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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이회창 대선후보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이회창 대선후보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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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냐, 이회창이냐.'

'창'을 맞은 대구 민심이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지만, 이번 만큼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 대선에서 누구 찍으실 건가요?
"나는 이회창씹니더. 원래 박근혜 (전) 대표를 좋아했는데. 후보가 안됐으니 어쩌겠십니꺼."

대선을 36일 앞둔 13일. 이날 낮 대구 칠성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아무개(38)씨의 말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상인 이아무개(40)씨가 반론을 제기한다.

"아니, 그래도 한나라당 후보가 이명박인데, 이명박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 이회창은 두 번이나 (대선에) 나갔는데 안됐다. 이제 고마(그만-편집자주) 해도 된다."

그러자 곁에 있던 김아무개(34)씨도 거든다. "나도 당 보고 (한나라당을) 찍을 기다."

앞서 말한 이씨, 이들의 얘기를 듣더니 다시 반박한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뭐라케야 하노. 왠지 이명박한테는 믿음이 안간다. 의혹이 한두 개래야재."

기자가 끼어들었다.

- 박근혜 전 대표가 혹시라도 막판에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요?
"박근혜가 이회창 손을 잡으면예? 그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나도!"

이명박 찍자니 BBK 걸리고, 이회창 찍자니 "비 한나라당인데..."

대선을 30여일 앞둔 대구 민심이 복잡하다. 사진은 13일 낮 찾은 대구 칠성시장.
 대선을 30여일 앞둔 대구 민심이 복잡하다. 사진은 13일 낮 찾은 대구 칠성시장.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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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구에선 으레 이런 대화가 꼬리를 문다. 이명박 후보를 찍자니, 의혹들이 마음에 걸리고, 이회창 후보에 표를 주자니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특히 박 전 대표에 민감하다. 박 전 대표가 누구 손을 잡느냐에 따라 표심도 갈린다.

지난 8~9일 실시된 대구 <매일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경우 이명박 후보의 지지는 55.0%, 이회창 후보는 21.5%다. 반면, 박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 결과는 확 달라진다. 이회창 후보가 36.9%로, 이명박 후보(36.4%)를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 그중에서도 대구는 이명박 지지(30.3%)에서 이회창 지지(44.1%)로 급선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후보가 12~13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와 대구를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우리 박근혜 서럽게 하다니... 이회창 출마도 이명박 때문"

동대구역 앞에서 만난 60대 택시기사들은 이회창 후보를 찍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다. 모두 시멘트처럼 견고하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고정지지층이었다.

이영수(64)씨는 "경선후 이명박 쪽이 박근혜를 밖에서 데려온 자식같이 설움을 주니 정말 속이 상하더라. (박근혜가) 경선에 깨끗이 승복까지 했는데 (이명박이) 당권까지 차지하려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회창 후보의 출마가 이명박 후보 때문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씨는 "이명박이 박근혜를 진작 끌어안았으면 이런 사단(이회창 출마)이 안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아무개(65)씨도 "이회창씨가 출마를 잘 했다"며 말을 보탰다. "그동안 가물어서 우야꼬하는데 비 내린 심정입니더."

'박근혜 시멘트층'에게는 이명박 후보가 한 '구애의 기자회견'이나 전날(12일)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것도 눈에 차지 않는 듯했다. 서문시장 상인 강아무개(44)씨는 "이회창이 출마 선언을 해서 마음이 급하니 박근혜 마음을 얻으려 뒤늦게 난리"라고 목청을 높였다.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면서 사실상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도 아직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했다. 강씨는 "그저 원칙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아무개(38)씨도 "더 확실히 입장을 밝히면 모를까, 아직은 박근혜가 이명박을 지지한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일축했다.

#2. "이회창 '새치기', 옳지 않아... 한나라당 후보 찍어야"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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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인 동성로에서 만난 20~30대 초반 젊은층은 의견이 조금 달랐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정아무개(27)씨는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아니냐"며 이명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정씨는 "이미 대선에 실패한 이회창이 자기가 만든 당까지 탈당해 또 출마하는 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성구에 산다는 이아무개(32)씨도 "이회창의 출마는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애초에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면 몰라도 중간에 나서는 건 한나라당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씨는 "경선 때 박근혜를 지지했지만,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됐으니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에게 투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3. "지켜보겠다, 김경준도 귀국한다는데..."

지방순회 중인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가 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방문 중 한 시민이 던진 계란에 맞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
 지방순회 중인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가 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방문 중 한 시민이 던진 계란에 맞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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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관망하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이 후보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 때문이다. 게다가 의혹을 풀 열쇠를 쥔 김경준씨의 귀국이 임박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박아무개(65)씨는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난감해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하려면 될 후보(이명박)을 확실히 밀어줘야겠지만, 오늘 내일 김경준이 귀국한다니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만약 예상 외로 (이명박에게) 큰 문제가 있다면 이회창 쪽으로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원 김아무개(35)씨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은 BBK에, 자녀 위장취업에 문제가 많고, 이회창은 이미 지난 대선 때 떨어졌는데 또…"라며 말끝을 흐렸다.


태그:#대구, #민심르포, #이명박, #이회창,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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