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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는 멈췄고 낙성식이 있던 16일 하루는 '맑음'이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는 멈췄고 낙성식이 있던 16일 하루는 '맑음'이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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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잠에서 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믿기지 않는 상황을 확인하는 찰나다.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차치하더라도 쉽사리 그칠 것 같지 않던 비, 자정이 넘을 때까지 의기양양하게 몰아치던 비바람은 이미 멎어 있었고 새벽하늘엔 별빛이 초롱초롱하니 저절로 가슴 앞으로 두 손이 모아지고 ‘관세음보살님’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비가 멈췄다

일출을 보기는 다 틀렸을 거라는 생각에 맞은 비를 말린다는 핑계로 처박다시피 한 구석으로 밀어 두었던 카메라를 챙겨 부랴부랴 의상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랐건만 동쪽바다에 드리운 두터운 구름층 탓에 잠시나마 머릿속으로 그렸던 멋진 일출,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오메(Ω)가 형상으로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은 담을 수 없었다.

거치적거릴 수밖에 없을 우의를 입고 봉사를 하던 사람들도 우의를 벗고 활동을 하니 기분이 좋은 듯 맑은 하늘만큼이나 표정 또한 밝아져 있다. 아침밥을 얻어먹고 식장으로 안내된 원통보전 앞마당으로 올라가니 그렇게 엉망이었던 식장은 어느새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식전행사로 영산재를 올려지고 있다.
 식전행사로 영산재를 올려지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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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거나 숨겨 놓은 우렁각시가 다녀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식장은 의자까지 반듯반듯 하게 줄맞춰 나열해 가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필자뿐 아니라 전날의 상황을 보았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라고 경탄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거나 쉬고 있을 때 스님들과 종무원들이 보이지 않는 일손으로 펼쳐낸 기적이 분명하다. 11시로 안내된 행사시간은 아직 멀었건만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행사장은 벌써부터 북적거린다. 이미 와있던 사람,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대관령 고개를 넘어 막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가운데 식전행사로 영산재를 올린다.

참화를 막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마음, 참화로 황망하기만 했던 그 자리에 이렇듯 부처님을 모실 원통보전을 복원했음을 삼천대계의 제불보살님들과 정령들께 고하는 제의식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감사함, 인간의 표현력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바라춤에 담기고 빛깔 고운 고깔에 실려 영산재에서 드러난다.

하유스님의 법고소리에 오봉산자락 '두둥둥 둥둥'

영산재에 맞대어 새로 제작된 법고를 울리는 법고 시연이다. 하늘도 흐느끼게 할 만큼 깊은 사연을 담고 있는 춤꾼스님, 하유스님이 두둥둥 둥둥 거리며 법고를 울린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하유스님의 법고시연은 울림 그 자체였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하유스님의 법고시연은 울림 그 자체였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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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기엔 신명나게 그냥 두드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업보에 허덕이는 스님의 감정에 맞춰 들으면 통곡 같은 울음이 들리고, 몸부림 같은 처절함이 느껴지는 하유스님의 법고 소리에 사람들이 운다. 엉엉 소리 내 울지는 않지만 넘쳐흐르는 감정, 울컥거리는 벅참에서 오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추스르지 못한 아연한 표정들이다.

'두둥~ 둥~둥~' 법고가 울린다. 맥놀이를 익혀가듯 맺고 끊기를 반복하며 법고를 울려가니 스님의 몸동작이 커지면 법고소리도 커지고, 스님의 손놀림이 작아지면 법고소리도 작아진다.

법고가 운다. 덩치 커다란 법고가 '엉엉' 울음소리를 대신해 '두둥~둥 둥~둥~' 소리를 내며 흐느끼듯이 울어댄다. 복받치는 설움, 까무러질 듯한 희열, 생로병사를 담고 있는 인생팔고는 물론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오욕칠정까지 사바세계의 모든 고해를 말끔하게 헹궈내려는 듯 만감(萬感)의 소리로 두둥~둥 둥~둥~ 산천을 부여잡고 통곡을 한다.

