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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설립한 지방공기업인 SH공사(사장 최령)가 송파구 동남권유통단지 시공사 선정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유통단지에 설치할 조형물 당선 작품이 모작(模作)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모작 의혹에 휩싸인 당선 작품은 작가 이모씨 외 8인(대표작가 이모씨)이 제출한 16점 중에서 4개 작품이다. SH공사는 동남권유통단지에 설치할 조형물을 설치비 포함해 31억6천만원에 공모해 지난 11월 2일 당선 작가로 이모씨로 선정했다. 그러나 SH공사는 당선 작가만 발표하고 당선 작품을 보여주는 도판(출품작을 설명하는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SH공사가 당선 작품을 공개하지 않자 응모한 작가들의 비난이 빗발쳤으며, 당선작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응모한 작가들이 서울시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SH공사는 지난 11월 8일 마지못해 웹하드를 통해 도판을 공개했다.

조형물을 공모하면서 당선 작가와 도판을 동시에 발표하고 심사평 등을 응모한 작가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도판이 공개되자마자 모작 의혹이 제기됐다. SH공사 조형물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 이씨 외 8인의 작품 16개 중 4개가 모작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 맨 위에서 왼쪽이 SH공사가 선정한 당선작품 '오작교'와 오른쪽이 뮌헨 올림픽 설치작품인 '올림픽의 무지개'다. 사진 아래의 왼쪽이 서김해 IC입구에 세워진 '김해시의 비상'이고 오른쪽이 SH공사가 선정한 당선작 '국제유통단지의 비상'이다. 이 두 작품은 작품의 크기도 21M로 같으며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다.
▲ 서울시 SH공사가 선정한 조형물 중 모작 의혹을 받고 있는 작품들 사진 맨 위에서 왼쪽이 SH공사가 선정한 당선작품 '오작교'와 오른쪽이 뮌헨 올림픽 설치작품인 '올림픽의 무지개'다. 사진 아래의 왼쪽이 서김해 IC입구에 세워진 '김해시의 비상'이고 오른쪽이 SH공사가 선정한 당선작 '국제유통단지의 비상'이다. 이 두 작품은 작품의 크기도 21M로 같으며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다.
ⓒ 김해시 홈페이지와 세계현대미술제 도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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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씨 외 8인의 작품 중 첫 번째는 ‘국제유통단지의 비상’이라는 제목의 작품.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서김해 IC에 설치된 ‘김해시의 비상’이라는 작품을 모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해시에 설치한 작품은 높이 21미터로 새의 날개 형상을 한 작품인데, 당선작가 이모씨 외 3인이 김해시 조형물 공모에 당선돼 설치한 작품이다. 

모작 의혹에 휩싸인 이씨 외 8인의 두 번째 작품은 ‘오작교’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은 제20회 뮌헨 올림픽 때 설치된 ‘올림픽의 무지개’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출판한 <세계현대미술제도록>에 실려 있다.  

이씨 외 8인의 세 번째 작품인 ‘청계천의 기억’이라는 작품도 모작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2006년 부산 송도에 설치된 이상진씨의 ‘고래’와 기본구상이 거의 흡사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밖에도 이씨 외 8인의 ‘사색의 산책’이라는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 막스 빌(Max Bill)의 ‘끝없는 표면’작품을 모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약 SH공사가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모씨 외 8인의 작품이 막스 빌의 작품을 모작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계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같이 SH공사의 동남권유통단지 조형물 공모 당선작품이 모작 의혹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조각을 공부한 조각가 S(40세)씨는 “모작 의혹으로 지목받고 있는 작품들과 원작품들의 기본구상이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작 의혹이 한국 미술계의 현실이다. 창작은 없고 남의 작품을 베끼고 있는 게 관행”이라며 한국미술계의 병폐를 지적했다.

모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씨 외 8인의 작품인 ‘청계천의 기억’의 원작으로 지목하고 있는 ‘고래’의 작가 이상진씨는 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만약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면 법률적 조치를 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맨위의 왼쪽(가)이 SH공사가 선정한 이씨의 작품 '청계천의 기억'이고 오른쪽은 2006년 부산 송도에 설치된 이상진 작가의 '고래'다(나). 사진 아래의 왼쪽(다)이 SH공사가 선정한 이모씨의 작품인 '사색의 산책'이고 오른쪽 사진(라)이 막스 빌의 '끝 없는 표면'이라는 작품을 이모씨의 도판사진에 합성시켜 대조해 보았다.
▲ 서울시 SH공사가 선정한 동남권 유통단지 조형물이 모작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 맨위의 왼쪽(가)이 SH공사가 선정한 이씨의 작품 '청계천의 기억'이고 오른쪽은 2006년 부산 송도에 설치된 이상진 작가의 '고래'다(나). 사진 아래의 왼쪽(다)이 SH공사가 선정한 이모씨의 작품인 '사색의 산책'이고 오른쪽 사진(라)이 막스 빌의 '끝 없는 표면'이라는 작품을 이모씨의 도판사진에 합성시켜 대조해 보았다.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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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 조형물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 모작 의혹을 받자 공모전에 출품했던 작가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작가들은 서울시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법적인 대응도 모색하고 있다.  

이번 SH공사의 모작 의혹사건에 대해 공모전에 출품했던 조각가인 K씨는 “창작의 핵심요건은 사고의 유연성과 참신성이다. 모작을 부끄러운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한국미술계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모작 의혹 사건에 대해 SH공사의 입장은 소극적이다. 12일 조형물 공모 실무책임자인 김모씨와 전화통화에서 “당선작가 이씨의 작품에 대해 다른 작가들이 모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내부적으로 모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작 의혹을 받고 있는 작품 ‘국제유통단지의 비상’과 원작으로 알려진 '김해시의 비상’이 “동일한 작가라서 모작으로 보기에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김해시의 비상’은 지난 2005년 이모씨가 김해시 공모전에 출품해 당선된 작품이다.

김모씨는 이어 “모작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관련 규정을 몰라 답변하기 어렵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SH공사의 이런 소극적인 답변에도 불구하고 공모지침에는 ‘작품제작 방향이 고유한 작품이어야 하며 만약 미술저작권에 위배되었을 때와 모작이나 표절 등의 결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에는 당선을 취소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이씨의 작품이 모작으로 밝혀질 경우 당선이 취소될 수도 있다. 


태그:#모작, #SH공사, #서울시, #조형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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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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