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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한나라당의 총재를 지낸 이회창씨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 후보에게 각각 패배한 바 있는 이씨의 이번 ‘대권 3수’ 도전은 30여 일 남은 대선 판도를 밑바닥부터 뒤흔들며 앞길을 내다보기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대선 출마 선언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를 전후한 지지도를 얻으면서 ‘이회창 출마’는 남은 대선 기간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고, 이명박·정동영·문국현·권영길·이인제 등 기존의 각 정당 대선 후보 진영에서는 저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선거전략을 수정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이회창씨로 인해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러한 변수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유권자들로서도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됐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통령 후보에 나설 수 있어 이씨로 인해 변수가 많아지고 혼란스러워졌다고 그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은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약속을 확인한 바 있는 이씨의 출마는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씨가 당원으로서 몸담았던 한나라당이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이명박씨를 대선 후보로 확정한 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났음에도 지금에서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당정치의 근본을 흔드는 부적절한 행위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등 각 정당들이 차례로 당내 경선이라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돌입함으로써 적어도 대선 후보 선출에 있어서만큼은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가 확립될 수 있었지만 이씨의 출마로 인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선을 30여 일 앞둔 지금, 유권자들로서는 각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은 물론 인물 됨됨이를 검증하고 판단하기조차 버거운 마당에 ‘이회창 출마’라는 ‘초강력 변수’가 돌출됨으로써 각 정당이 이를 두고 또다시 소모적 공방으로 지샐 경우 그야말로 ‘정책선거’가 물 건너가게 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2002년 대선자금을 둘러싼 공방과 “10년 동안 훼손되었던 나라의 근간과 기초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정권교체”, “실패로 판명 난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이명박)후보의 대북관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씨의 시대착오적 ‘이념공세’로 인해 사상초유의 ‘원조보수 VS 실용보수’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언론들은 이씨의 출마가 가진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있고, 실제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이씨의 출마를 비판하고 있다. 이씨의 약속 위반, 정당정치에 대한 위협, 극우보수로 치닫는 이씨의 언행에 대해 언론들은 하나같이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부 신문의 경우 한국정치를 우려하는 순수한 동기에 따른 비판과 지적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보도태도도 있었다. 특히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은 마치 ‘이회창 출마 저지’ 자체가 목표인양 사설과 칼럼에서 걸러지지 않은 주장을 막무가내 식으로 쏟아냄으로써 특정정치세력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또, 한편으로 이들 신문들은 이씨가 출마 선언을 하기도 전부터 매일같이 이씨와 측근들의 동정, 한나라당의 반응, 여론의 추이 등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선거와 관련한 다른 이슈들은 물론 ‘삼성비자금’ 등 중요한 사회현안을 소외시켰다.

 

출마 결심을 굳혀가는 이씨 측의 행보와 이씨 출마에 따른 지지도 변화를 도배질하듯 중계식으로 전한 이들 신문들로 인해, 이회창씨는 오히려 대중적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어 역설적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신문들의 득을 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은 이씨의 지지도가 각 신문들의 경쟁적인 여론조사 보도 때문이고 이로 인해 이씨와 출마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는 지적도 전혀 근거 없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우리 단체는 이회창씨가 22.4%의 지지도를 얻었다는 MBC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이씨의 대선 경쟁력이 확인되고,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002년 대선잔금’ 내역이 담겨 있다는 이른바 ‘최병렬 수첩’을 거론하며 이회창 출마를 공격하고 나선 11월 1일 직후인 2일부터 이씨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11월 7일 전날인 6일까지 4일 동안의 신문보도를 모니터했다.

 

그 결과 각 신문들은 하루에만 적게는 4건, 많게는 15건에 이르는 ‘이회창 출마’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특히 <동아>와 <조선>은 각각 2일과 5일 하루에만 3건의 사설․칼럼을 ‘이회창 출마’에 대한 비판으로 채우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 이회창 출마에 대해 합리적이고 냉정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 특정 정치세력을 자임하는 당사자의 입장에 선 것이다.

 

둘 중 하나는 ‘이회창 출마’ 관련 보도, 조·중·동 특히 심해

 

표에서 보듯 모니터 기간 4일 동안 선거 관련 전체 보도량은 382건이었다. 이 가운데 ‘이회창 출마’와 관련된 보도는 165건(43.2%)으로 나타나 거의 2건 중 1건은 ‘이회창 출마’ 관련 보도였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51.4%와 49.2%로 ‘이회창 출마’ 관련 보도의 비중이 높았다. <경향>과 <중앙>은 각각 42.1%와 41.9%로 평균에 근접했고, <한겨레>와 <서울>은 각각 37.9%와 35.5%로 비교적 적은 비중을 보였다.


