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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현빈
 가수 박현빈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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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전통가요 가수왕을 수상한 '트로트의 왕자' 박현빈(25)씨는 요즘 축하 전화를 받느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가수왕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빼놓지 않고 한 마디씩 한다.

"요새 대박 났다며? 돈 좀 벌었겠네!"

박현빈씨가 히트시킨 노래 3곡이 전부 대선 후보들의 로고송(상징 노래)으로 채택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노래 '오빠만 믿어' '빠라빠빠' '곤드레 만드레'는 각각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유세장에서 가사만 바뀐 채, 선거운동원들의 신나는 율동과 함께 쉴새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명박 한번 믿어봐~ 서민경제 살릴께~ 실천하는 2번, 명박 뿐야!" - 명박만 믿어 (원제 '오빠만 믿어')
"정동영! 정동영! 승리의 나팔을 울려라~ 다같이 소리 높여~ 정동영!" - 달려라 정동영 ('빠라빠빠')
"권영길~ 권영길~ 나는 찍어줄 거야, 민주노동당 권영길 3번 찍어줘!" - 세상을 바꾸는 권영길('곤드레 만드레')

특히 그의 데뷔곡인 '빠라빠빠'는 정동영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지난 해 5·31 지방선거 당시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685명의 후보가 이 노래를 로고송으로 사용해 사실상 선거 로고송 시장을 독점했다. 박씨는 가요계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최고의 인기 가수가 된 셈이다. 정말 그는 '대박'이 난 것일까?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지만... 사랑을 받았어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역광장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역광장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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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늦게 대방동에 위치한 박현빈씨의 소속사(인우프로덕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벽 등에는 박씨와 같은 소속사이면서 신세대 트로트 가수 선배인 장윤정씨의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장윤정씨 역시 각종 선거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아온 가수다. 올 대선에서도 그의 노래 '어부바'와 '짠짜라'가 각각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로고송으로 만들어졌다.

감기몸살과 피로가 겹쳐 병원에서 막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박현빈씨에게 로고송 얘기를 꺼내자, 언제 아팠냐는 듯 활짝 웃는다.

"저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에요. 유명한 가수들도 히트곡 하나 정도가 로고송으로 쓰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가 히트시킨 3곡이 모두 로고송으로 쓰인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에게 다른 지인들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선거에서 돈 좀 버셨냐. 그러나 박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수라고 해서 저에게 (로고송 사용에 대한) 신청이 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저작권협회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속사나 가수는 별개죠. 모든 결정이 나고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알았어요. 저에게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 때 3곡이 전부 팔려갔으니, 대박나지 않았냐'며 전화도 많이 오는데, 전혀 없습니다. 가수나 소속사는 그와 관련된 수입이 전혀 없어요."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선거 로고송으로 쓰일 경우 저작권자인 작사·작곡자만 수익을 얻게 된다. 저작권협회가 일괄적으로 로고송에 대한 사용료를 받아 저작권자에게 재산권에 해당하는 수익을 분배한다. 또 노래 가사를 바꾸는 등 원곡과 다르게 쓸 경우는 인격권에 해당, 사용자측에서 저작권자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사용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박현빈씨는 "가수는 (로고송과 관련해) 전혀 한 푼도 못 받지만, 저로서는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노래를 한 번 더 들려드릴 수 있는 홍보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일단 (로고송으로) 쓰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흡족해했다.

전통적으로 선거 로고송은 트로트곡이 각광을 받는다. 올해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대부분의 후보가 트로트를 로고송으로 채택하는 등 트로트 강세 현상을 보였다. 트로트곡이 갖고 있는 대중성·음악성·서민성 때문이다.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가장 폭넓게 사랑을 받고 있고, 익숙하고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따라부르거나 기억하기 쉬운 서민 가요라는 것이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대전역광장 유세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대전역광장 유세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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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이 트로트곡 중에서도 유독 박현빈씨의 노래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현빈씨는 "제가 후보라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음악이라면 로고송으로 쓰기 힘들 것 같다"며 "(로고송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쉽게 다가가야 하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노래를 두고 "제목부터가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위한 노래"라며 웃어 보였다.

"'빠라빠빠'는 2006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 응원가로 쓰였어요. 엄청나게 많은 무대에서 불려졌죠. 후보를 위해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쉽게 쓰신 것 같아요. '곤드레 만드레'는 워낙 이미지가 강하죠. 가사도 그렇고 노래 제목도 그렇고... 멜로디도 친숙하고 쉽습니다. 지금까지도 무대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노래에요. '오빠만 믿어'는 말 그대로 제목에 '믿어'라는 말이 들어가잖아요."

