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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부 정책으로 폐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폐교 활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활용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도 적지 않고, 교육부의 폐교 매각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살아난다'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아울러 최근 개교한 오마이스쿨에서 12월 20일부터 1박 2일 동안 바람직한 폐교 활용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화곡초등학교의 폐교 전 모습
 화곡초등학교의 폐교 전 모습
ⓒ 영동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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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의 안타까움 속에 폐교된 한 초등학교가 매출액 70억원을 넘는 '군민 기업'으로 탈바꿈해 주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주인공은 국내 토종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코리아 주식회사. 2001년 3월에 문을 닫은 화곡초등학교에 터를 잡은 지 6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에 일어난 변화는 또 있다. 이제 '폐교'는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와인 열차'를 타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연간 1만 명을 넘어섰다. 매달 7∼800명이 와서 와인을 시음하고 공장을 견학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문화공연도 즐긴다.

가히 "충북 영동에서 벌어진 포도혁명"이라 불릴만 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폐교'가 있다. 그럼 폐교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 힘은 무엇인가. 또한 학교가 기업으로, 완전히 질적으로 달라진 사례가 '폐교 살리기'의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지난 5일, 영동 포도혁명의 근원지, '지금의' 와인코리아를 방문했다.

영동 포도 농가들의 힘 '와인코리아'

이국적인 유럽 성곽 형태의 건축물이 먼저 눈에 찬다. 폐교하면 떠오르는 고즈넉한 이미지도, 방금 전 "젊은 친구들이 먹고 살 것 없어 외지로 떠나 점점 인구가 줄고 있다"는 택시 기사 말도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웰컴 투 와인코리아'. 자동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향긋한 포도 향기가 코에 가득 찬다.

"포도 증류 냄새"라며 웃는 와인코리아 여운신 부사장의 얼굴이 낯익다. 농부의 얼굴이다. 아니, "원래 포도농사로 성공했던 농부"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태동부터 지금까지 윤병태 대표와 함께 해 왔다. 함께 한 '농부'는 여 부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와인코리아의 전신인 영동포도가공은 76개 농가가 함께 설립한 영농조합법인.

화곡초등학교를 개조한 와인코리아 전경
 화곡초등학교를 개조한 와인코리아 전경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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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힘을 합친 이유는 한국형 토종 와인을 만들어보자는 것. 30년 동안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용식(69세·남)씨는 "포도농가 입장에서 공장을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조합원끼리 한 번 뭉쳐서 성공시키자는 뜻에서 회사 초기에는 식구들과 함께 술을 병에 담거나 포장하는 등 수작업을 맡아 도와줬다"고 조합원으로 참여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학계나 업계에서는 토종 와인 생산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와인 생산에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영동군 포도 농부들로서는 한번쯤 욕심 낼 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영동군은 전국 포도 최대 생산지, 게다가 영동 포도는 당도가 높아 일찍부터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교를 살아나게 만든 요인 하나.  경제적 입지 요소 탁월

문제는 공장 위치. 여 부사장은 "당초에는 양산면에 있는 마니산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국 최대 포도 생산지란 장점을 극대화하기 어려웠다"면서 "조합원들로부터도 군내 포도 농가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중앙에 자리를 잡으라는 건의가 잇따랐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주곡리를 주목한 이유다.

주곡리의 절묘한 위치는 지도를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주곡리는 영동군에서도 가장 먼저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지역이다. 그만큼 포도 농가가 많다. 영동읍사무소 정구목 산업계장은 "주곡리 농가 99호 중 76호가 포도 농가이며, 재배 면적도 지역 농경지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소개했다.

영동군 폐교 현황. 화곡초등학교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영동군 폐교 현황. 화곡초등학교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 영동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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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초등학교 폐교가 갖고 있는 입지 조건도 탁월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충북 영동교육청 관내에서 활용되고 있는 30개 폐교 중 건물연면적은 2번째(1312㎡), 대지연면적(1만4298㎡)은 8번째로 넓다. "술김에 젊은이들이 깬 유리창"만 갈아 끼우고 있기에는 아까운 규모였다.

