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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5일과 18일의 일일동향 보고.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동향을 관찰한 뒤에 중간간부(과장)에게 올린 것으로 보인다.
 2005년 3월 15일과 18일의 일일동향 보고.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동향을 관찰한 뒤에 중간간부(과장)에게 올린 것으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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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2004년 불법 복제된 휴대폰을 통한 노동자 위치추적 의혹을 받았던 삼성SDI가 일대일 감시시스템을 통해 노동자의 일일동향을 치밀하게 파악한 것으로 드러나 또다시 '지나친 내부통제'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오마이뉴스>가 단독입수한 일일동향 자료에 따르면,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동향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중간관리자에게 보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SDI의 전직 직원은 "중간관리자는 이렇게 수집된 내용을 1주일 단위로 종합해 노무관리나 인사 쪽에 보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SDI의 한 간부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며 "동료가 동료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직원들이 근무지에서 정상으로 근무하고 있는지야 파악하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간대별로 정리된 동향보고... '오늘 밤은 조용히 생활했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일일동향 자료(2005년 3월 15일∼18일)에는 'Samsung mySingle'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싱글'이라고 불리우는 삼성의 게시판시스템에 올려진 것을 인쇄했음을 의미한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삼성SDI 부산공장 제조3그룹에 근무하는 홍아무개 대리는 함께 야간근무하던 동료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조아무개 과장에게 보고했다. 다음은 홍 대리가 2005년 3월 15일 새벽 4시22분에 올린 동향보고다.

'24시 40분부터 24시 50분까지 우리 휴게실에서 24시 5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정○○씨와 노광 책상에서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검색을 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생각됨.'

다음날인 3월 16일 새벽 5시 24분에 올린 동향보고는 '일일생활기록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늘 밤은 조용히 생활했슴.'

다음날인 3월 17일에도 동향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홍 대리는 새벽 4시 42분 '02시 20분부터 03시 05분까지 우리 휴게실에서 정○○씨를 만났슴. 그리고 시트는 코팅하여 부착하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또한 3월 18일 새벽 4시 43분에 작성된 자료에는 앞서 보고된 것과 유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

'23시 50분에서 24시 15분 03시에서 03시35분 휴게실에서 휴식. 24시 30분경부터 01시 20분경까지 현장 및 휴게실에서 ○○와 대화를 했고, 01시 20분부터 02시까지 휴게실에서 정○○를 만났슴. 현재 04시 35분부터 휴게실에서 휴식중. 이상.'

여기에 나오는 '정○○'씨는 지난해에 노사협의회 위원을 지냈고, 현재 '현장을 사랑하는 모임'(현사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로 알려졌다. '현사모'는 노조 설립 등에 관심있는 현장 노동자들이 만든 모임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한 동료가 다른 동료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러한 내부감시 시스템을 '따라다니는 몰래카메라'라고 표현한 것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3월 16일 동향보고에는 '오늘 밤은 조용히 생활했슴'이라고 적혀 있다. 마치 '일일생활기록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3월 16일 동향보고에는 '오늘 밤은 조용히 생활했슴'이라고 적혀 있다. 마치 '일일생활기록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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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3중 내부감시는 무노조를 유지해온 힘"

전직 직원인 A씨는 "야간근무시 옆에다 동료 한명을 박아 놓고 다른 동료의 동향을 상시적으로 보고하는 내용"이라며 "따라다니는 몰래카메라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감시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부서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위에서 그렇게 감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으니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밤에 근무하는 사람이 동료의 동향을 올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A씨는 "중간관리자들이 현장에 정보망을 심어놓고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경우 보고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이렇게 매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보고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끼리도 서로 못믿고 입조심하는 실정이다. 옛날에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노무당당자가 제대로 보고를 못해 혼난 적이 있다. 다른 경로를 통해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 위로 보고된 것이다. 이렇게 노무담당자도 못믿어 2중3중으로 정보망을 심어놓고 있다. 결국 감시는 이중삼중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을 통해 무노조가 유지돼 온 것이다." 