원통보전이 온전하게 복원되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현판제막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통보전이 온전하게 복원되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현판제막이 이루어지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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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의 심장박동이 법고소리에 흔들리고, 산천초목의 숨결소리가 법고소리에 숨죽인다. 불어오던 바람도 풍경 끝에서 멎고, 흘러 다니던 구름조각도 추녀 끝에서 멈췄다. 법고는 만 가지 소리로 울었다. 슬픈 사람에겐 아련하고도 가련한 리듬으로, 법고소리는 음색을 달리하며 가슴과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슬픈 마음으로 들으니 애간장을 녹일 듯 애처롭고, 기쁜 마음으로 들으니 환호성처럼 즐거운 소리다.

소리가 커지고 템포가 빨라지니 가슴을 조여 오듯 마음이 끓어오른다. 단조로울 것만 같던 법고소리가 두둥둥 거리는 리듬을 타니 오묘함으로 다가온다. 법고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속삭임처럼 소곤거리기도 하고, 삼독을 불호령하는 일갈(一喝)소리로도 들려오지만 두둥둥 울리는 법고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법고를 치던 스님은 흠뻑 땀에 젖었다. 스님이 법고를 치며 흘리는 땀방울은 사바세계 모든 중생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업보를 사해달라고 기원하는 몸부림의 증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복원불사를 총괄한 낙산사 주지 정념스님이 화마가 있던 그날부터 낙성식이 이는 오늘까지를 경과보고 하고 있다.
 복원불사를 총괄한 낙산사 주지 정념스님이 화마가 있던 그날부터 낙성식이 이는 오늘까지를 경과보고 하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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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위시한 교계지도자 큰스님들과 각계인사들이 단상에 자리했다. 아직은 흰 천을 가린 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원통보전 현판을 제막하기 위해서다.

경봉스님의 필적으로 된 ‘원통보전’이라는 현판이 드러났다. 이는 화마에 전소되었던 원통보전이 온전하게 복원되었음을 만천하에 고하는 알림의 현장이며 사부대중이 올려준 기도, 많은 사람들이 모아 준 성원을 모두가 모두에게 돌려주는 회향의 순간이다.

식순에 따라 삼귀의, 반야심경 독송, 찬불가에 이어 낙산사 주지인 정념스님이 전소에서 낙성식이 열리는 오늘까지를 경과보고 한다. 복원불사를 진두지휘하였던 정념스님이 경과보고에 마지막으로 방점을 찍은 것은 ‘불자님들과 국민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1300여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 창건한 이래 최대의 인파

정념스님의 경과보고에 이어 법단에 오른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자리를 잡지 못해 해수관음상이 있는 저쪽 언덕에조차 앉아 있는 엄청난 인파를 파악한 듯, 1300여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수가 최대의 인파일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로 낙성식이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총무원장 지관스님께서는 법어를 시작하며 13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수가 최대의 인파일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씀으로 낙성식이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셨다.
 총무원장 지관스님께서는 법어를 시작하며 13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한 이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수가 최대의 인파일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씀으로 낙성식이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셨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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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스님은 법어를 통해 ‘파괴는 발전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정부당국과 사부대중 모든 불자님들과 국민들의 피나는 정성을 모아 이와 같이 웅장하고 굉려하게 확장 복원하고 오늘날 그 낙성을 보게 되었다’며 신흥사 회주 오현스님, 북원불사를 총괄한 낙산사 주지 정념스님,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각계 지도자와 인사들에 감사했다. 이어 ‘앞으로 낙산사가 더욱 발전하여 모든 국민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말로 법어를 갈무리하셨다.

종회의장 자승스님, 호계원장 법등스님, 강원불교연합회장인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 등 교계의 어른스님들 역시 한결같이 낙성을 축하하며 정념스님의 불사월력과 사부대중의 정성과 기도에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정념스님의 불사원력과 자비행

955일 전, 봉정암에서 수행 중이던 정념스님이 낙산사 주지로 부임한 지 15일 만에 낙산사가 전소되는 참화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부처님께서 낙산사에 닥쳐올 시련을 미리 예견하여 불사월력이 뛰어난 정념스님을 낙산사 주지로 보내셨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였었다.