보도 비중뿐만 아니라 보도량 자체도 많았다. 모니터 대상 여섯 개 신문에서만 ‘이회창 출마’와 관련해 하루 평균 4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한 개 신문으로 따질 경우 적은 경우 5건에서 많은 경우 8건이 넘는 ‘이회창 출마’ 관련 기사가 매일 아침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사설과 칼럼(내부필자 칼럼과 외부필자 칼럼 포함)에서는 ‘이회창 출마’를 주제로 한 글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4일 동안 6개 신문에서 선거와 관련해서 쓴 사설·칼럼은 45건이었고, 이 가운데 31건이 ‘이회창 출마’와 관련돼 무려 68.9%의 비중을 보였다. 특히 <중앙일보>는 전체 9건의 선거 관련 사설․칼럼 가운데 7건(77.8%), <조선일보>는 전체 8건 중 6건(75%)이 ‘이회창 출마’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동아일보>는 11건 가운데 8건(72.7%)이 ‘이회창 출마’와 관련되어 양적으로는 가장 많았다.

 

한편 <한겨레>는 전체 5건 중 4건(80건)이 ‘이회창 출마’와 관련되어 비중은 가장 높았지만, 양적으로는 보수신문의 절반 정도였고, <서울신문>과 <경향>은 둘다 6건 가운데 3건으로 50%의 비중을 보였다.


보도비중과 양적 분석만으로도 조·중·동은 다른 신문에 비해 구별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들이 왜 이렇게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퍼부은 것인지는 기사와 사설·칼럼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회창 출마’ 비난하는 정치권 목소리 중계한 조·중·동... 제목의 편파성 두드러져

 

134건에 이르는 ‘이회창 출마’ 관련 기사의 경우 6개 신문이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폭로’한 이른바 ‘최병렬 수첩’에 담긴 내용을 거론하며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부각시킨 것이나, 각 언론사에서 경쟁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회창 씨의 지지도를 시시각각 중계하며 대선판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고, 이회창 측의 동정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의 반응과 범여권의 입장 등을 나열하는 데 급급했다.


특히 단지 ‘대선잔금 내역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적힌 수첩을 본 적이 있다’는 이방호 총장의 폭로를 마치 중계하듯 일문일답식으로 보도하고 해설까지 덧붙이는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신뢰할만한 정황증거는 물론 구체적인 물증 증거까지 제시하며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관련 보도와 비교해보면 이중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최병렬 수첩’과 관련한 기사들의 경우, 내용에서는 이 총장의 발언을 상세히 중계하고,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검찰 수사 결과를 돌이켜보는 등 양적으로 과다하다는 점 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보수신문들의 경우 제목에서 그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이회창씨의 문제로 몰고 갔다.


<조선>은 11월 2일 <이방호 “최병렬 전 대표 수첩에 충격적 내용있다”>, <“이회창 대선잔금 의혹 밝혀라”>, <이회창 “아킬레스 건” 건드려 출마포기 압박>, <“모든 짐 짊어지고 감옥가겠다”> 등을 기사 제목으로 달았고, <중앙> 또한 <이방호 “최병렬 자금 수첩 본 적 있다”>, <“이회창 전 총재 출마하려면 2002 대선 잔금 의혹 풀어야”> 등을 제목으로 달았다.

 

<동아>도 3일 보도에서 <최병렬 올 5월 “대선잔금 154억 이회창측으로 갔다”>, <이회창캠프 847억 모금...용처 검증 없이 “수사 끝”> 등으로 보도했다. 이방호 총장과 한나라당 측의 일방적 주장을 제목으로 적극 부각시킨 것이다.


