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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친숙하다. 연극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연극은 관심과 발품이 없으면 쉽게 접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관심이 없어도,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케이블TV를 통하여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장르가 있어 자기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더 친숙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인지, 왜 좋아하는지 말하고 나눈다면 이는 비평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비평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 취향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더 깊고, 체계적인 비평을 아쉬워하면서 작은 책자를 내 놓은 이가 있으니 김영진씨인데, <씨네 21>에서 기자 생활을 5년 정도했다.


"영화를 향한 짝사랑은 금지된 것을 보려는 충동, 교과서가 가르치는 보편적인 윤리관에서 이탈해 있는 것을 조금씩 확인하는 쾌감이다."(13쪽)

 

우리가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 반추하면 김영진이 한 말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 부모님이 보시던 비디오를 몰래 훔쳐보거나, 지금은 사라진 두 편 동시 상영을 통하여 음밀한 사랑, 부도덕한 모습이지만 금지된 충동을 자극한 장면을 훔쳐보면서 영화와 친숙하게 된다.


'에로티시즘, 포르노'를 맨 앞에 두었다. 에로티시즘은 이제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영화도 포르노에 버금가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되며, 본다. 2000년 벽두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한 <거짓말>은 장선우 감독이 포르노그라픽 형식으로 위장해 사회를 고발한 영화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미추와 선악과 분별의 경계를 넘어선 놀이'인 영화 <거짓말>은 변화하지 않는 사회를 조롱하면서 퇴행적인 즐거움에 빠져버린 후에 진흙 속에서 연꽃을 보자는, 부처의 가르침 뒤에 숨어버리는 영화일지도 모른다."(18-19쪽)
 
장선우 감독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관음증을 겉으로는 깨끗한 척 음란성을 초월한 인간내면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사회 어떤 구성원들이 <거짓말>를 음란영화로 매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포르노그라피적인 영화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만이 참된 영화로 생각하는 이들을 향한 일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포르노와 에로티시즘을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는 있다. 30쪽 움베르트 에코가 내린 정의 "포르노의 특징은 지저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는 데 있다"에 동의하고 싶다. 나를 자극하고 성에 대한 감흥과 감동이 아니라 지겹다는 것을 느낄 때 그를 포르노라 부른다. 

 

똑같은 성행위를 다룬 영화라 할지라도 보면 볼수록 인간내면을 그리고, 성적 욕망을 통하여 사람과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가 있지만 더 보고싶지 않고, 인간과 사회를 그리지 못하는 성행위 자체만을 보여주는 것은 포르노인 것이다. 포르노가 여성을 비하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포르노는 자학과 쾌락과 인간으로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


몇몇 영화와 감독을 말한 것 중 홍상수 감독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는 홍상수 감독을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세부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은 우리 영화에 많은 도전을 준다. <강원도의 힘>에서 대학 교수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픈 여자에게 오럴 섹스를 강요한다. 홍상수 영화는 성교할 때만에 극적인 순간이다. 앞뒤가 맞진 않는 부분도 많다.
 
"홍상수 영화는 조각난 이야기를 퍼줄 풀듯이 관객으로 하여금 손수 재조립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꿰어맞추어도 결국은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일상, 빙 둘러 순화되는 일상의 감옥을 말하고 있다."(81쪽)
 
우리 일상을 조각난 퍼즐과 같다면서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으로 그렸다는 것은 흥미롭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 상당히 혁신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홍상수 영화가 혁신적이기보다는 우리 인생이 혁신적이지 않을까? 예술영화, B급영화 따위의 장르 구별이 있지만 이는 구별하고자는 주장일 뿐 영화는 그 자체로 우리 일상을 말하고, 인간을 말하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대중성’이다. 그는 “열세 살의 평범한 소녀가 아무 때나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비로소 영화는 예술이 될 것”(152쪽)이라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예술 영화란 아주 평범하다는 말이다. 평범함이 없는 영화는 몇몇 비평가들의 입에서만 오르내리는 영화일 뿐이다. 예술이냐, 대중성이냐를 놓고 논쟁이 많다. 하지만 대중성과 평범함을 잃어버린 영화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지난 여름 <디워>를 두고 전문비평가와 누리꾼들이 논쟁을 벌였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한 말을 깊이 새겨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

 

영화는 근대 예술이 나은 선물이다. 영화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말한다. 한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지, 주연배우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하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자기를 말하는 배우와 영화를 보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영화가 어떤 장르이든지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영화가 이것을 담지 못하면 우리는 영화를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김영진 지은 ㅣ 책세상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김영진 지음, 책세상(2001)


태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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