. 나머지 40%, 그리고 수도권으로 지지세가 퍼져나가는 계기가 사실 이인제와의 단일화였다. 이제 다 물 건너갔다. 지금 해봤자 효과도 없다."

이날 정 후보는 유일한 우세 지역인 호남을 돌며 '기적의 역전승'을 자신했다. '꿈'이 담긴 구호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문국현, 이인제와의 단일화가 깨진 뒤 정동영 캠프에서 잡고 있는 목표치는 확실한 2위다. 득표율은 "박박 다 긁었을 때 25%"라고 판단한다. 자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고치다. 단일화는 30%대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단일화 효과 기대접은 정동영, 박박 긁어 25% 득표 목표

민주당 내에서 통합파는 김종인, 이상열, 최인기 의원 정도다. 김종인 의원은 정동영 캠프에 이미 경제자문역을 맡고 있고 이상열 의원은 단일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최인기 의원이 동조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통합파는 독자노선을 고집한 조순형 의원을 고립시키고, 이인제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이인제 후보는 온건한 입장이었지만 결국 지난 12일 단일화와 통합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수파에 자신의 의지를 실었다. ▲ 후보 단일화와 통합 없이 독자적으로 가는 방안 ▲ 단일화는 하되 통합을 유보하는 방안 ▲ 통합과 단일화를 함께 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단일화 찬성은 소수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총선이 6개월 뒤만 되었어도 어떻게 해볼텐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권에선 단일화 협상이 결실을 내지 못한 건 근본적으로 내년 4월 총선 탓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정동영 후보측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회창 후보측에서도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미 장전형 전 대변인은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통합신당에 합류했던 민주당 출신 당협위원장 22명은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조순형 의원(무소속)은 영입 대상 1호다. 조 의원은 일단 대선 전에 특정인을 지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이회창 후보에 대해선 "자신의 신념과 부합되는 인물"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통합신당은 이들에 대해 민주당과 통합을 한다 해도 총선에서 지역구를 배당받기 힘든 원외인사들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자 13일 지역 언론들은 비판적인 논조를 보였다. 또한 "민주당이 이러다가 아예 간판을 내리게 되는 것을 아닌지 모르겠다"며 비판 여론을 전했다. 정치인 개인 차원을 넘어 당의 존립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이상열 의원이 정형호 마포위원장과 함께 12일 오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국회 본청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을 지나던 장영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이상열 의원이 정형호 마포위원장과 함께 12일 오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국회 본청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을 지나던 장영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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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프레임 '한-민공조', 이참에 정면돌파?

'한민공조'는 민주당에게 치명적인 프레임이다. 2003년 한나라당과 공조해 노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가 지지자들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이듬해 총선에서 9석 초미니 정당으로 몰락했던 쓰라린 추억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민정당, 그 후신인 한나라당과 손을 잡은 것 자체가 용서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다.

이후에도 공조의 손짓은 여러 차례 있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표 시절, 한나라당은 호남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지 못하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이에 화답하듯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한-민공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정치연합의 대상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이명박 후보는 경선 출마표를 던지며 '대한민국 선진화 추진회의(가칭)'0 구성을 제안, "호남 중심의 민주당 일부"를 연대의 대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명박 캠프에서는 현재진행형인 얘기다. 전략통인 한 인사는 "내부에 (민주당과 연합을) 추진하는 단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동서화합 차원에서 명분은 있지만 자칫하면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서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합신당과 단일화 협상이 재개될 무렵, 이명박 후보측의 박희태 의원과 박상천 대표가 두 차례 회동을 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 퍼졌다. "공동정부안을 주고받았다"는 둥 소문이 무성해지자 민주당은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경재 민주당 선대위원장(자료사진).
 김경재 민주당 선대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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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나라당과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물론 이회창 후보와의 연대에 대해 내부에서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인사다. 지난 9일 KBS '심야토론'에 패널로 나와서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대북관 등 정책에 있어서 이명박 후보와 조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대상으로 따지면 한나라당 보다는 무소속과 연대하기가 좋은데 (이회창 후보) 자신이 '원조보수'라고 주장하고 있어 정책 조율에 어려움이 있다. …몇몇 민주당 당협위원장들이 이회창 후보에게 갔지만 '차마 한나라당은 가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었겠나. 하지만 정책적으로는 이쪽(한나라당)과 더 가깝다. 그게 딜레마다. 사실 심정적으로는 통합신당하고 하는 게 가장 속이 편하다. 과거 동지들도 많고. 그런데 도대체 반성의 기미가 없다."

듣고 있던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역사성의 차이는 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치면 정책을 우선시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십시오. 잘 될겁니다"라고 훈수를 뒀다.

남은 딜레마 "정책은 한나라당이 맞는데 연대는 무소속이 편하고"

결국 민주당은 독자노선을 확정지었다. 섣불리 통합신당에 후보 자리만 내주고, 지분도 공천권도 약속받지 못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대선 이후, 어떤 기약이 있기 때문일까?

노회찬 의원의 제3자적 시각과 달리 민주당 '친정' 식구들은 감정을 드러냈다. 특히 'DJ 계승 정당'인 민주당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측의 심기가 편할리 없다. 동교동측의 한 인사는 "(민주당이) 죽는 길로 가고 있다"며 "민주당의 기반이 호남인데 (한나라당 세력과 연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민주당 지지자들이 지지하겠나"라고 말했다.

DJ 차남인 김홍업 의원은 얼마 전 기자와 만나 "민주당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이명박과 호남의 연합은 정치공학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한나라당의 전신 정당의 압박을 받아본 호남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의 반사작용으로 일시적인 분열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노린다면 냉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동영 후보와 같은날 이인제 후보도 전주, 목포, 광주 등 호남을 돌았다. 하지만 "신당에 표를 줘봐야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갈 것"이라며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두 후보는 "한나라당 집권은 막아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호남 텃밭을 둘러싸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본게임은 대선이 아니라 총선이다.


태그:#한민공조, #이인제, #후보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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