그렇다면 '따라다니는 몰카'의 주요 대상은 누구일까? 이와 관련, A씨는 "현장에서 바른 말을 하거나 해고자들 하고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라며 회사측이 일대일 내부감시를 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야간근무 때 동료를 믿고 어떤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지 않나? 회사측은 그런 얘기도 놓치지 않고 지금 현장 노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렇게 감시한다. 예들 들면 노조를 만들려는 조짐을 미리 파악해 대응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이렇게 수시로 (현장동향을) 체크하는 것이 무노조를 유지해온 힘이다."

이어 A씨는 "야간근무자는 1차 보고대상인 과장에게 보고하고 과장은 이것을 1주일 단위로 종합·정리해 노무관리나 인사 쪽에 보고할 것"이라며 "과장이 혼자서 감시자를 붙인 게 아니라 노무관리나 인사 쪽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노동자감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005년 2월 16일 오전 삼성 SDI 전?현직 직원들 휴대전화 불법복제 위치추적 사건의 검찰 수사중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열었다.
 ‘삼성노동자감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005년 2월 16일 오전 삼성 SDI 전?현직 직원들 휴대전화 불법복제 위치추적 사건의 검찰 수사중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열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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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4년, 휴대폰 불법복제 통한 위치추적 의혹 받아

삼성SDI의 노동자 감시는 지난 2003년과 2004년 극에 달했다. 2003년 8월부터 2004년 6월 사이, 삼성SDI 안팎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중이던 전·현직 노동자들 10여명의 휴대폰이 불법 복제돼 위치를 추적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

당시 위치추적을 당했던 노동자 6명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순택 삼성SDI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2005년 2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 

당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현재 수감중)은 "검찰이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부실수사를 한 것"이라며 "검찰이 시간을 지연하면서 오히려 삼성재벌을 도와준 것이고 하나의 공범자로서 역할을 한 것밖에 없었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또한 삼성SDI는 지난 6월 회사의 구조조정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질서유지권에 대한 명백한 위반행위"라는 취지의 경고장을 발부해 논란을 빚었다(10월 17일자 보도).   

전직 삼성전자 직원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따로 없다"

삼성전자의 내부통제 실상이 최근 공개됐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퇴사한 한 직원은 최근 인터넷신문 <무브온21>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조직문화를 전체주의적 지배양상을 묘파한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비유했다.

그는 "삼성의 기본적인 컨셉트는 사원들을 통제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사원들의 출퇴근 시간, 밥먹는 시간, 심지어 최근 지은 빌딩에서는 위치 정보가 파악되어 화장실가는 시간까지 체크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각 횟수 ▲12시 전에 식당에서 밥을 배식받는 것 ▲퇴근시 서랍장을 잠그지 않고 가는 것 ▲ 인터넷 서핑시간 ▲외부로 발송된 이메일 ▲전화통화 ▲회의실 대화내용 등이 모두 감시를 받고 있는 셈이다. 내부감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와서 지은 인텔리전트빌딩에는 위치추적장치가 다 내장되어 있다. 사원들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 케이스에 무선송출기가 붙어 있는데 이 신호를 받아서 사원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보통 새로 지은 R&D센터에 많이 사용한다."

그는 "방문예약을 15층으로 했는데 방문해서 13층에서 회의를 하다가 세콤(삼성의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뛰어들어와 층이 왜 바뀌었느지 자초지종 물어보고 간 적이 있다"고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모든 것이 감시된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며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따로 없다"고 꼬집었다.

당연히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비판적 언로'가 존재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는 "삼성 관련한 글이나 특정자료가 대량으로 이메일을 통해 유포되는 경우 유포자를 추적해 경고하고, 그 글이나 자료를 삼성 전체 시스템에서 일괄삭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메일이나 인터넷, 전화 등으로 감시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회사 비판을 하지 않는다"며 "회사와 관련해 어떤 것도 외부게시판, 인터넷 등에 올리지 말라고 하는 규칙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그는 "정말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 대한 생각 자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뭔가 커다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원들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조직, 시스템, 사업영역, 인사 등 모든 부분에서 큰 개혁을 해야만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계속 미루다 보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고 충고했다.



태그:#삼성SDI, #내부감시, #무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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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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