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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옛길은 봄부터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단지 걷는 게 아니라 옛 정취를 느껴보고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의 땀과 눈물까지 느껴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순원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데리고 걸어 내려가던 이야기를 쓴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기억도 한몫 거들었다. 


모처럼 네 가족의 뜻을 모아 대관령 옛길을 찾았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국사성황당을 거쳐 대관령 박물관까지 걸었다. 내려가는 길에 단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단풍 물든 옛길을 걷다 문득 뒤돌아보면 따라오는 이들의 얼굴에 단풍처럼 웃음이 피어올랐다.


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서 소원을 빌다


강릉하면 단오제가 유명하다.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강릉 단오제의 주신을 모신 곳이 대관령 국사성황당이다. 그래서 강릉 단오제는 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서 시작된다.


“단오제에서 사람들이 뭘 빌었을까?”
“대관령 산길 무사히 넘게 해주십사, 농사 풍년 고기잡이 풍어 되게 해주십사 빌었다고 해.”
“대관령 산길 안전통행?”
“아흔 아홉 구비 산길을 걷다보면 맹수도 있고, 산적도 있었을 거야.”

 


단오제와 국사성황당 얘기를 나누며 오르는 길이 꼭 어릴 때 넘던 고향 동네의 야트막한 고갯길처럼 익숙했다. 말 타고 가던 관리가 고갯길 낭떠러지에 굴러 말구리 고개라 했다. 고개 아래로 포장도로가 생겨 이제는 초목에 묻힌 채 아무도 찾지 않는 길이 되었다.

 


선자령 등산로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등산로 아래로 국사성황당 지붕이 보였다. 초행길이었지만 한눈에 성황당이란 느낌이 들었다. 부족국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전해지는 단오제의 주신을 모신 곳이라 영험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치성을 올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등반길 왼쪽으로 성황당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길 따라 성큼 내려서니 낙엽 덮인 길의 푹신한 감촉이 발걸음을 따라 온몸에 전해진다. 함께 걷던 일행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야, 정말 좋다.”
“여기서 며칠 머물다 가고 싶다.”
 “그림 같다.”


더러는 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올려 허공을 향해 흩뿌리며 환하게 웃었다. 콘크리트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 다다르면 가슴 가득 행복이 느껴진다.

 


 

 

국사성황당에 다다르니 영험하신 대관령 국사 성황신께 제 올릴 준비가 한창이다. 제 준비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성황사 및 산신당을 둘러보았다. 성황사에 모신 분은 범일국사라고 한다. 당나라에 가서 불도를 얻고 돌아왔으면서도 대관령 국사성황신으로 모신 게 특이하다.


“우리도 성황님께 빌고 가야지.”
“뭘?”
“대관령 옛길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산짐승도 없고 도적도 없는데?”
“치성 올려 해로울 거 없어.”


창수 형이 대표로 성황사 앞에 서서 무사 답사를 빌었다. 네 가족이 함께하는 대관령 옛길 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옛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고 배우는 보람찬 답사가 되게 해달라고.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제발 맞지 않게 해달라고. 성황님께 빌고 또 빌었다.

 


고등학교 1학년 상희도 성황신 앞에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빌었을까. 성적 잘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을까. 함께 온 엄마 아빠의 건강을 빌었을까. 아니면 다른 것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산신당 앞에서 한 아주머니도 두 손을 모아 성황신께 치성을 올렸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수능 시험 잘 보고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수시모집이 시작되어 진작부터 당락이 갈리고 있고, 일부 고등학교 교문 앞에는 합격 축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지만, 수학능력고사 날짜가 고 3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째각째각 다가오며 부담을 주고 있다.


나도 성황신 앞에 섰다. 문득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 12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휠체어에 의존해서 재활병원을 전전하는 친구다. 그 친구가 며칠 전 동창회 사이트에  글 하나를 남겼다.


작년 12월15일 사고 나서 재활해 온 지가 10개월이 넘는구나.
원주 기독병원에서 5개월,
경기도 광주삼육재활병원에서 3개월,
일산 국민건강보험공단병원에서 2달,
그리고 이곳 참서울 재활….


보고 싶구나.
걸어가는 내 모습을
뛰어가는 나를
개울에서 고기 잡는 나를.


성황신 앞에서 고개 숙여 빌었다. 친구가 다시 일어서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친구가 좌절하지 않고 재활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친구와 함께 걷기대회에도 참가하고 대관령 옛길도 함께 올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10월 28일 대관령 옛길 답사 과정을 쓴 기사입니다. 다음 회에는 국사성황당 - 반정 - 대관령 박물관까지 걸어내려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태그:#국사성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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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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