박씨의 노래는 멜로디가 낯익고 경쾌하며 중독성이 강하다는 트로트 고유의 장점 외에도 개사하기가 쉽기 때문에 많은 후보들이 선호한다. 특히 박씨가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가수라는 점도 한 몫했다.

'텔미'는 로고송 사절... 박현빈 "상관없다는 것, 팬들이 더 잘 알아"

로고송은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자신의 정치이념이나 이미지, 공약 등을 알리기 위해 대중가요의 가사를 고쳐서 만든 노래다.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가사가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부른 노래가 특정 후보를 홍보하는 내용으로 개사 된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또 팬들로부터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 많은 후보들로부터 가장 집요하게 러브콜을 받은 '텔미'의 작사·작곡자 박진영씨는 수억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끝내 거절했다.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텔미'의 가사가 바뀌어 선거 홍보송으로 쓰일 경우 팬들이 배신감을 느낄 것 같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와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비자금을 규탄하는 거리유세를 벌이며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와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비자금을 규탄하는 거리유세를 벌이며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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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현빈씨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빠만 믿어'를 이명박 후보가 사용하니까, '박현빈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데, 제가 그 후보를 위해서 노래를 녹음한 것도 아니니고, 멜로디만 쓰는 것이기 때문에 저와는 상관이 없다"며 "요즘 팬 여러분들도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 노래에 후보의 이름을 넣어서 고치면 조금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일단 제 노래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저를 좋아하는) 팬 여러분도 좋아하는 후보가 제 노래를 안 쓰고, 다른 후보가 쓰는 로고송만 들리니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 노래를 쓰는 후보와 제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팬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거에요."

박씨는 스케줄 이동 중이거나 길거리에서 로고송으로 변신한 자신의 노래가 들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오빠만 믿어' (로고송이 흘러나오는 차)가 지나가도 손 흔들어주고, '곤드레 만드레'가 지나가 손 흔들어주고, '빠라빠빠'가 지나가도 손 흔들어주고…. 그냥 반가워요. 그것에 대해 기분나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박씨는 아직 12월 19일에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 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혹시 자신의 노래로 로고송을 쓰고 있는 후보들 중에 선호하는 후보가 있을까?

"물론 그 세 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소신대로 투표할 생각입니다. 이왕이면 제 노래를 쓰신 분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제가 투표하는 것과 상관없이 좋을 것 같네요. 제 노래가 응원이 되고 힘이 된 셈이니까….

만약 여성 후보가 있어서, 제 노래 중 '오빠만 믿어'를 로고송으로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여성 후보가 '누나만 믿어'라고 바꿔서 부르면 모든 남성 분들이 누나를 믿지 않을까요? '누나 말만 믿어라~'... 좋잖아요(웃음)?"

가수 박현빈
 가수 박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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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탤런트 백일섭씨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연설을 하다가 이회창 무소속 후보에게 막말을 하는 바람에 논란이 일었다. 이른바 폴리테이너(정치인+연예인)의 활동이 늘고 있다. 데뷔 2년차의 아직 어린 박씨는 선배 연예인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했다.

"선배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도 다 소신껏 하고 있지 않겠어요? 후보를 응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해서 제가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요. 나중에 좋은 이미지로 꾸준히 활동을 한다면 몇십년 지나서 어떤 후보가 저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고…(웃음)."

지난 2002년에는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던 박씨는 대선 후보에 대한 투표 기준으로 '도덕성과 경륜'을 들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정치를 해 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정치요? 정치, 괜찮지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분명히 그럴 거에요. '곤드레 만드레' 하던 친구가 무슨 정치냐. 오빠만 믿으라고 꼬시던 친구가 무슨 정치냐. 분명히 이러실 거에요. 워낙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웃음)."

87.97년 대선 때 DJ의 로고송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DJ) 후보는 당시 인기 가수였던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을 개사한 'DJ와 함께 춤을'이라는 로고송을 만들었다. 김 후보는 김종필.박태준씨와 함께 이 로고송에 맞춰 DJ DOC의 춤을 흉내내는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고, 덕분에 고령이라는 약점과 경직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효과를 봤다.

그로부터 10년 전인 19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가 "군~정 종~식 김영삼, 민~주 통~일 김영삼"이라는 '군정종식가'로 바람몰이를 할 때, 김대중 후보는 "따르릉~ 따르릉~ 어서 오세요, 김대중이 나갑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로고송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선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정책이나 공약 보다는 유권자의 감성을 파고들어야 하는 후보자에게 로고송 만큼 중요한 수단도 없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 따라잡기'에 나선 세 명의 대선 후보가 어느만큼 '로고송'의 덕을 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태그:#박현빈, #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로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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