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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7조각 테트리스>(극단 현장) 중 한 장면. 이 연극은 대형마트 계산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루고 있다.
 연극 <7조각 테트리스>(극단 현장) 중 한 장면. 이 연극은 대형마트 계산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루고 있다.
ⓒ 극단 현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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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연극 중 대형마트 계산대 풍경. 계산이 다 끝난 뒤 할인카드를 내밀며 다짜고짜 조르는 중년 여성 손님, 미성년자가 뻔한데 술을 사면서 신분증도 내놓지 않는 어린 남자 등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너무 리얼해" "저런 사람 꼭 있어"라는 탄성이 새 나왔다.


#. 장면 둘.
배우들의 익살에 객석에선 쉽게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눈물바람도 거셌다. 극중에서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등장하는 미영이 '계약만료' 통보를 받고 눈물을 흘리자, 관객들은 휴대용 휴지 하나를 옆으로 전달했다.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는 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거리에서 복직 투쟁을 벌이던 이들이 잠시 휴식을 가졌다.

이랜드-뉴코아 노조, 르네상스 호텔 노조, 복직 투쟁중인 코오롱 노조원 등은 30일 저녁 8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있었던 연극 <7조각 테트리스(극단 현장)>에 초대받았다.

특히 이랜드-뉴코아 노조원 50여명은 이날 총회를 마치고 공연장을 찾았다. 이들은 대형마트에서 있을 법한 풍경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완전 공감'을 나타내며 크게 웃거나 혀를 끌끌 찼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지지만 100명이 넘는 노조원 대부분은 연극을 관람하지 못했다. 주부인지라 저녁 8시의 야외활동은 쉽지 않았을 터. 뉴코아 야탑점에서 일했던 강혜정(44)씨는 "공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많이들 집에 갔다"고 아쉬워했다.

연극을 '투쟁 동지'들과 함께 보지 못한 강씨의 아쉬움이 클 만 했다. 공연 한시간 반 동안 객석에서는 "너무 리얼하다" "저런 사람 꼭 있어"라며 공감을 나타내는 현장 반응이 쏟아졌다.

강씨 등 노조원들은 연극 시작 직전 투쟁가가 나왔을 때도 어깨를 걸며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강씨의 동료 임아무개(40)씨는 "아는 노래 나오니 좋네"라며 잔뜩 들뜬 기분이었다. 노조원들과 함께 따뜻한 실내에서 투쟁가를 부르는 일도 있다니, 강씨가 총회 참석에 대비해 준비해온 은색 깔판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딱 우리 이야기네"

극단의 애초 기획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극단 측은 "<7조각 테트리스>의 주제는 무겁지만, 구성은 재미있다"며 "무엇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 특별하지 않지만 개성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렸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관객의 집중도가 높았던 이유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연극은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은철과 대형마트 비정규직 계산원 미영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노조를 만들려는 은철과 미영은 업주의 회유와 협박, 정규직-비정규직간 갈등에 부딪친다.

특히 미영이 부당한 이유로 마트로부터 '계약 만료' 통지를 받고 남편의 품에 안겨 우는 장면에서는 무대와 객석이 함께 울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는 구절이 노래 속에서 반복되자, 누군가 꺼낸 휴대용 휴지 하나가 자동으로 옆 자리로 '패스'됐다.

마트 점장이 "이 지역에 불순 세력이 침투해 노조를 만들고 있다"고 대사를 읊자, 객석에서는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항의하는 노동자에 맞선 검은 옷차림의 남성이 등장하자 "용역 깡패잖아, 용역"이라고 중년 여성들은 소곤거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뇌리에 박힌 장면은 지난 1998년 IMF 위기 당시 정리해고된 현대자동차 식당 종업원들의 이야기. 당시 생산인력을 대신해 해고 1순위였던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사연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극 중에는 이같은 장면이 흑백 영상을 통해 무대 벽에 상영됐다. 길거리에서 복직 투쟁을 하는 모습, 건장한 남성들에게 끌려 나가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 등은 현재 자신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르네상스 호텔 노조원인 이옥순씨는 연극이 끝난 뒤 "딱 우리 이야기"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씨는 현대차 식당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되짚으며 "우리도 상급단체가 합의를 해주는 바람에 일하는 곳에서 잘렸다"며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 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인수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사무국장은 "2005년 2월 우리가 정리해고 당했을 때랑 똑같다"며 "과천 정부청사 앞에 텐트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랑 다를 것이 없다"고 공감을 표했다.

황 사무국장은 "정리해고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다"며 "우리도 해고 전에는 그 처지를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연극을 통해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관심 좀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황 사무국장은 "요즘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이 연극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심한 그는 구미에 가족들을 두고 상경 투쟁 중이다.

"비조합원들과 함께 보고싶은 연극"

뉴코아 야탑점에서 일하던 강혜정씨. 강씨는 동료들과 함께 연극 <7조각 테트리스>를 보기 위해 30일 저녁 공연장을 찾았다.
 뉴코아 야탑점에서 일하던 강혜정씨. 강씨는 동료들과 함께 연극 <7조각 테트리스>를 보기 위해 30일 저녁 공연장을 찾았다.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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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씨는 "같이 투쟁하다가 일터로 복직한 비조합원들에게 이 연극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쟁 4개월여를 맞은 노조원들의 심정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중년 노조원들은 찬 바람이 불면서 더욱 투쟁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극은 끝날 무렵 객석의 얼굴을 환해져 있었다. 주인공 미영은 복직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됐지만 더 이상 집주인이자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출근 투쟁'을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복직되지 않았음에도 이 연극은 그들에게 '해피엔딩'이었을까. 연극이 끝난 뒤 공연장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노조원들은 "연극 재밌네"라며 귀가를 서둘렀다.


태그:#이랜드 , #뉴코아 , #7조각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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