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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내라! 살려내라! 우리 동지 살려내라!"

 

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복음병원 앞, 시끄러운 출근길 차량소음 사이로 울음 섞인 외침이 들렸다. 곧이어  "아이고, 아이고"라고 오열하는 소리와 함께 국화로 장식된 한 남자의 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국노점상총연합회(전노련) 고양지역 회원 고 이근재(48)씨의 장례식이 숨진 지 29일만에 열렸다. 아직 제법 아침 햇볕이 따뜻한 날씨지만, 고층 아파트와 병원의 그림자 때문인지, 구슬픈 울음소리 때문인지 장례식장에서는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병원 앞에 놓여진 조촐한 상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이씨의 아내 이상미(47)씨와 두 자녀들이 그대로 주저 않아 오열했고 전노련 회원 300여 명은 둘러서서 눈물을 흘렸다. '노점상도 사람이다' '더 이상 빼앗지 마라'라는 길다란 플래카드도 들썩였다.

 

 

협상은 시작되지만 말문 닫은 사람들

 

고양시의 노점 단속이 몰아치던 지난달 12일 일산 주엽동에서 아내와 함께 붕어빵과 떡볶기 노점상을 하던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노련측은 고양시의 무리한 단속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양시는 이씨의 노점이 직접적인 단속 구역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며 책임을 부인해왔다. 전노련은 고양시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이날까지 장례식을 미뤄온 것.

 

삼보일배 투쟁과 빈민대회 등을 통한 강력 투쟁을 부르짖던 전노련은 전날 고양시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며 입장을 급선회했다. 앞으로 전노련은 고양시와 노점상 허용 기준 등을 협의하게 된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해소된 셈이다.

 

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회원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심정을 물어봤지만 "기자들에게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며 피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면 "찍으면 뭐해 하나도 안 내보내는데"라고 고개를 돌렸다.

 

신원을 밝히기 꺼린 40대 여성은 "(장례식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면서 "(심정 얘기를 할) 마음이 아니다"라고 금세 말문을 닫았다. 마두역 근처에서 떡볶이를 팔았다는 김씨도 "죽은 사람이 딱하지,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시와 대화가 잘 통할지 모르겠다"며 붉어진 눈을 깜빡였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조사를 통해 "좌판을 벌여놓으면서까지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권력자에게 빌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민중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는 "고양시가 21억원을 들여 깡패를 사들이고, 도시미관이라는 명분으로 이근재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그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었다, 비정한 나라가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후보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힘으로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열심히 일하면 대접받고 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도 "더 이상 열사를 만들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우리의 한을 풀자"고 말했다. 

 

회원들은 영정 앞에 국화를 한송이씩 놓고 노제를 위해 생전에 이씨가 장사를 하던 문화초등학교로 향했다. 차에 오르던 신아무개(47)씨는 "마음이 아프다, 없는 게 죄다"고 중얼거렸다.

 

이날 오후 붕어빵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던 이씨는 29일만에 고양시립묘지에 잠들었다.

 

한편 고양지역 시민단체 회원 5천여 명은 이날 오전 '불법 노점상 부당행위에 대한 범시민 걷기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주엽역 공원에 모여 "도로보행이라는 고양 시민의 권리를 지키자"라는 뜻을 모으고 고양종합운동장까지(1.5㎞) 걸었다.


태그:#이근재, #권영길, #전노련, #고양시,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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