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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법 오래된 중국 영화 <음식남녀>에서는, 요리사였던 홀로 된 아버지가 주말이면 자식들을 위해 다양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음식을 나누는 일은 곧 이렇게 사랑을 나누는 의미와 같다. 
 
음식은 사람의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일이지만, 음식은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은 만나서 식사 시간을 통해 서로의 정을 나눈다.
  
이 추운 겨울에 즐겨 먹는 음식들을 살펴보면 대개 여럿이 모여서 나누는 음식 종류가 많다. 겨울보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계절이기 때문은 아닐까.
 
 
 
곧 12월이 된다. 거리 곳곳에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벌써 들리고, 알록달록 예쁜 성탄 트리들이 거리의 가로수처럼 서 있는 곳도 많다. 
 
새 달력을 파는 리어카 장수와 성탄 선물 상자가 쌓인 백화점에서 벌써 성탄 선물을 사는 모습도 보인다.
 
추운 겨울이면 왜 그리운 얼굴들이 많아질까. 목탄난로 위에 도시락들을 올려 놓고 빙 둘러 서서 어젯밤 들은 라디오 연속극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그립다. 바쁜 삶 속에서 잊혀지고 만나지 못한 얼굴들에게, 연말에는 문자 메세지라도 해야겠다. 
 
겨울의 거리는 우리네 사는 인정처럼 훈훈한 군밤 굽는 냄새, 붕어빵 굽는 냄새 등이 배어있다. 따뜻한 군밤과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따뜻한 붕어빵을 사 먹다 보면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추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무슨 이유인지 나와 동생만 부모님 곁을 떠나 외롭게 자취방을 얻어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었는데, 봉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방으로 모시려 하니 선생님은 싱긋 웃으시며 누런 봉투에 담긴 붕어빵을 건네주고 그냥 가셨다. 시간이 지나니 따뜻한 붕어빵이 서로 붙어서 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허기가 져서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때만큼 나는 맛 있는 붕어빵을 먹어 본 적이 없다.
  
휠씬 나중에야 나는 내가 사는 자취방과 선생님이 사시는 집이 꽤 먼 거리이고, 그 붕어빵이 식지 않게, 가슴에 품고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선물, 정말 남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큰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지금 나는 아주 작은 베품조차 행하지 못하고 산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의 노래>- '신경림'
 
찬 바람이 불면 마음도 몸도 추운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거리의 노숙자들은 더 지내기 어렵고, 독거 노인들은 뼛 속까지 스며드는 시린 고독과 싸워야 할 것이다.
 
작고한 구상 시인은 "인정이란 결코 컵 속에 든 한 모금의 물처럼 누구에게 쓰고 나면 비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샘처럼 푸면 풀수록 더욱 풍부해 지는 것이요, 또 인정이란 어떤 대상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의 육성이라 하겠다"고 했다.
 
사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남을 더 잘 베푼다. 어려운 처지의 불우한 사람들은 결코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지만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선물은 마음의 선물. 그 마음의 깃든 선물 하나로 훈훈해지는 이 계절은 주위를 돌아보면, 따뜻한 커피 한 잔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올 크리스마스는 하얀 눈이 펑펑 따뜻한 이불처럼 내리길 기도해 본다. 그리고 동화 속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혹은 '집없는 소년'처럼 거리를 헤매는 갈곳 없는 이들을 위해서도….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들을 도와주는 손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입보다 성스럽다"는 말을 되새기며, 이 사랑의 계절만은 정말 내 마음의 등불을 끄지 말아야 겠다.

태그:#등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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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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