조선·중앙·동아의 기사 제목 편파성은 ‘2002년 대선자금’ 관련 기사 외에도 ‘이회창 출마’ 관련 보도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3일 ‘이회창 출마’ 관련보도를 ‘특별기획’ 형식으로 다루면서 13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 <이인제 “출마땐 나보다 죄질 더 나빠”>, <정동영 “이회창 출마는 역사의 코미디”>, <한나라 초선 39명 “이회창 출마 반대”>, <“정권교체 막는다면 역사를 그르치는 일”>, <DJ처럼 "정계은퇴 번복" 이인제처럼 “경선 불복”> 등 이회창 출마를 비난하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인제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할 경우 한 건의 기사에서 묶어서 보도했겠지만, 굳이 이번에는 따로 분리해서 기사 제목으로 부각시켰다. <조선>은 5일에도 <“제 정신이냐...역사의 죄인 될 것”>, <이회창 출마 반대 ‘민주연대21’ 단식 농성>, <이회창측 “보수 분열 책임론 어쩌나…”> 등을 제목으로 달았다.


<동아일보> 또한 <한나라 초선들 “창출마 반대”>, <“부패 핵심 창, 출마땐 역사 코미디”>, <“경선 승복한 박전대표, 창출마 찬성 안할 것”>, <친박 김무성 최고위원 “이회창 출마 반대”> 등의 제목으로 이회창 출마를 비난하는 인사들의 발언을 제목으로 부각시켰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10건이 넘는 기사를 실으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발언을 각각 독립된 기사에서 인용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이를 일일이 기사 제목으로까지 붙여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없다.


이에 비해 <한겨레>의 경우, 2일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는 <‘대선잔금 기록 수첩 있다’ 이명박쪽 정면돌파 선회>, <검찰 조사받지 않은 내용 사용처 드러날 땐 치명상> 등을 제목으로 달았고, 3일에는 이회창 출마 반대 목소리를 다루면서 <“이회창 불출마를”-“출마를”>, <이후보 “이 전 총재는 정권교체 힘 모아야”> 등으로 기사 제목을 달아 일방적이고 감정적이기까지 한 ‘비난’을 그대로 인용한 조·중·동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였다.


한편 ‘이회창 출마’에 관련해 이토록 많은 기사를 실어 비난 목소리에 비중을 두고 정치권 동정을 중계식으로 상세히 전하면서도 정작 ‘이회창 출마’라는 정치 현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차근차근하게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경향신문>이 3일 <‘대선 다자구도’ 보수의 위기인가, 진보의 위기인가>에서 “진보·보수 진영에 내적 위기감이 부풀고 있다”며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 난항이 촉발시킨 대선구도의 다극(多極)화 여파”를 짚어본 것, <한겨레>가 6일 <이회창 출마명분 허점 어떻게 메울까>에서 이회창씨가 내세우는 ‘불안한 후보론’과 ‘좌파정권 종식론’ 등에 대해 “정당정치의 핵심 요소인 후보 선출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짓밟는 것으로, 사실상의 경선 불복”, “이 전 총재가 이 후보의 대북정책을 문제 삼는 것은 한반도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 이념대결 시대로의 회귀를 유도함으로써, 자신의 과거 지지 기반을 회복하겠다는 시도”라고 지적한 것.

 

<서울신문>이 5일 <요동치는 대선정국>이라는 해설기사에서 “이번 대선은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 새로운 시대가치를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며 “‘레드 콤플렉스’의 추억이나 ‘정치인 이회창’의 한풀이를 대선에 투영시킨다면 역사와 시대의 ‘역류’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어느 진영이든 대선의 결과보다 미래 담론의 재정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문’한 것 정도가 시의적절한 기사였다.


이밖에 이방호 사무총장이 ‘최병렬 수첩’ 거론한 이후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부각시키며 ‘차떼기’의 책임을 이회창씨에게 돌려 도덕성을 문제삼는 기사가 범람하는 가운데 <한겨레>가 6일 <이회창 점점 오른쪽으로…>에서 ‘정치 데뷔의 이유가 청렴과 개혁’이었던 이회창씨가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제왕적 총재’로 변했고,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2002년 정계은퇴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이 진정 건전하고 합리적인 개혁적 보수의 길을 간다면 국민들이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던 그가 지금에 와서 명분을 ‘좌파정권 종식’으로 바꾼 것에 대해 상세히 짚은 것이 그나마 ‘후보 검증’과 관련해 적절한 보도였다.

