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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눈이 맞아서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집안 반대가 심하다.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이 문제다. '절차'를 문제삼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을 위한 결혼'인지에 대한 비전도 밝히라고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과 민주당 후보·대표가 통합-후보단일화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지 하루만의 모습이다.

 

오충일 신당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에서 전날(12일) '4인회동'에서 합의한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인받을 예정이었다. 이후 당헌·당규, 정강·정책, 총무, 조직 등 4개 분과로 나눠 후속 실무협상에 착수한 뒤, 17~18일 수임기구 합동회의를 구성하고, 19일에는 선관위에 신고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20일께 통합민주당 첫 지도부 회의를 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고, 참석자들은 2시간에 걸쳐 고성과 격론을 주고받았다. 일부 최고위원들과 당 내부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결국 오충일 대표는 회의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과의 통합조건에 대한 재협상 방침을 밝혔다. 사실상 합당 합의를 추인받지 못한 것이다.
 
앞서 이날 최고위원회 초반에 잠시 착석하고 나온 정동영 후보는 기자들에게 "저와 오충일 대표에게 맡겨달라"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국 당내 반발을 수그러뜨리지 못했다.

 

신당의 재협상 방침에 대해 민주당은 '재론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이미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 '합의 재론을 거론할 경우 독자적으로 대선을 치르겠다'고 압박했다. 신당과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신당, 계파 초월한 반대... "총선용 아니냐?"

 

오충일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합당을 선언한) 4인회동의 결과를 통합의 정치적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한다"면서도 "통합의 조건에 대해 통합협상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오충일 대표는 "재협상이냐"는 질문에 "어제는 정치적 선언이었고, 통합 조건은 원래 실무적인 협상에서 논의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어제 통합 조건이 들어간 공동선언문에 사인을 했는데, 사인을 한 문건이 효력이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서로 협상해봐야 하는 것이지, 미리 예단할 수 없다"고 말해, 사안의 심각성을 감추지 못했다.

 

선언문에 담겼던 내용 전체가 재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칫 전날 합의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물론 오 대표는 "협상 파기가 아니다"고 극구 부인했다.

 

민주당과의 합당 방식과 내용에 대한 반발은 계파를 초월한다. 시민사회 출신의 김상희, 양길승 최고위원 등은 "총선용 아니냐, 이게 새로운 정치냐", "사전에 상의없이 합당에 합의하느냐"며 오 대표를 비판했다. 시민사회세력인 미래창조포럼은 성명을 통해 "정치적 지분 나누기로 보이는 합당과 단일화 논의는 즉각 백지화하고 전면 재협상하라"며 "필요시 '중대 결단'도 불사할 수 있다"고 말해, 탈당을 포함한 집단행동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날 오전에는 김원기·원혜영·이미경·장영달·정세균 의원 등 당내 중진의원 8명과 이해찬 한명숙 의원 등 친노진영 의원 20여명이 각기 모임을 열고, "이번 합의는 당내의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이뤄진 것으로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초·재선 의원들도 전날 밤과 이날 오전 삼삼오오 모임을 갖고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 전 총리는 "당내 의견수렴 없이 결정이 내려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썩 열광하는 분위기가 안 되는 것 같다"며 "지역정당의 모습을 띠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날 일찍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왔다가 전화로 회의 결과를 전해들은 정동영 후보는 "4자회담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만 피력했다고 최재천 대변인이 전했다. 최 대변인은 또 "신당이 기존의 협상에 대해 재협상을 한다는 게 아니라 후속협상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사태 확산을 막았다.

 

전날 합의한 조건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분을 1대 1로 나눠갔다'는 것과 함께 내년 전당대회를 6월에 치르겠다는 조항이다. 전당대회 날짜를 총선 이후로 못 박는 것 자체가 현 지도부의 총선 공천권 행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신당 내부에서 "민주당에 절반의 지분을 준 뒤 그 지분을 총선까지 확실히 보장해준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 측에서는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민주당 "협상 깨지면 단독으로 대선 치를 터"

 

민주당 내부에서도 합의 내용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순형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합당은 민주당이 견지해온 통합원칙과 당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며 "국정실패세력인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은 '도로 열린우리당'으로서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만약 통합을 강행한다면 불참할 것을 분명히 천명한다"고 말해, 합당 시 무소속을 택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합의 내용의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상천 대표는 이날 오후 지역 선대위원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재협상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4인 합의문에 명시된 원칙에 대한 수정은 불가하다"며 "협상이 깨질 때는 단독으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재협상 불가를 외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어제 내린 결단은 반드시 실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제 후보는 "결단의 형식으로 선언을 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며 "만에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책임은 신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이 후보는 또 신당과의 합당을 반대하며 탈당까지 거론하고 있는 조순형 의원을 겨냥해 "중요한 결단 뒤엔 많은 어려움과 혼란, 비판·비난, 극소수의 이탈이 있다. 다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단을 왜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극렬하게 반대하고 이탈할 사람은 많지 않다"며 "조금도 놀라거나 흔들리지 말라"고 당원들을 추스렸다.

 

유종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재론 불가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연대 서명해 발표한 것을 뒤집는 정당이라면 어느 국민이 신뢰하겠는가. 이는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을 후속 장관급 회담에서 수정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제 집안 사정 알았으니, 본격적인 협상?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논의가 마냥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도로 민주당', '지역주의 회귀'라는 비난 여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까지 비칠 경우, 여론의 외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충일 대표가 '4자 회동의 합의를 지지한다'는 전제를 내세운 뒤, 다시 재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신당으로서는 내부 반발을 핑계 삼아 향후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이낙연 신당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당의 '재론 불가' 입장에 대해 "남녀가 자기 집안 문제를 감추고 결혼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제 양당 간에 당내의 입장이나 상황이 모두 드러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물밑에서 서로 타진해 보는 움직임이 있음직 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양당 대선후보와 지도부가 통합작업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조만간 통합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은 이날 오충일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고 정세균 고문과 임종석 원내수석부대표, 김상희 최고위원, 이낙연 대변인을 위원으로 하는 통합협상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당도 박상천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고 고재득·김충조·신낙균·이상열·최인기 전 의원을 팀장으로 참여하는 통합-단일화 협상위원회를 꾸렸다.


태그:#정동영, #이인제, #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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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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