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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 역사적, 공간적 중심인 마리엔 광장(Marien Platz). 여유가 흐르고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지만 길기만한 유럽의 해는 아직도 하늘에 높이 떠 있었다. 카우핑거(Kaufinger) 거리에서부터 뮌헨 구시가 여행의 중심지인 이 광장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리엔 광장은 독일의 중세 시대에 왕실의 각종 행사가 거행되고, 시장이 열렸던 곳이다. 마리엔 광장에서의 가장 역사적인 사건은 1568년의 빌헬름 5세 결혼 축하연이었다. 당시 이 광장에서는 기사의 마상시합이 있었고, 말들이 광장에서 질주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1638년에는 스웨덴의 뮌헨 점령 종식을 축하하는 기념탑인 마리아의 기둥이 광장 중앙에 세워졌고, 이 기념탑은 광장의 이름이 되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광장은 그때 그 광장의 모습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이 광장이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뮌헨인들의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이 광장에 서면 낭만과 사랑이 느껴진다. 광장 주변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가득하기 때문일까? 신시청사 앞 노천카페에 한가하게 앉아 흑맥주와 식사를 즐기는 사람, 광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 광장 주변의 부티크에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 모두 한결같이 여유가 있다.

 

뮌헨 여행의 대표적인 명소가 광장 주변에 모여 있어서, 뮌헨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마리엔 광장에 자연스럽게 오지 않을 수 없다. 마리엔 광장의 편안함은 광장을 둘러싼 중세의 건축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뮌헨의 수호신인 마리아 기둥을 중심으로 광장 동쪽에는 구시청사(Altes Rathaus), 북쪽에는 신시청사(Neues Rathaus), 남쪽에는 장크트 페터 교회(St. Peter Kirche) 등이 마리엔 광장을 에워싸듯이 둘러싸고 있다. 마리엔 광장이 빛나는 것은 광장 사방의 건축물들이 하나 같이 개성 있는 외관과 함께 유구한 역사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엔 광장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둥그런 원을 만들고 원 안의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광장 한 중앙에서 펼쳐지는 거리 공연이었다. 나의 가족은 사람들이 만든 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몸이 깡마른 한 공연자가 흰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친 채 무언가를 열심히 공연하고 있었다. 광장의 관객들 사이에서 계속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광장의 관객은 어린이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유럽, 아랍, 동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은 광장을 가득 메운 여행자 관객들과 배우가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광장의 배우는 광장 뒤를 우연히 지나가는 여인들을 따라가서 짓궂게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자전거를 빼앗아 타고 광장을 질주하기도 했다. 그는 광장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랍 어린이를 무대 한 중앙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배우의 익살스런 동작을 시키는 대로 따라 해서 관객들에게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상으로 초콜릿을 받고 무대를 떠났던 이 아이는 몇 번이나 다시 초콜릿 가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와서 배우를 애먹였지만, 이 배우는 다시 공연의 동작을 멈추고,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와 공연을 이어갔다.

 

나의 딸, 신영이는 처음 보는 공연에 신이 났다.

 

“아빠! 되게 재밌다. 핸드폰 좀 줘 봐. 동영상 좀 찍어야겠어.”

 

그 공연은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되기 시작했다. 신영이는 동영상 한 꼭지 촬영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동영상 꼭지로 전 공연을 녹화하고 있었다. 신영이는 엄마, 아빠는 신경 쓰지 않고 공연을 촬영하며 계속 키득거렸다. 아내와 나는 노천카페에 앉았지만 신영이는 공연장을 떠날 줄 몰랐다.

 

뮌헨 구시가를 쉬지 않고 걸은 내 다리는 피곤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영이를 공연장에 두고, 나와 아내는 노천카페에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했다. 나의 딸은 유머 넘치는 공연을 보면서 여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신영이는 거리 공연장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그만 다른 곳에 가자는 아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럽에서의 황금 같은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뮌헨의 왕궁으로 사용되던 레지던츠(Residenz) 박물관 관람을 포기하고 이 거리의 공연을 온전히 보기로 하였다. 레지던츠 박물관을 알뜰하게 답사하기 위해 준비한 수많은 자료는 준비 자료로 끝나고 말겠지만, 나와 나의 가족에게는 이 살아 있는 공연이 더 유익한 것이었다.

 

 

결국 신영이는 무대 안으로 들어섰다. 핸드폰 동영상 촬영의 줌 기능이 시원치 않아서, 공연의 배우에게 더 다가서서 찍으려고 한 것이다. 광장의 광대가 신영이를 보더니 즉각 반응을 했다.

 

“너, 지금 내 사진을 찍고 있니?”

“예(Yes)”

 

순간, 배우는 광장의 무대에 드러눕더니 온갖 요염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신영이의 사진기와 동영상이 계속 돌아갔다. 거리의 배우는 무대에 드러눕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눕기도 하면서, 캘린더의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 취하는 온갖 야한 동작을 선보였다. 신영이뿐만 아니라 관객들 사이에서 전 세계 공통으로 공감을 일으키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칫 식상한 동작일 수도 있지만 광대의 포즈와 표정은 너무나 익살맞았다.

 

“아빠! 내가 공연의 안으로 들어갔으니 나도 공연의 일부가 된 거네. 너무 재밌어.”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리엔 광장 지하철역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차량의 운행이 금지된 광장에는 공연을 지켜보려는 사람들이 더 증가하고 있었다. 도심의 광장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이 마리엔 광장의 공연 문화는 가장 돋보이는 것이었다.

 

광장 공연이 끝나자 배우는 자신이 가져온 모자를 광장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수많은 여행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그의 모자에 동전을 넣어주고 있었다. 신영이가 아빠에게 쏜살같이 뛰어왔다. 녀석도 그의 훌륭한 공연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빠, 유로화 동전 있지? 다 줘 봐요, 빨리!”

 

신영이는 다시 광장 중앙으로 뛰어가 내 호주머니에서 나온 모든 동전을 그의 모자에 넣어주었다. 신영이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박물관에서 유물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더 즐거운 여행이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나의 가슴 속으로부터 편안함과 유쾌함이 밀려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즐거운 사람들과 더 없는 추억을 남기는 공연이 사람들 마음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에 몰려들었던 수많았던 사람들은 제 갈 길을 찾아 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광장에 일순간 적막함이 찾아왔다. 여운이 남는 그 공연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 #뮌헨, #마리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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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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