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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편지는 종이에 적은 대화이다." - 그라시안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하거나 그리운 벗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찾던 정겨운 중동 우체국이 문을 닫았습니다. 괜히 눈물이 나려 합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나 봅니다. 왜 우체국이 문을 닫게 되었을까. 이 믿기지 않은 사실에 공연히 쓸쓸해졌습니다.
 
언제나 이곳에 와서 편지를 쓸 때마다 어느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며 우체국 앞마당에 잘 가꾸어진 채마밭에 핀 야생화들을 보고 행복해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시 한 수를 외워보곤 했습니다.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유치환 '행복'
 
우체국 직원은 몇 명 안되었지만 정말 친절해서 손님들이 가지고 온 우편물을 대신 포장까지해서 접수해 주셨지요. 일반 우체국과 다르게 내 집처럼 부담스럽지 않았고, 인터넷이 끊겼을 때도 여기 오면 세상의 창이 열리듯 환했던 중동 우체국…. 정겨운 이웃끼리 만나 잠시 차도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우체국이었는데 말입니다.
 
 
중동의 유일한 통신매체 역할을 했던 동네 우체국이 문을 닫는 이유는 우편량과 보험 실적 등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근처 주공아파트 철거가 큰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 세대가 이주한 것도 아니고 다른 우체국은 상당한 거리인데 난감합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동네 골목에서 우체통을 찾기도 어렵고, 우체통이 있더라도 슈퍼에서조차 우표를 쉽게 구입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행정 당국에서 시민 생활의 불편에 대해 배려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마저 했습니다.
 
중동 우체국이 주공 아파트만을 위해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것이고 지역 주민을 위해 간이 우체국으로 축소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쉽게 우체국을 없애는 것은 서민들을 위한 우편 행정이 아닌 듯해서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닙니다.
 
 
아기를 업고 우체국에 들어 온 한 젊은 주부는 "손님, 내일부터는 우체국이 문을 닫습니다"라는 직원의 안내에 깜짝 놀랍니다. 우체국 입구에 써 붙인 현수막을 보지 못했나 봅니다. "어머, 그럼 어디 가서 이제 우편물을 보내죠" 하며 울상을 짓습니다.
 
어쩌면 이 주부의 가장은 다른 먼 지역에 직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나 인터넷, 은행 업무 등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중동 우체국의 폐국에 불편함을 느낄 주민이 한두 사람은 아닐 듯합니다.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 꽃밭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보았습니다 /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 사연은 간단합니다 /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을 짧을지라도 / 사연은 길터인데 //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 바느질 그릇을 치워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냐고만 묻고 /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 나의 말은 묻지 않더라도 / 언제 오신다는 말은 먼저 썼을 터인데" - 한용운 '당신의 편지'
 
 
영국의 국방상 겸 대법관이었던 홀딩 공은 부친이 사망한 1887년부터 어머니가 백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 1925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어머니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8년 동안 1만 5000통의 편지를 썼다는 것이지요.
 
편지란 누구에게나 흐뭇한 미소와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아주 오래된 통신 수단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쓰는 마음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깊이 반성하고 나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체국 당국에서는 편지 쓰기 대회를 열고 있지만 어쩌면 겉보기를 위한 행사인 듯도 여겨집니다. 우체국이 멀리 있다 보면 자연히 편지 쓸 일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편지를 받을 일도 적어지고 말겠지요.
 
연필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 쓰던 어린 시절처럼 마지막 편지처럼, 파란 가을 하늘 편지지가 어린 작은 유리창에 씁니다.
 
"집배원 아저씨,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태그:#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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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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