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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궁둥이에 땀띠가 나도록 뭉개고 앉아 목하 '취업시험' 준비 중인 우리 딸을 며느릿감으로 탐내는 집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와 사돈을 맺고 싶다는 집안은 후배의 큰 시누이인데 그 부부는 둘 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부부교사다.


후배의 큰 시누이와는 가깝지는 않지만 만나면 내게 '언니'라고 부르며 반색할 만큼 스스럼없는 사이고, 그 남편은 한때 한 사무실에서 일했던 아주 절친한 사이다. 그렇게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이 우리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으니 그 말이 가볍게 던진 것은 아닐 터였다.


지난 명절, 부모님댁에서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 집 아들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족 모두 만장일치로 우리 딸을 찍었단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우리 딸을 찍었느냐고 물으니까 야무지고 똑똑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였단다. 딸도 없는 외동아들인 녀석이 사회진출을 앞두고서도 영 정신을 못 차린단다.


성품은 착한 데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싱거운 녀석이라나. 해서 녀석의 헤픈 성격을 다 잡아 줄 야무진 처자가 딱인데 가까운 곳에서 둘러보니 우리 딸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숟가락 숫자 빼고 양가의 사는 형편과 됨됨이는 거짓말 조금 보태 유리알처럼 들여다 보는 처지니 감추고 따지고 할 것도 없는 사이였다.


하여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윷놀이 대신 우리 딸을 대상으로 콩이야 팥이야 왁자하니 떠드는데 녀석의 아빠는 말없이 빙긋 웃고 녀석의 엄마가 나랑 친자매처럼 지내는 제 손 위 올케한테 통사정을 하더란다.


"언니한테 가서 올케가 잘 설득 좀 해주세요. 자경이 우리 집에 보내면 혼수 걱정할 것도 하나 없고, 시부모 때문에 골치 아플 것도 없다고요. 더구나 늙어 죽을 때까지 연금으로 살 수 있는 여자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라는데 내가 바로 황금알을 낳는 오리잖우~~"


"황금알을 낳는 오리?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도 오리시리즈 모르는구나. 나도 시누한테 그 소리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후배는 곧장 제 시누한테 들은 오리시리즈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띵까띵까 놀면서 호강만 하는 여자는 탐관오리
열심히 재산 늘려놓고 일찌감치 세상을 뜬 여자는 앗싸! 가오리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비글비글 아프기만 한 여자는 어찌하오리
정년까지 빵빵하게 채운 것은 물론 퇴직해서는 연금까지 받는 여자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 그러니까 부부교사인 우리 시누 집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족이라 이거지. 하하하~~"


그 말이 어찌나 우스운지 뒤집히게 웃다가 불쑥 후배한테 "그럼 나는 무슨 오리니?"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날렸다. 그랬더니 1초도 되지 않아 후배가 "아, 당연히 '어찌하오리'지."


졸지에 '어찌하오리'가 돼 버렸다. 오리 시리즈를 들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 잘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지금은 젊은 남성들의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즉 외모가 시원찮은 것은 용서해도(고치면 되니까) 직업 없는 것은 용서 못 한다나.


내세울 조건이 화려한 남자 아이들일수록 원하는 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학력과 외모는 기본이고, 능력 있는 여성에 플러스 알파(?)까지 기대하는 모양이다. 우리 나이가 나이니 만큼 주변에 지인들이 모두 아들 딸 혼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다.


주변의 사정이 이러하니 딸을 가진 엄마로서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딸아이 취직시험 끝나면 넌지시 말이나 넣어 봐야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만한 집 만나기 어렵다. 그 아이 엄마, 아빠는 내가 보증하는 성품이고 더구나 둘 다 교사 아니냐. 그리고 이모 말 들으니까 그 녀석도 친구도 많고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란다. 어때, 한번 생각해 볼래?"


태그:#결혼 풍속도,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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