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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31일 오후 5시 40분]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인 화물연대 소속 서울우유지회 고철환씨.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인 화물연대 소속 서울우유지회 고철환씨.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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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7층 입원실. 고철환(52)씨는 잠들어 있었다.

31일 낮 12시께 고씨의 병실 앞에는 화물연대 소속 서울우유 안산분회 노조원 5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고씨가 통증 때문에 방금 진통제를 맞고 잠들었다며 기자들에게 접근 자제를 요청했다. 고씨의 부인도 "지금은 정신이 없다"며 취재를 사양했다.

의료진은 "고씨가 2~3도의 화상을 입었고, 생명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경과를 봐 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고씨는 이날 새벽 1시 30분께 경기 안산 시화반월공단 서울우유 정문 앞에서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박아무개씨와 함께 시위를 벌이다 냉동탑차에 불을 붙였다. 불은 고씨의 몸에 옮겨 붙었고, 박씨는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다.

고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박씨는 방화 혐의로 안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노조쪽은 "사측의 계속되는 노조 분쇄 시도에 고씨가 분신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쪽은 분신보다는 방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동료들 잠든 사이 불 붙인 이유

고씨가 자신의 냉동탑차에 불을 질렀을 때 그의 동료들은 1km 떨어진 농성장에서 잠들어 있었다. 동료들이 고씨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새벽 2시께.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고씨와 함께 파업 투쟁중인 장아무개(38)씨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노조가 지난 16일부터 파업을 시작하니까 회사는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서 회유와 공작을 펼쳤다. 결국 파업 16일만에 노조를 탈퇴하는 인원들이 늘어나 파업 성공을 기약하기 힘들었다. 믿었던 사람들이 파업현장을 떠나고 파업성공도 힘든 상황에서 고씨가 힘들었을 거다."

실제로 서울우유 4개 공장 중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의 수는 확연하게 줄었다. 1공장은 45명에서 12명으로, 3공장의 경우 145명이 가입했지만 지금은 70~80명밖에 남지 않았다.

장씨는 "사측이 화물연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우유 지회는 단지 단체협약권과 노조를 인정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화물연대에 가입한 직후 지회 대표급 4명을 무연고지로 전출시켜 버렸다"고 주장했다.

"운송노동자, 하청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

불에 타버린 냉동탑차.
 불에 타버린 냉동탑차.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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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서울우유에서 원유와 유제품을 실어 나르는 운송노동자였다. 고씨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냉동탑차를 소유한 개인사업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계약 구조를 뜯어보면 이들을 개인 사업자라고 할 수만은 없다.

장씨의 경우 2.5톤 냉동탑차를 갖고 있지만 개별적으로 서울우유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 운송노동자들은 지입회사에 '명의'만 소속됐고, 이 지입회사가 서울우유와 계약을 맺는 것이다. 고씨는 지입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이자, 서울우유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셈.

장씨는 "우리는 서울우유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사실상 서울우유의 직접 지시를 받아서 움직인다, 수송 물량, 운송 경로, 근무형태, 급여 등 모든 사항을 서울우유가 결정한다"며 "하지만 서울우유쪽은 '직접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핑계를 들어서 우리와의 단체협약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측이 파업으로 운송에 차질이 생기자 냉동장치가 없는 이삿짐센터차 등을 이용했다"며 "언론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측은 새로운 냉동탑차를 들여왔고, 파업이 끝나면 이들과 계약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노동자들, 분신을 택하는 이유

5일 전인 27일에는 건설노조 소속 정해진(48․영진전업)씨가 분신했다.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모두 요구한 것은 ▲노조인정 ▲단체교섭권 보장이었다.

정씨도 고씨와 마찬가지로 지난 94년부터 한국전력공사의 협력업체인 영진전업, 뉴서울전력, 창전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각 회사들은 2년마다 한전과 재계약을 맺는 하청업체였다.

'재계약의 늪'에 빠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 60시간 근무, 부당한 급여 체계에서 군말없이 참아야만 했다. 이에 정씨를 비롯한 건설노조 노조원들은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권리를 보장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130여일이 넘는 장기파업 동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정씨는 분신을 택했다. 그리고 5일 뒤 고씨도 정씨처럼 몸에 불을 붙였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사측이 화물연대를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화물운송노동자들은 특수고용 형태로,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대변인은 "건설, 택시, 화물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실제로 불법하도급이라는 봉건적인 착취구조에 허덕이고 있다"며 "그들에게 노조는 그들의 유일한 출구인데 사측은 이런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들 입장에서 분신은 '나를 죽여서라도 모두를 구하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우유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고씨의 곁을 지키고 있다.
 서울우유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고씨의 곁을 지키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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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동자,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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