 

‘이회창 출마 저지 선봉대’ 자처한 조·중·동 사설·칼럼

 

 

조선·중앙·동아의 문제는 사설과 칼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이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치며 쏟아낸 주장 가운데는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필자와 칼럼제목을 바꿔가며 열을 올린 대부분의 내용은 ‘이회창 출마 명분 없다’는 주장의 ‘반복 또 반복’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는 유력 언론사로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의 비판을 넘어 ‘특정 정치세력’의 입장에 그대로 서서 감정적 비난을 퍼붓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2일 하루에만 ‘이회창 출마’와 관련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쓴 외부칼럼인 ‘시론’ <정당정치와 그 적들>과 육정수 논설위원의 ‘횡설수설’ <죄질>, 박제균 정치부 부장의 ‘광화문에서’ <흘러간 물도 물레방아를 돌린다?> 등 3건의 칼럼의 썼다.


신지호 대표의 경우 “‘정당정치의 제도화’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며 ‘이회창 출마’를 계기로 위협받게 된 한국 ‘정당정치’의 한계를 짚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과 여권 경선 후보로의 변신은 명백한 정당정치의 파괴행위”, “국민중심당에서 민주당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이인제 의원의 후보 당선은 ‘철새의 성공’이라는 저급한 선례”라며 범여권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비방을 쏟아낸 반면, “정당정치가 교란되는 속에서 단연 돋보인 모습이 박근혜 의원의 깨끗한 경선 승복”이라며 “한국 정당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획기적 사건”이라고 한나라당을 치켜세워 교묘한 정치공세를 펼쳤다.

 

이회창씨의 출마에 대해 “스페어(spare) 후보, 막판 단일화 등 희한한 논리가 동원된다”며 비판하면서 “박근혜 의원의 담대한 결단으로 축적된 소중한 자산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한 부분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한나라당의 ‘친박(朴)-친이(李)’ 내분이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을 감안한다면 한나라당에 대해 ‘획기적’이라고까지 평가한다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동아>는 신지호 대표가 ‘스페어 후보론’에 대해 이미 지적했음에도 <죄질>에서 “경선에서 결정된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 대안 출마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생각은 애당초 억지”라며 또 한 번 같은 지적을 반복했고, “이인제씨한테서 ‘죄질이 더 나쁘다’는 말을 듣는 이회창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며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이회창씨를 비꼬았다. <흘러간 물도 물레방아를 돌린다?>에서도 “이 후보의 유고(有故)에 대비한 ‘스페어 후보’라는, 자동차 타이어에나 쓸 법한 논리까지 들이대고 있다”며 ‘스페어 후보론’을 다시 한 번 지적했다.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교체의 희망’ 건 <중앙일보>

 

2일 ‘분수대’ <스페어 후보론>에서 이회창씨의 논리를 반박한 바 있는 <중앙일보>는 3일 ‘정진홍의 소프트웨어’ <대쪽과 쪽박>에서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이 글에서 “펑크난 것 때워서 스페어 타이어로 쓰던 시절은 지났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펑크난 것은 정말 곤란하다”며 ‘스페어 후보론’을 비난한 데 이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그가 결국 마지막 남은 정권교체의 희망마저 쪽박처럼 깨겠다는 건가?”라며 이명박 후보의 대권 도전을 ‘정권교체의 희망’으로 표현했다. 그 자신이 이명박 후보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고백’이다.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성, 중립성을 송두리째 내팽개친 이 주장은 유력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한 것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오로지 한나라당 당원이나 지지자 또는 이명박 후보 캠프 관계자나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대쪽 이회창씨의 장고가 자신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쪽박 깨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 아닌 충고’에 이르게 되면 <중앙일보>와 정진홍 위원이 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관점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오로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중앙>은 같은 날 사설 <가당찮은 이회창씨 출마설>에서는 “이 전 총재 측이 주장하는 ‘스페어 후보론’도 가당찮다”며 ‘스페어 후보론’을 비판하는 한편, “사태가 이렇게 번진 데에는 이명박 후보의 잘못도 적지 않다”며 “경선에서 석패한 박 전 대표의 아쉬움과 네거티브 선거전에 휘말려 대선에서 두 번 쓴잔을 마신 이 전 총재의 회한을 달래고 위로해야 할 책임은 이 후보에게 있었다”고 이명박 후보에게 짐짓 애정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새 대북정책 비판한 <동아>가 ‘이회창 대북관’ 문제삼다니?

