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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냄새.”
“요즘 들어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아?”

길가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행인들은 악취에 코를 막고 바삐 지나쳐간다. 터진 봉지 사이로 음식물 쓰레기가 흘러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다른 한 편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한두 곳이 아니다. 전주시 곳곳, 쓰레기 수거장소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중앙시장 인근의 방치된 쓰레기 더미.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다.
 중앙시장 인근의 방치된 쓰레기 더미.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다.
ⓒ 선샤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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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부터 전주시는 이른바 ‘쓰레기 거부제'로 불리는 새로운 수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분리수거가 가능한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와 섞어 버릴 경우 수거를 전면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정책이 시행된 지 3주가 지난 지금, 전주는 ‘쓰레기 대란'을 앓고 있다. 곳곳에 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방치되고 있어 시민들의 불쾌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시에서는 처음의 방침대로 현재 쌓여있는 불법 쓰레기를 앞으로도 수거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불법 쓰레기에 '미수거 스티커'를 붙이고, 투기자를 색출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산을 이룬 쓰레기 더미, 시민들 눈살

현재 삼천동, 중화산동과 같은 주택지역은 물론 고사동, 금암동 등 상업지역에도 방치된 불법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그래도 주택지역은 나은 편이다. 각 동의 통·반장들이 ‘쓰레기 거부제' 시행에 앞장서고 있고, 주민들의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내 주요 상권을 비롯한 상업지역은 주택지역에 비해 의식이 낮은 데다 행인들이 방치된 쓰레기 위에 또 쓰레기를 버리면서 그 양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전주시에서는 ‘쓰레기 거부제'가 가장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지역으로 전북대학교 구정문 앞과 중앙시장을 꼽고 있다. 중앙시장 인근의 쓰레기 더미는 어른 키를 넘길 정도이고 전북대 구정문 앞의 상가와 원룸촌 밀집지역은 쓰레기처리장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전북대 구정문 앞을 지나던 박지혜(21)씨는 “지나다가 쓰레기 더미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며 “계속 방치해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인근 상인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악취도 심하고 꽃집 앞에 쓰레기가 쌓여있어 매출도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며 “홍보도 잘 안돼서 주변 사람들이 잘 모른다. 환경 미화원이 알려줘서 알았다”고 말했다.

역시 전북대 앞에서 상점를 운영하고 있는 박주환(36)씨도 “시의 방침은 이해하지만 당장 풍겨오는 악취와 미관상의 불쾌함이 문제”라며 “분리수거를 하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구정문 앞에 분리수거대를 설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투기한 쓰레기를 적발하는 과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중앙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장은주(46)씨는 “요즘 쓰레기 불법 투기자를 잡는다면서 단속반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어 놓고 있다”며 “오히려 쓰레기를 더 만드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정책 시행초기 환경 미화원들이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하는 요령을 잘 몰라 두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담당 과장이 미화원들에게 각별히 교육을 시키고 당부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구정문 인근 원룸촌의 쓰레기 수거장소
 전북대 구정문 인근 원룸촌의 쓰레기 수거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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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정착 시키겠다 VS 일단 좀 치워달라

일단 시에서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주시 청소행정과 김종식씨는 “지난 98년에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가 성과가 좋지 않아 다시 현재와 같이 모든 쓰레기를 다 수거하는 상황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정책 시행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씨는 “시행초기에는 이번 정책도 98년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현재는 많은 시민들이 정책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낙관했다.

반면 시민들은 시의 방침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방치된 쓰레기들을 참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조현미(41)씨는 “전주에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겠나. 미관상 좋지 않고, 쓰레기로 인해 통행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박광염(25)씨도 “이렇게 쓰레기가 쌓이니까 지나가던 사람들도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더 버리게 되는 것 같다”며 “홍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시가 너무 강경하게 나간다”고 지적했다.

이정숙(59)씨는 “행정당국과 시민들이 서로 나 몰라라 하고 있어 ‘쓰레기 대란'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며 “일단 쓰레기부터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같은 제도 시행하는 울산 북구, 홍보기간 6개월

전주시는 이번 ‘쓰레기 거부제'를 시행하면서 울산 북구를 우수 사례로 꼽았다. 울산 북구는 전주시보다 앞서 지난 7월 1일부터 이 제도를 전면 시행해 현재 안정화되는 단계이다.
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는 전주시와 울산 북구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난다. 울산 북구는 시행 6개월 전부터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홍보를 진행했다. 시범지구를 지정해 시행 이후 나타날 문제점도 미리 점검했다.

반면 전주시는 불과 시행 2주 전에 정책을 예고하고 홍보에 들어갔다. 올해 초부터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캠페인은 펼쳐왔지만 ‘쓰레기 거부제' 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시행 예고 이후에는 신문광고와 TV광고, 안내문 배포 등 대규모 홍보를 펼치고 있으나 기간이 너무 짧아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표]울산 북구와 전주시 쓰레기 거부제 시행 비교
 [표]울산 북구와 전주시 쓰레기 거부제 시행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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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에서 ‘쓰레기 거부제' 시행을 담당한 강우송씨는 “울산 북구도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다. 쓰레기 때문에 불만과 민원이 많이 접수 됐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정착되기 시작했다”며 “시민들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전주시에도 (쓰레기 거부제가) 금세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의 필요성과 안팎의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쓰레기 거부제' 시행 3주,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주시의 보다 장기적 안목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쓰레기, #종량제, #전주, #선샤인뉴스, #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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