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요는 민중 속에 전승되어 온 가요를 말한다. 대개 농업과 어업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제를 지내거나 일을 할 때 부르던 노래로, 특정한 창작자가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민족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민요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에게서 자식으로, 자식에게서 손자로 대대로 전해지는, 그 전승도 문자나 악보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필요에 따라서는 춤과 함께 집단적으로 부르기 때문에 가사와 곡조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민요는 지역에 따라 경기민요, 남도민요, 서도민요, 동부민요로 나뉜다. 그 중 경기민요는 경기도⋅충청도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로, 매우 경쾌하고 분명하며 선소리(立唱)가 주류를 이루는 점도 특징의 하나이다.

 

노랫가락⋅창부타령⋅아리랑⋅긴아리랑⋅ ·도라지타령⋅사발가⋅태평가 ⋅방아타령 ⋅양산도 ⋅개성난봉가⋅군밤타령⋅천안삼거리 등이 있다. 이 경기민요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보유자로는 묵계월, 이은주, 이춘희 선생이다.

 

그 중 이춘희 명창이 오는 27일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사)한국전통민요협회(이사장 이춘희) 주최, 에스엠코리아 주관, 문화재청, 한국방송(KBS), 신나라, (주)다이브엑스, 아우라꼬레아 후원으로 음악회를 연다.

 

이 음악회는 이춘희 명창이 예순 해의 소리로 빚은 삶을 되돌아보고, 또 그의 흔적을 담은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 음반(4CD) 출반을 함께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춘희 명창은 묵계월(인간문화재), 이은주(인간문화재), 고 안비취(인간문화재)의 뒤를 잇는 명창으로, 스승 안비취 선생의 숙원이었던 경기민요를 극화하여 ‘경기소리극’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냈으며,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경기민요를 보급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의미는 경기민요계의 스타들이 총출연하였다는 데 있다. 원래 스타들이란 자존심이 강해 우정 출연하기를 꺼리는데 이번 공연에는 모두 참여한 것은 이춘희 명창이 그동안 쌓아 놓은 덕이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일 것이다.

 

이춘희 명창과 함께 공연을 빛낼 출연자들은 중요무형문화재 묵계월, 이은주 선생과 이춘희 명창의 후배들인 김혜란(무형문화재 제57호 준보유자), 이호연(무형문화재 제57호 전수조교), 김영임(무형문화재 제57호 전수조교), 전숙희(이수자), 양금석(탤런트) 등이다.

 

또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와 병창 보유자 강정숙 선생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축하 공연을 펼치고 우리나라의 무용계 인기스타 진유림 선생이 이춘희 명창의 소리와 함께 청어람무용단을 이끌고 춤을 춘다.

 

여기에 수원여자대학 대중음악과 학과장이며 색스폰 연주자인 이정식씨도 이춘희 명창과 ‘긴아리랑’을 함께 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 맞춰 출반하는 ‘삶과 소리 그리고 흔적’ 음반은 이춘희 명창이 1년이 넘는 긴 시간의 작업을 통해 그동안 빚어온 모든 소리 흔적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다. 이 음반은 경기민요와 함경도, 서도 등 여러 지역의 소리와 잡가를 아울러 대중들에게 민요의 참맛을 널리 보급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국악협회 이영희 이사장은 이번에 공연에 대해 “이춘희 명창의 곰삭은 깊이있는 소리 구성은 삶에 대한 회한과 슬픔을 흘러내리게 한다는 평을 듣습니다. 절절히 슬프면서도 벅차도록 흥을 유발시키는 이춘희 명창의 소리를 온전하게 들을 수 있는 이번 무대에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축하한다.

 

 

정해년(丁亥年) 돼지띠의 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뜰 앞의 나무엔 이제 마지막 잎새만 남았는데, 우리는 올 한 해를 어떤 의미로 살았을까? 마지막 남은 한 달, 중요무형문화재 이춘희 선생의 예순 해로 빚은 소리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경기소리로만 할 수 있는 소리극 올릴 것"
[대담] ‘예순 해로 빚은 소리’ 공연하는 이춘희 명창


- 어떻게 민요를 하게 되었나?
  “민요하는 것을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위경련이 심해 진통제를 맞는 것 외에 치료를 못 해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죽기보다 낫겠다는 생각으로 학원에 다녔는데 위경련이 말끔히 나았다. 지금 돌아보면 무병 곧, 신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창배, 정득만, 안비취 선생님께 배웠다.”

 

- 경기소리란 무엇인가?
  “경기소리는 표준어처럼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한 소리인데, 청아하고 맑으며 깨끗하고 정서적이다. 또 대중적인 소리이지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소리를 해야 하기에 잘하기는 어렵다. 애원·한·구성진 소리가 어울려야 참맛을 낼 수 있다. 흔히 '야질자질'한 소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 소리 공부를 어떻게 했나?
  “처음엔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고민을 했다. 그러다 방음장치를 한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한 달 동안 연습했다. 그렇게 하자 배에 힘이 붙기 시작했고, 알이 차서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운동을 계속했다. 이는 떨려도 힘차게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어찌 보면 ‘예술은 고행이다’란 말이 사실인 듯하다.”

 

- 이번 공연은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같이한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어떻게 이루었나?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셨던 안비취 선생님은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것은 물론 대중성도 갖춘 분이셨다. 나는 그분에게 소리뿐만이 아니라 덕을 함께 내 가슴에 담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 해를 맞는 공연에 뭘 따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열었다. 그에 다른 분들이 흔쾌히 하나가 되어주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 이번에 공연과 함께 음반 4장도 내놓는다. 녹음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서 그동안 음반을 많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을 놓치면 다시 녹음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는데 5장이 넘는 분량을 4장에 담았다. 2장은 민요고, 나머지 2장은 잡가와 선소리로 채웠다. 후배들에게 좋은 자료가, 대중에겐 한을 삭이고 흥을 불러주는 그런 음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우리 겨레의 노래인 민요가 대중에게 그렇게 인기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외국에선 경기민요의 인지도가 높았지만 오히려 국내에선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실력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대중에게 인기가 있으려면 전율을 줄 만큼 소리를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감동을 줄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 과정이 설치되어 대학까지 내공을 쌓는 길밖에는 없다. 정부가 민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고 분명한 지원을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 앞으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1998년 소리극을 맨 처음 시도했다. 이후 ‘미얄할미전’, ‘일타홍’, ‘남촌별곡’ 등을 공연했다. 소리극은 우리의 전통음악 민요를 전승시키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앞으로 세종문화회관에 경기소리로만 할 수 있는 소리극을 올릴 것이다.”
 
이춘희 명창은 대담하는 동안 스승 안비취 선생의 마음을 계승했는지 사람들을 아우르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내공에서 청아한 경기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문의 : 이동명 016-679-4590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춘희, #경기민요, #(사)한국전통민요협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