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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행렬이 100m 넘게 이어졌다.
 자전거 행렬이 100m 넘게 이어졌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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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4일 안양천변 자전거 도로에 '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저지' 등의 글귀가 적혀 있는 몸 벽보를 두른 자전거 행렬이 100m 넘게 이어졌다. 자전거 캠페인에 나선 이들은 경기도 안양과 서울금천구 시민단체 회원 및 민주노동당 당원들이다.

"자전거 한번 타볼까!"라는 갑작스런 제안이 시초가 되었다는 전언이다. 모임 뒷풀이 자리에서 누군가 "일요일날 자전거 한번 타볼까"라고 제안했고 여기저기서 "그거 좋은 생각이네"라며 맞장구 쳤던 것. 그 자리에서 책임자가 선발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자전거 타기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몸 벽보를 두른 이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단체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지만 공익 이슈를 담는다면 여행이 훨씬 뜻 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코스는 안양천변에서 서울 한강 시민공원 서강대교까지 왕복 약 52km 거리였다.

출발! 안양천변 금천구 시흥동 구간
 출발! 안양천변 금천구 시흥동 구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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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서울 중심부로 갈수록 양호

자전거 타기 행사엔 가족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안양천변에서 한강 시민공원까지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이제 열 살 된 딸내미가 잘 따라올까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경기도 안양 비산대교 부근에서 오전10시에 열세 명이 모여 출발했다. 가족들은 석수동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일행들을 미리 보내고 혼자서 기다렸다. 서울 금천구에서 나머지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일행 모두가 지체할 수는 없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록 가족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0분까지 기다리다가 혼자 출발했다. 더 지체하면 일행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출발할게"라는 짤막한 음성 메시지를 아내 핸드폰에 남기고 바쁘게 페달을 밟았다.

서울 금천구에서 6명이 합류해 일행은 19명이 되었다. 몸 벽보를 두르고 자전거 타는 모습이 신기한 듯 사람들은 연신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자전거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좁은 길에서는 달리다가 서로 어깨를 부딪칠 만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양을 벗어나 서울 중심부로 갈수록 자전거 도로와 주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중간 중간 끊겨 있고 파손되어 있는 안양에 비해 서울 자전거 길은 매끄럽게 잘 포장되어 있고 주변 체육시설도 다양했다.

하지만 축구장과 농구장 등에 안전망이 없다는 것이 위험스러워 보였다. 고속으로 질주할 때 축구공에 맞는다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을 법했다. 실제로 작년에 사고가 났던 구로구  고척동 구간에서 잠시 쉬며 전경을 둘러봤다.

축구하는 사람들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모두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에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2006년)에 축구장에 있던 공이 자전거 도로로 흘러왔고 때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중년남자의 자전거 페달 밑에 끼었다. 중년 남자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며 뇌골절을 당했고 사고난 지 하루만에 사망했다.

안양에서 한강 시민공원까지 가는 동안 축구장 농구장 족구장 등에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축구장과 자전거도로 사이에 안전망이 없어서 위험해 보인다.
 축구장과 자전거도로 사이에 안전망이 없어서 위험해 보인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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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없는 아빠! 그래도 반겨주는 아들

한강변 자전거 도로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안양천변을 달리며 다리에 쌓인 피로감이 탁 트인 한강을 보자 한꺼번에 풀렸다. 몇 분을 더 달리자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보인다.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강변 서강대교 부근 잔디밭에 도시락을 펼쳤다. 김밥만 준비한 줄 알았는데 고구마, 떡도 나왔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쭉 펼치니 제법 풍성해 보인다. 영화 <괴물>에 등장했던 것과 똑같은 간이 슈퍼에서 컵라면을 한 개씩 사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모두들 시장했던 터라 젓가락질이 꽤나 분주했다.

"어디야? 지금 한강 보이는데! 이제 거의 다 온 것 갚은데"

아내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내가 세살배기 호연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10살짜리 꼬마 둘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 내 얘기를 전해들은 일행들 모두 놀라는 눈치다. 10살짜리 둘 중 하나는 딸 하영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영이 친구 재욱이다.

전화가 온 지 20분 정도 지나자 멀리서 하영이 모습이 보인다. 하영이 자전거는 바퀴가 아주 작은 '미니밸로'다. 기어가 없어서 좀처럼 속도도 나지 않는다. 26km를 10살짜리 꼬마가 기어없는 미니벨로를 타고 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호연이는 아빠가 가족들 떼어놓고 의리 없이 혼자만 씽씽 달려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팔을 벌리고 "아빠"라고 소리치며 달려온다.

즐거운 점심시간
 즐거운 점심시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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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훨씬 힘들었다. 아빠의 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니벨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달려왔을 하영이 녀석이 아빠를 보자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던 것.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하영이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자전거에 끈을 매고 하영이 자전거를 견인하듯 끌면서 돌아와야 했다.

안양시 초입에 도착했을 즈음 세살배기 호연이가 자전거 위에서 졸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잠이 들었다. 잠자는 호연이를 태우고 달리기는 무리였다. 아내는 호연이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자전거를 천천히 끌고 갔다.

집에 돌아오니 온 몸이 녹초다. 일행들과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막걸리 한잔 기울였더니 몸 구석구석 마디마디가 '노곤노곤' 했다. 하영이 호연이는 나와 아내에 비해 팔팔하다. 다음에 또 가자고 하니 냉큼 '그래' 하고 소리친다.

일행들도 다들 피곤한 눈치였다. 막걸리 잔을 서로 기울이면서 '내일 출근 할 일이 걱정'이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에는 모두 가족 동반해서 자전거 여행 떠나 봅시다" 했더니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자전거에 싣고 갔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보니 행복이다. 몸에는 사회 이슈를 담은 글귀를 붙였지만 마음에는 행복을 담았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몸에서 나오는 동력으로 가족들과 함께 52km를 달렸다는 것이 뿌듯하다. 자전거는 내가 살아 있고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난 자전거 타면서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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