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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낮에 언니가 전화를 했다. 언니는 아버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부지 우에 지내시노? 심심해 하시지는 않나?"

 

언니는 아버지가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적적하게 지내실까봐 염려하는 눈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버지는 적적하실 거 같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심심하고 무료하실 거다.

 

그런데 고향에 간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랑 가까이 지냈던 친구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동네에는 안어른들만 남아 있다. 안어른들만 계시니 마실(마을)도 못 다니실 거고, 그러니 늘 혼자 계실 수밖에 없다.

 

"아부지, 영화 보러 가실래요?"

 

고향 마을에서 지내시면 놀러갈 친구도 마땅찮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늘 보며 살았던 고향산천이 아버지의 벗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낯선 동네에서 심심해 하시지 않을까 걱정한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위해서 이벤트성 나들이를 꾸미기도 한다. 내가 세운 계획에는 인천공항 놀러 가기,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자장면 먹기, 그리고 서울 딸네집에 와계신 고향 어른 찾아뵙기 등등이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이번 주 휴일에는 아버지에게 영화를 한 편 보여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아부지요, 극장에 가서 영화 본 적 있십니꺼?"

 

귀가 어두운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내 입을 보며 귀를 기울이셨다.

 

 

"전에 아부지 영화 디기(매우) 좋아했잖아요. 그 때 왜 가설극장이 오면 한 번도 안 빼먹고 영화보러 안 댕깄습니꺼?"

 

그제서야 아버지는 내 말뜻을 이해하셨나 보다.

 

"그케, 그 때 영화보러 마이 다녔지. 그런데 식구들 수대로 다 영화보러 가마 그 돈도 무시 몬하는 기라. 그 때 영화 보는데 아매도 한 사람 앞에 막걸리 반 되 값을 준 거 같다."

 

"아부지요, 그라마 영화관에는 가 본 적이 있십니꺼?"

 

"몬 가봤다. 그게 갈라카마 돈이 마이 들꾸로? 얼매씩 하노?"

 

아버지는 구미가 당기시는지 내 말을 따라 오셨다.

 

가설극장이 오면 하룻밤도 안 빠졌지

 

예전 내가 어렸을 그 때,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는 라디오가 있는 집도 몇 집 안 되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텔레비전이란 물건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 때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사온 라디오였다.

 

저녁을 잡숫고 나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그 어른들은 사랑방에 둘러 앉으셔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연속극에 홀딱 빠지셨다. 그 때 동네에 가설극장이라도 오면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모두 가슴이 설레 저녁밥도 옳게 못 먹고 영화보러 달려갔다.

 

봄철과 가을철에 오던 그 가설극장은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사라진 건 가설극장만이 아니었다. 집집이 텔레비전을 사자 동네 마실 다니면서 놀던 그 풍습까지도 사라져 버렸다. 저녁 먹으면 전부 다 텔레비전 앞에 코를 박고 앉아서 집에 누가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다.

 

 

우리집은 텔레비전도 남들 집보다는 빨리 장만했다. 그 때 돈으로 얼마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비싼 돈을 주고 텔레비전을 샀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사자 어린 우리들은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모둠박이를 하더란다.

 

텔레비전을 사자 엄마는 우리가 늦도록 안 자고 텔레비전만 본다고 걱정을 하셨다. 특히 주말에는 <주말의 명화> 본다고 그게 끝날 때까지 안 자니 엄마는 안 좋아하실 수밖에. 하지만 아버지가 워낙 <주말의 명화>를 좋아하셔서 엄마는 싫어도 꾹 참고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한 쪽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 속에는 <주말의 명화>가 아련하게 남아 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정일성씨의 영화 소개도 기억난다. 흑백 텔레비전의 그 푸르스름한 화면과 함께 아버지와 함께 보던 <주말의 명화>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텔레비전을 보던 우리 옆에서 잠을 청하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우리 엄마도 생각난다.

 

야한 장면 있으면 아버지랑 보기 민망하겠지?

 

드디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서둘렀다. 김포공항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해놓았던 터다. 오전 10시에 하는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러자면 집에서 8시 30분 쯤에는 나가야 한다.

 

서둘러 간 덕분에 공항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차를 몰고 공항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한 20분을 남겨놓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남은 표가 한 장밖에 없다는 거였다. 이른 아침인지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고 표를 끊지 않았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로 한 영화는 음식 이야기를 담은 <식객>이었다. <식객>은 한국 영화이기 때문에 자막을 읽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야한 장면도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식객>으로 선택했는데 표가 없다는 거였다. 큰 일이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따라온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차를 돌려 김포로 올라갔다. 마침 그 곳의 영화관에서 10시 50분에 그 영화를 상영한다는 거였다.

 

 

세상은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다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12세 이상이 볼 수 있는 영화다 보니 청소년들이 많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들어온 가족도 더러 보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 아버지 연세 또래의 분은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영화에 빠져서 아버지를 잊어 버렸다. 아버지가 잘 보고 계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자세가 자꾸 흐트러져 가는 거였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자니 힘이 드신지 아버지는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파묻으시는 거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눈을 감고 있는 거였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더러 계단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본 그들 모두는 젊었다. 60대 이상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젊었고 힘이 넘쳐나는 것 같이 보였다.

 

아마도 이 세상은 젊고 힘있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돌아가는 모양이다. 모든 게 젊은 사람들 위주로 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처럼 늙고 힘없는 사람은 마땅히 볼 영화도 없고 편안히 쉴 곳도 별로 없다. 이 세상 모든 게 젊은 사람 위주로 되어 있으니 나이 드신 분들은 그저 주는 밥이나 먹고 집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영화관에 갔고 또 아버지랑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랐건만 아버지는 그다지 재미가 있지 않으셨나 보다.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 젊은 애들과 함께 행동하기가 버거웠는지 그 날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누우셨다. 그리곤 곧 잠이 드셨다.


태그:#아버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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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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