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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0여개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29일 오후 명동거리에서 '부패정치청산 수구냉전세력 척결을 위한 한국대학생 시국농성'의 일환으로 거리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전국 20여개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29일 오후 명동거리에서 '부패정치청산 수구냉전세력 척결을 위한 한국대학생 시국농성'의 일환으로 거리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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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도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대학생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노림수가 아닐까요? '경제 대통령'을 외치는 사람이 '경제 사기'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지성인이라면 누가 그를…."

9일째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시국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 유선민(25·전남대)씨는 이 후보의 '대학생 위장지지'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장지지 의혹'이란 지난 28일 전국 40여개 대학의 총학생회에서 이 후보를 지지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청주대·부산외대·폴리텍4대학 등 명단에 들어있던 일부 대학 학생회장들이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에 유씨는 "위장전입·위장취업에 이어 위장지지 논란에 휩싸인 후보가 대선 경쟁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심한 노릇"이라고 비판한 뒤 "대학생들이 비리의혹으로 얼룩진 후보를 지지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1월 29일 시국농성이 진행 중인 서울 향린교회를 찾았다. 향린교회는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결성된 곳. 유씨 등 전국 20여개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은 한국진보연대와 손잡고 이곳을 본부로 삼아 '부패정치 청산 및 수구·냉전세력 척결'을 위한 선전 활동을 시내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다음은 유씨와 더불어 농성 중인 김수연(26·목포대), 최설희(23·덕성여대), 고길동(28·전남대)씨 등과 나눈 이야기이다.

'부패청산' 농성... "지성인이 '위장' 전문 후보 지지? 한심한 노릇"

29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만난 유선민 한총련 의장. 그는 이날 현재 9일째 부패청산 시국농성 중이다.
 29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만난 유선민 한총련 의장. 그는 이날 현재 9일째 부패청산 시국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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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공약으로 치러져야 할 선거가 각종 비방과 비리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BBK 주가조작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후보가 지지율 1위이다. 그 뒤를 쫓는 후보는 1997·2002년 차떼기 및 병역비리 의혹으로 낙마,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보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살리겠다'며 정작 정책은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

유선민씨 등 진보 진영의 대학생들이 시국농성을 시작한 이유이다. 이들은 이런 문제 의식 아래 "부정부패 청산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후보를 뽑자"며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시국농성이 한창이던 11월 28일 유씨 등에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일부 대학 총학생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

유씨 등은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생회가 나선 듯하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유씨가 말했다.

"42개 총학생회가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그 중 일부 학생회장이 지지 사실을 부인한 것을 보면 기자회견이 사실과 다른 것은 아닐까. 또는 학생회장 개개인의 의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회장은 학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데 이 후보의 성향을 보면…."

이어 유씨는 "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 등은 현 정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맞물려 있는데, 이 후보의 공약을 보면 기업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부연했다.

또 이 후보를 지지한 학생회를 향해 "등록금 및 취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후보를 선별하는 고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레 비판했다. 그는 "이 후보의 대학 자율화 정책은 등록금 인상을 유발할 우려도 있다"고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의 민심은 실제 어떨까. 유씨가 전하는 말은 언론 등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누구를 적극 지지한다기보다는 선거 자체에 무관심하다. 12월 19일에 투표하러 간다기보다는 놀러간다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더욱이 취업의 문이 높아져 눈 앞의 할 일에만 급급하다보니, 골머리 아픈 정치 얘기는 꺼내기가 어렵다."

MB, 이번에는 '위장지지' 논란... "실제 대학 민심은 정치에 무관심"

부패청산을 위한 시국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향린교회. 이곳은 지난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결성된 곳이다.
 부패청산을 위한 시국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향린교회. 이곳은 지난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결성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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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씨.
 김수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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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에 이어 만난 김수연씨에게 '위장지지' 논란에 대해 묻자 김씨는 현 대학 내 선거판 문제에 빗대 비판하기 시작했다.

"정치판이나 학생회 선거나 다를 바 없다. 대학도 돈 선거, 부정 선거로 얼룩져 있다. 그렇게 학생회를 장악한 부패세력은 학생들의 권익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에만 바쁘다. 안타깝다."

이어 김씨는 "지난 여름에도 수십개의 대학이 이 후보를 지지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며 자신이 다니는 목포대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당시 이 후보 지지선언 명단에 목포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아무개의 이름도 올라 학교 내에서 물의가 빚어졌다. 그가 교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지지선언을 한 게 문제였다. 학생들로부터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행동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김씨는 이번 지지선언 명단에는 '목포대'가 빠져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위장지지 논란을 떠나 일부 학생회장이 여론 수렴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총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못박았다.

아울러 이 후보를 지지한 학생회 쪽을 향해 "과연 이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며 학우들을 위한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다"고 운을 뗀 뒤 "자립형 사립고 100여개 신설, 대학 입시자율화 등 이 후보의 교육정책만 살펴봐도 우리 사회의 소수 부유층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인데, 이를 학생회장이 지지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회 선거도 돈 선거가 판치는 건 마찬가지"

"대학생이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더 큰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외쳐야 할 텐데, 오히려 지지라니…."

최설희씨는 일부 학생들이 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최설희씨
 최설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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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씨는 실제 대학가의 민심에 대해 "대선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대세가 이 후보이니 그를 뽑자, 부모가 시키는대로 하자'는 분위기이다"고 전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선에 관심 없는 학우들이 각 후보의 이념·정책을 따지지 않고 이 후보 등 보수 쪽을 택하려는 듯해 안타깝다"고 푸념했다. "대학생답게 서로 토론회를 열고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고도 제안했다.

같은 대학의 장아름(여·20)씨도 "청년들이 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다음은 고길동씨의 말이다.

"이 후보를 지지한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게 진정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는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버는 사회, 특출난 사람만이 더 잘 사는 사회로 갈 듯 한데…."

고씨에 대학 민심을 묻자 그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에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답하면서도, 정작 지지 후보를 밝히라면 '이명박' 후보를 꼽는다. 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해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연씨도 "주변 대학생 중에는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보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씨는 "학생들이 '이 나라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해야 작은 비리 의혹도 가벼이 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깨끗한 사람' 찾으며 MB 찍겠다고?"

각 대학은 현재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에 기자가 '시험기간 중에 농성을 벌이기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자 유씨는 "대통령 선거에는 '재수강'이 없다, 앞으로 5년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대선을 맞아 이 사회의 지성이 부패세력에 경종을 울려할 때이다, 대학생이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학생 시국농성단의 이날 활동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 탓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오후께 명동거리에서 '마당 선전전'을 펼칠 때, 선관위 관계자들이 나와 "사실상 특정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으로 선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은 선거법 93조 위반,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은 90조 위반이다"고 지적했다.

이날 활동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주가조작 아니죠, 후보사퇴 맞습니다', '재산은닉 세금포탈 범죄자의 대선출마 웬말이냐'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한국진보연대에서 제작한 '부패 청산 촉구' 관련 유인물을 시민들에 나눠줬다.

선관위 관계자들의 제지에 대학생 농성단은 유인물과 홍보 게시물을 거둬들였다. 고길동씨는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게 불법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태그:#위장지지, #부패청산, #한총련, #향린교회,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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