여 부사장은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이 이 정도 규모의 부지를 확보하고 새로 건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며 "있는 건물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국도와 철로가 학교 옆을 바로 지나고 있어 운송과 홍보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년 임대료 1400만원이 아까울 리 없었다. 영동교육청 관리과 성명환 사무원 또한 "관리비만 들어가던 폐교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데다, 다른 공장처럼 유해환경이 발생할 소지도 별로 없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더구나 우리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될 수 있는 사업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직도 와인코리아에는 폐교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직도 와인코리아에는 폐교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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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부에 남아 있는 칠판
 공장 내부에 남아 있는 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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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농민-기업-관청의 3박자

마을 주민들도 기대감을 표시했다. 주곡리가 고향으로 오랫동안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배학철 포도작목반장(72세·남)은 "젊은 사람들이야 차를 많이 이용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경운기로 많이 운반하는데 마니산에 있을 때는 거리가 멀어 출하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면서 "주민들도 같은 값이면 포도주 공장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와인 바람'이 불던 시절이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와인은 일부 계층 문화"였다. 주곡리를 관할하는 영동읍 김풍연 부읍장은 "그 때까지만 해도 소주에 담가 먹는 술 정도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IMF로 백 개가 넘는 영농조합이 쓰러지는 기막힌 광경"을 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와인코리아는 포도 재배지로 둘러싸여 있다
 와인코리아는 포도 재배지로 둘러싸여 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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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동군 전체 포도 농가들의 관심은 높았다. 화곡초등학교 터로 공장을 옮기면서 조합원 숫자는 460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자 군청도 팔을 걷고 나섰다.

2004년 영동군이 22억5천만원을 출자하면서 주식회사로 전환됐고 동시에 조합원들도 농민주주로 탈바꿈했다. 현재 와인코리아 농민주주는 600명에 이른다.

매출도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영동군청 자료를 보면, 매출 실적은 2004년 22억100만원, 2005년 25억1900만원, 특히 작년에는 42억72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69%가 증가했다.

와인코리아 측은 "작년에 7억5천만원의 경상이익을 기록했으며, 올해 매출도 이미 70억원을 넘겼다"고 밝혔다. 또 와인 열차 운행으로 인한 부대 수익 역시 이미 지난 5월에 4억4천만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교를 중심으로 생산농가, 가공기업 그리고 지자체가 힘을 합친 결과다. 이는 현재 '군민기업'으로 불리는 와인코리아 자본금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자본금 60억100만원 중 법인 22억5665만원(37.6%), 영동군 22억5천만원(37.5%), 군민(농민주주) 14억9435만원(24.9%)이다. 폐교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 힘, 지역에 뿌리박은 '3박자'인 셈이다.

포도 수매가 안정, 고용 창출 등 경제적 효과 커

사람들은 '3박자'가 빚어낸 혜택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우선 이전보다 너슬포도(알맹이 숫자가 너무 많거나 적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포도. 주로 가공음료 제조에 쓰이나, 당도나 맛은 오히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매 가격이 높아졌다.

와인코리아 농민주주인 임봉식(66세·남)씨는 "예전에는 너슬포도를 음료회사가 헐값에 사갔다. 10kg에 5천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최하 8천원은 받는다"고, 주곡리 김규옥(54세·남) 이장도 "해태나 진로에서 가져갈 때보다는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영동군 전체 포도 수매가 조절 기능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농민-군청-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에서 포도 생산량에 따라 가격 조절을 하는 형태로, 와인코리아 여운신 부사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최저 가격을 선정함으로써 영동 지역 포도 판로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영동읍 정구목 산업계장 역시 "영동군 전체 과일 가격 상승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농한기를 이용한 지역주민 고용 창출도 이뤄지고 있다
 농한기를 이용한 지역주민 고용 창출도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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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 고용 창출도 이뤄지고 있었다. 와인코리아에서 일한 지 1년이 됐다는 김아무개(46세·여, 영동읍 계산리 거주)씨는 "영동군에 기업체가 별로 없어서 농한기에 일할 수 있는 곳이 드문 형편이다. 이렇게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현재 농한기를 이용해 와인코리아에서 일하는 지역 주민은 주곡리 마을 사람을 포함해 2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와 함께 대부분 사람들은 영동 포도의 브랜드화를 높게 평가했다. 와인코리아에서 일하는 고수웅(62세·남, 영동읍 부용리 거주)씨는 "과거에는 '영동'하면 강원도 영동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어디 가서 '영동'하면 '포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더라. 우리 지역 홍보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영동'하면 '포도' 현상은 올해 구체적인 사례로 입증되기도 했다. 농림부가 '영동포도 클러스터'를 최우수 사업단으로 선정했던 것. '포도 농가 중심의 농업회사법인 설립'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동군청 농정과 한재완씨는 "이로 인해 군에서 받은 사업비 규모가 25억8천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잘 사는 마을...다시 학교 열어야 하나?

수년째 정부는 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고 있다. 표면적으로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닥에 흐르는 것은 경제 논리다.

따라서 화곡초등학교의 와인코리아로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논리로 죽었다가 경제 논리로 살아난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 나아가 지역 살리기의 새로운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는 앞으로 와인코리아가 군민기업으로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새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와인코리아가 번창해서 주곡리에 젊은 부부가 많아진다면, 신(新) 화곡초등학교를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최근 주곡리도 경사를 맞았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참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최근 주곡리도 경사를 맞았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참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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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폐교, #와인코리아, #영동, #포도,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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