 

<동아일보> 또한 3일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아>는 ‘전진우 칼럼’ <이회창 씨의 11월>에서 “10년 ‘진보좌파 정권 시대’가 이어졌고 이제 그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며 “이 또한 거역하기 어려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규정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당연한 시대적 대세’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친 ‘창(昌)의 창(窓)’으로는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소신과 같은 이회창씨의 ‘이념’마저 공격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동아>는 한나라당이 새로운 대북정책이라며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발표한 직후인 7월 6일 사설 <한나라당 대북 ‘비빔밥 정책’ 북 변화시킬 수 있나>에서 “새 정책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실효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며 “한나라당의 새 정책은 채찍은 뒤로 돌리고 당근만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기회주의적인 대북정책은 국민의 우려만 키울 뿐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강한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7월 24일에도 ‘시론’ <‘햇볕정책’의 짙은 그림자>에서 “한나라당이 상호주의 중심의 대북정책을 포기하고 햇볕 따라잡기로 전환한 데 대해 국민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고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회창씨가 “실패로 판명 난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이명박)후보의 대북관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출마의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던 상당 부분의 근거는 바로 <동아일보> 등 수구신문들이 제공했다. 이제 자기들의 주장과 이념에 거의 100% 부합하는 후보가 등장함으로써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쳤다’고 지적하는 것은 정략적 태도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회유, 호소, 협박, <조선일보>의 다양한 출마 저지 노력

 

한편, 한동안 사설과 칼럼에서 ‘이회창 출마’ 언급을 자제했던 <조선일보>는 3일 사설 <이회창씨, 무엇을 위한 출마인가>에서 “이 씨 마음속에 들어 있었던 것은 원칙이 아니라 욕심이었던 셈”이라며 이회창씨를 비난하면서도 “이 후보가 리더십을 발휘해 박 전 대표와 마음으로 화합을 이뤘다면 이씨는 출마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충고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조선은 이회창 출마가 더욱 현실화된 5일, 무려 세 건의 사설․칼럼에서 본격적으로 이회창 출마를 ‘저지’하고 나섰다. 먼저 ‘동서남북’ <앨 고어도 억울해서 다시 한번?>에서 강인선 논설위원은 “미국 정치에서 실패한 대선후보는 조용히 뒤로 물러앉는 것이 관례”라며 앨 고어 등 미국의 사례를 제시해 “새 시대와 새 인물을 위해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기회를 준 당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지는 길”임을 강조했다. 이회창씨는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는 지적이다.


이어 ‘김대중 칼럼’ <‘이회창 출마’ 감상법>에서는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막판에 끼어들어 야당 후보의 약점을 극대화하거나 대체 후보의 허상을 과장하는 식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한국정치의 치부를 드러내는 졸렬함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특히 김대중 주필은 “26일 후보등록을 하고 나면 도중 하차와 상관없이 선거법상 이씨의 이름은 투표용지에 명기될 것이며, 이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를 찍은 표는 모두 무효로 처리된다는 객관적 사실”을 이회창씨가 ‘염두에 둬야 한다’며 ‘후보등록을 하지 말 것’을 은연중에 ‘협박’하기도 했다.


반면, 사설 <이회창씨, 국민의 저울에 자신의 행동을 달아보라>에서는 ‘이명박 후보로는 불안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이회창씨에 대해 “한나라당을 만든 원로로서 한나라당 후보의 결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자신이 다하지 못했던 정권 교체의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진짜 없었느냐”며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같은 같은 신문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간접적인 회유’와 ‘감정적 호소’에 이어 ‘협박’까지 총동원해 ‘이회창 출마 저지’에 나선 것이다.


이밖에도 조선·중앙·동아에는 무수한 사설과 칼럼이 이회창 출마를 비판하고 저지하는 한편,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에게는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중앙>은 5일 ‘김두우 시시각각’ <‘이회창 출마’의 셈법>에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며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지지층에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결집시킨다면” “다른 위기를 상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아>는 또한 5일 사설 <한나라당, 이회창 씨가 아니라 국민 보고 뛰어라>에서 “한나라당이 단합하면 이 전 총재가 훼손한 원칙, 이 전 총재가 추락시킨 정치에의 신뢰를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구구절절이 쏟아냈다.

 

<동아>는 6일 사설 <박근혜 전 대표의 대도와 이재오 최고위원의 거취>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아름다운 승복’의 정신을 되살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제라도 이 후보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하고, 이 전 총재에게는 ‘출마 불가’의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대도(大道)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 자신이 사는 길”이라고 진정어린 우려를 담아 애절하게 호소했다.