사람들 머리위에 올려 진 듯한 열십자 형태의 새로 건립된 범종각 역시 정성과 불심이 맺은 결과다.
 사람들 머리위에 올려 진 듯한 열십자 형태의 새로 건립된 범종각 역시 정성과 불심이 맺은 결과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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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바로 동해바다의 하늘이다.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바로 동해바다의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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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며 정념스님께 드리는 나만의 생각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생각, 내가 정념스님께 드리는 입발림의 말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스님들의 격려사와 축사에 이은 각계인사들의 축사에서 강원도의 최고 행정책임자며 대표적 공인이라 할 김진선 도지사도 똑같은 말, ‘낙산사가 화마에 휩쓸릴 것을 예견하고 부처님께서 신흥사 회주 오현스님을 통하여 정념스님을 낙산사 주지로 부임케 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셨다’는 말을 했다.

알고 있는 사람들, 정념스님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호미질 같은 섬세함을 겸비한 불사경력을 보았거나 베풀지 못하면 좌불안석인 듯한 자비행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추호의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할 공론이 공표되는 순간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고 천심은 불심(부처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다른 입으로 같은 말을 하는 이구동성이야 말로 천심이며 불심이라 생각된다.

이어지는 축사에서 이진호 양양군수는 자리이타로 펼쳐 보이신 정념스님의 자비심을 공개하고 증명하였다. 낙산사가 전소되어 경망이 없었을 것임에도 화재민들을 먼저 챙기고 주변 사람들을 앞서 보살피는 정념스님의 실천적 자비행에 마음까지 숙연해졌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오봉산 자락에는 찬불가와 축가도 아름다운 선율로 울려 퍼졌다.
 오봉산 자락에는 찬불가와 축가도 아름다운 선율로 울려 퍼졌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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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나열할 수 없고, 범부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통 큰 자비행으로 주변사람들을 감복시킨다는 소문에 걸맞게 행사장에서도 10kg들이 쌀 1000포대와 라면 500박스 그리고 컴퓨터를 전달하는 이웃돕기 물품전달식이 진행되었다.

복원불사를 진행하며 보이지 않게 기도해 주고 들리지 않게 도움을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도움을 준 각계의 인사들에게 마음을 담아 전하는 감사패 전달식도 빠트리지 않았다.

합창단들이 축가를 부르는 가운데 새로 건립된 범종각으로 자리를 옮긴 교계지도자들과 참석인사들이 범종을 타종하고 사홍서원으로 불심을 다짐하는 것으로 일련의 낙성식은 폐식되고 식후 행사로 불가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천년바위(박정식)와 가시리(이명우)의 공연이 펼쳐졌다.

복원된 낙산사는 한국불심의 결정체

복원되는 과정에서 보았던 국민들의 관심과 불자들의 기도로 보았을 때 복원된 낙산사는 한국민들이 맺은 정성의 결정체이며 한국불교가 낳은 불심사리다.

참화에도 스님들께서 등으로 업어 지켜낸 건칠관음보살상이 새로 복원된 원통보전에 봉안되었으니 연기 피어오르는 다비도 없이 야단법석만으로 낙산사라는 커다란 불심사리를 습과(拾果)한 2007년 11월 16일은 한국불교의 불멸일이다.
 참화에도 스님들께서 등으로 업어 지켜낸 건칠관음보살상이 새로 복원된 원통보전에 봉안되었으니 연기 피어오르는 다비도 없이 야단법석만으로 낙산사라는 커다란 불심사리를 습과(拾果)한 2007년 11월 16일은 한국불교의 불멸일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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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80 평생 법구도 연화대에서 사리로 결과(結果)됨으로 2500여년을 넘었다. 백수를 다하지 못한 고승들 역시 다비를 통해 구도와 수행의 결정(結晶)을 사리로 남김으로써 세세연년이 흐를수록 의미를 더해가며 온존하게 전해지듯, 천년고찰 낙산사는 전소되었을지언정 한국민의 정성과 한국불교의 불심사리로 새롭게 결정을 맺었으니 천년만년에 이어질 만년사찰의 반석이이라 믿고 싶다.

연기 피어오르는 다비도 없이 야단법석만으로 낙산사라는 커다란 불심사리를 습과(拾果)하였으니 원통보전이 낙성되던 2007년 11월 16일은 한국불교의 불멸일이다.


태그:#낙산사, #원통보전, #복원불사, #불심사리, #정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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