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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선거 선거일이 불과 3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진표는 아직도 확정되지 못했다. 이회창 후보의 갑작스러운 출마로 구도 자체가 바뀐 상태이고, 앞으로 범여권 후보단일화 성사 여부에 따라 다시 한 번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후보등록이 끝나야 비로소 대진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대선의 혼돈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고건 출마설'의 진상은?

 

이런 마당에 범여권 내부에서 '고건 출마설'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범여권 후보들이 지지율 상승의 돌파구를 찾지 못함에 따라 '고건 대안론'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 지지 모임도 조만간 출마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총리가 지방으로 간 이유를 놓고도, '출마고민용'이냐 '출마권유 회피용'이냐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이회창 후보 출마로 보수후보들 간의 양강구도가 형성되고, 범여권 후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후보단일화의 효과에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것이 범여권의 사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범여권의 '제3의 대안'에 대한 마지막 탐색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고 전 총리는 거명될 수 있는 1순위 인물이었다.

 

'고건 대안론'의 근거

 

현상황에서 고 전 총리가 '대안'으로 거명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파악된다.

 

첫째, 본선경쟁력에서 현재의 범여권 후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판단이다. 고 전 총리는 대선출마 포기 선언 때까지 범여권 후보들 가운데서는 지지율 1위를 줄곧 달렸다. 그가 지금이라도 나선다면 현재의 후보들보다는 지지율에서 훨씬 나은 결과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이다.

 

둘째, 고 전 총리가 출마하면 '호남표' 결집이 가능하리라는 예상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호남표의 결집은 범여권세력이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그 같은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범여권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고 전 총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고 전 총리가 지금이라도 나설 경우 범여권으로서는 여러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정동영·이인제·문국현 후보에다가 고 전 총리가 가세하여 후보단일화 승부를 연출한다면, 상당한 관심을 모으는 막판 흥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단일화된 후보의 지지율은 일정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고건 출마'는 정당정치 부정 결과

 

정치공학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고 전 총리의 출마는 범여권세력에게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건 대안론'은 근본적인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먼저, 이회창 후보 출마에 이어 고 전 총리까지 정당의 경선을 무시하고 무임승차식의 출마를 하게 된다면, 우리 정당정치의 존립의미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사실상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런 행동들이 반복되면 결국 정당의 후보경선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되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열매를 따먹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고건 대안론'은 원칙 없는 '후보교체론'이다.

 

또한 고 전 총리가 갑자기 범여권의 후보로 출마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이번 대선은 거의 완벽하게 보수일색의 선거로 가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고 전 총리는 보수성향의 인사이고 현재 범여권세력의 정체성과도 일정한 거리가 있다.

 

'고건 대안론'은 결국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정체성은 묻지 말자는 논리가 된다. 그렇게 한다고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보수 성향 후보를 앞세워 보수진영의 두 후보와 겨룬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번 대선에서는 정당간의 노선과 정책대결은 완전히 사라지고, 보수적 인사들 간의 인물중심 경쟁만이 남게 된다. 이번 대선 하나로 우리 정당정치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같은 보수일색의 구도를 선택하는 것은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대선 이후 보수양당체제의 등장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우려하게 되는 대목이다. 보수양당체제를 견제하며 우리 정당구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개혁정치세력의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튼튼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오죽하면 이제 와서 '고건 대안론'이 거론될까. 그 사정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판에 '히든 카드'를 꺼내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욕구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조금 있으면 후보등록을 해야 할 마당에 '고건 대안론'을 제기하는 것은 우리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고 전 총리와의 관계는 그로부터 도움을 받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태그:#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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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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