 

경향·서울, 한나라당에 균형감 있는 지적... 한겨레, 진보개혁진영 분발 촉구

 

조·중·동에 비해 한겨레·경향·서울은 이회창 출마 관련 사설·칼럼이 양적으로 적었을뿐더러 내용도 대체로 차별적이었다.


<한겨레>는 3일 사설 <정말 도덕성이 문제라면>에서 “‘차떼기’ 당사자인 이 전 총재의 출마가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대선자금 수사를 떠올리면, 한나라당이 지금 이런 말은 하는 것도 어색하다”며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들고 나온 한나라당이 ‘차떼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지적했다. 특히 이 사설은 이명박 후보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들과 관련해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일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예외로 둘 순 없는 법”이라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나라당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서울신문>도 3일 사설 <한나라당 ‘대선 장부’ 실체 밝혀라>에서 “대선의 유불리를 떠나 그런 ‘대선 장부’의 실체를 하루속히 밝혀내야 할 것”을 요구했고, <경향>은 5일 사설 <이 후보, 이회창 출마에 책임 느껴야>에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문제제기가) 공감을 얻으려면 자신의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는 균형감각을 보여야 한다”며 “지금 이 순간 진행되는 자신의 ‘각종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5년 전 남의 ‘차떼기’를 공격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특히 <한겨레>는 5일 사설 <오른쪽 날개만 펄럭이는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출마’와 관련한 여론조사 내용을 인용하며 “놀라운 것은 보수 성향 후보에 대한 전례없는 쏠림이 아니”라 “진보 혹은 자유주의적 성향의 후보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라며 개혁·진보진영에 대해 “상대 진영과 비교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의 지적은 굳이 특정 후보에 대한 ‘충고’가 아니었다. 정동영 후보의 경우 ‘중간층을 흡수하겠다며 비전과 정책의 차별성을 소홀’히 했고, 문국현 후보 역시 ‘성장과 효율의 덫에 걸려’ 결국 “균형성장, 약자에 대한 배려, 지속 가능성 등 진보적 가치는 사라지고, 경쟁과 효율 성장의 담론만 판을 친다”는 현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혼란스러운 유권자들, 보수신문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신문들은 ‘이회창 출마’와 관련해 과도할 정도의 관심을 쏟았다. 비록 이회창씨의 출마 여부가 선거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하더라도 선거와 관련된 기사를 온통 ‘이회창’으로 도배함으로써 오히려 언론들이 이회창씨를 일약 ‘뉴스의 중심’, ‘화제의 인물’로 부각시킨 결과를 낳게 됐다. 그 가운데는 이회창씨의 정계 복귀가 가지는 다양한 문제를 한국 정치의 현실과 결부시켜 다각도로 살펴보기 보다는 ‘이회창 대선 출마’를 둘러싼 각 정치세력의 움직임을 중계식으로 다룬 보도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편,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은 ‘이회창 출마’를 계기로 그들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이 확인시켜주었다. 그들이 이회창 씨의 출마를 앞두고 쏟아낸 기사들은 온갖 격한 감정이 배어 있는 ‘이회창 출마 비난 목소리’가 제목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그들의 사설과 칼럼은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캠프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이회창 출마 저지 선봉대’를 자임했다.


11월 7일 이회창씨의 출마가 현실화된 이후에도 보수 신문들의 정파적 색깔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이회창 출마 이전 ‘이회창’의 자리에 ‘박근혜’를 넣어 ‘한나라당 집안  싸움 봉합’에 명운을 건 듯 각종 기사와 사설·칼럼을 동원해 양 진영의 ‘화해’와 ‘단결’을 주선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신문지면에서 대선과 관련된 대부분의 지면은 ‘이명박’, ‘이회창’, ‘박근혜’가 차지하게 되었고 나머지 후보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마저 지지율이 낮기 때문인지 이회창씨보다 기사 비중이 적은 마당에 문국현 후보나 권영길 후보 등은 한 줄이라도 다뤄지면 다행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정책보도나, 제대로 된 후보검증은 실종되고 있다. BBK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핵심적인 영향을 미칠 김경준씨의 귀국은 그저 ‘대선의 변수’로만 다뤄질 뿐,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극히 일부에 머물고 있다.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보다는 ‘그들의 주장’만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회창씨의 출마로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진 17대 대선의 남은 한 달여가 이들 보수신문들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태그:#이회창, #민언련, #조선일보, #동아일보,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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