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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다. 푸른 초원과 망망대해를 굽어보듯이.

 

등대를 머리에 이고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계단 가에는 보라색 쑥부쟁이가 피어있다. 산등성이에는 은빛 억새가 가을 바람에 나풀거린다. 가파른 산을 넘어오느라 지친 몸은 쉽게 앞으로 나가지지 않는다. 계단은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데, 하얀 등대가 눈앞에서 조금씩 커진다.

 

소매물도 등대는 1917년 일제강점기 그들의 필요에 의해 무인등대로 건립되었고 1940년 유인등대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이 등대의 등탑은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16m다. 하얀색 원형 등탑은 고풍스러우며 프리즘 렌즈를 사용한 대형 등명기를 이용하고 있어 약 48km 거리까지 불빛을 내보낸다. 남해안을 지나는 선박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해금도. 그러나 비취빛 바다와 어울린 초원 위의 등대가 아름다워 모두 등대섬이라 불렀고 2002년에 등대도로 바뀌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본다. 청정해역 남해에 배가 점점이 떠 있다.

 

 

통통배다. 통통배 생각이 간절하다. 통통배란 등대섬에서 소매물도 선착장까지 관광객을 실어다 주었던 낚싯배를 일컫는 말. 일인당 5천원씩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무척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가파른 동네 길을 올라가면서 소매물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넘으면서 등대섬과 뒤에 있는 바다를 조망한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통통배를 타고 섬주위 기암괴석을 둘러본다. 여행객은 힘이 반만 들어 좋고, 두 번 지날 사람들이 한 번만 지나니 산길도 덜 복잡해 좋았다.

 

그런데 통통배가 없어졌다고 했다. 불법운행이라는 신고가 잇달아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동네 간 아니면 사업 간 이권 때문이라나. 하긴 이권 때문이 아니라도 위험하긴 했다. 작은 통통배로 섬 사이 바위 사이까지 드나들자니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다녀온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절대 먼저 나서서 통통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그러나 힘이 드니까 자연 통통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바로 눈앞에 떠있는 저 배들을 좀 수배해서 타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나는 통통배를 타면 되는데 하면서 겨우 한 마디 던지고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동창회장은 시큰둥, 무반응이다. 그래도 강조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알아서 하면 좋고 하는 식으로 기다린다. 밑바닥에 계산만 은근히 깔아 놓고. 하지만 회장은 내 말뜻을 알아 듣지 못한 건지, 뜻이 없는 건지 여전히 무덤덤.

 

우리 손님 중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문제는 신발. 조금 편한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여성인데 아무리 편한 구두라지만 여기가 어딘데 언감생심 구두로. 여행 때마다 거슬리는 게 구두다. 여행을 떠날 때는 멋 생각하지 말고 운동화를 신어라, 거듭거듭 강조하고 싶어진다.

 

 

 

오늘따라 등대의 흰빛이 더 깨끗하고 눈부시다. 등대에서만 볼 수 있는 바위 절벽을 바라본다. 바위 탑과 기묘한 해안선은 언제봐도 신비롭다. 바위탑 사이로 유람선이 지나간다. 잠시 힘든 것도 잊고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여기까지 와서 이 절경을 못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안됐다. 이대로 돌아서기 아깝지만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그가 회장한테 통통배 얘길 했는지 회장이 부리나케 선착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었는지 그냥 가던 길로 복귀, 무심히 몽돌길을 건넌다. 나도 포기하고 힘들지만 힘차게 걷는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신나게 걷자, 주문을 왼다. 나이가 많다한들 누가 알아주랴. 직업의 세계는 냉엄하니. 그저 씩씩하게 걷는 자만이 살 것이다.

 

 

내가 기운차 보였나 뒤에서 영차영차 따라오던 어린(?) 사람들이 말한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세요?"


돌아보고 씩 웃고는 대답해준다.

"전적이 있지요. 우리나라 높은 산 정상은 거의 다 밟아봤거든요."

 

아아! 감탄을 하는지, 진지하게 고개까지 끄덕이는 그들을 뒤로하고 또 날쌘돌이 걸음걸이로 전진.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오후 1시 30분 배로 들어왔으니, 2시 도착. 4시 배로 또 나가야 한다. 중간에 사진 찍으면서 걸으면 왕복 1시간 40분 정도. 빠듯하다. 허위허위 내려가니 덥고 갈증 나고, 우리 손님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수다 중. 한 사람이 내게 포카리스웨트를 불쑥 내민다. 어이쿠, 반가워라, 내가 제일 그리워하던 것. 이럴 때 제일 고맙다. 나의 손님들.

 

 

다시 통통배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 회장님 오히려 내게 반박.


"그렇게 좋은 게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요. 이 불쌍한 중생(산을 넘지 못한 사람들)들 좀 구제해 주게."

"내가 분명히 말 했는데… 그럼 아까 알아보러 간 거 아니었어요?"

"아니오. 난 거기가 회 먹는 덴 줄 알고 갔었어요. 그리고 난 거기 물 들어오는데만 건너 준다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이건 완전히 커뮤니케이션의 실수다. 그러나 잘한 일이었다. 문제 생기면 서로가 곤란해진다니. 그런데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은 회식으로 맛난 음식을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바닷가에서 회를 드시겠다는데 나는 아는 데가 없다. 덧붙여 아침 점심이 너무 맛이 없어서 모두들 밥을 먹을 수 없었단다. 관광지 음식, 더구나 이곳 음식은 정말 별로다.

 

이러다 몰매 맞을지 모르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니 쓸 수밖에. 음식만 별로가 아니다. 서비스도 그렇다. 그래서 숙소도 매번 통영이나 거제가 아닌 순천에다 잡는다. 필요에 의해서(새벽에 배를 타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통영에서 숙박한 적이 있었다.

 

장마철이었는데 방 하나가 비가 샌다기에, 그럼 내가 그 방을 쓰겠다고 했다. 새는 방을 손님을 줄 수가 없어서. 그런데 방만 새는 게 아니라 복도도 새서 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뭐 새는 것 정도야, 미처 수리를 못 할수도 있지하고 이해했는데 정말 기막힌 일은 아침에 일어났다.

 

모닝콜이 오고 10분 만에 전화가 왔다. 빨리 방을 비워 달라는 프런트의 전화였다. 아니, 금방 모닝콜을 하고 비워달라니 무슨 말이냐고 항의했더니. 지금 밖에서 손님이 기다리신단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아무리 그래도 30분 전에는 절대 못 비워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짐을 들고 나오다 보니 로비 한쪽 구석에서 남녀 한 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 손님은 안 받는다나. 짧은 시간(?) 손님이나 개인 손님만 받고 단체 손님은 받고 싶지 않다나. 그 이후로 새벽에 배를 타야 할 때도 숙소는 무조건 순천이다. 그런고로 난 저녁을 순천에서 드시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손님은 꼭 바닷가에서 회를 먹어야 한단다. 바다가 멋있게 보이는 횟집에서. 마땅한 곳이 없어서 우리가 자주 가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영 마음에 안 든다며 도리질, 결국 순천으로 달렸다.

 

우리가 묵을 모텔과 통화해보니 순천에서 회를 먹으려면 멀리 나가야 한단다. 순간 내 머릿속에 불이 들어왔다. 위기다. 버스 기사님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데다 순천에 도착하면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가까이 된다. 어제 밤새 운전한 기사가 열 받는 건 당연하고 기사 때문이 아니라도 이 대형 버스를 몰고 이 집 저 집,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순례를 다닐 수는 없다.

 

다시 모텔로 전화. 그 주위 먹을만한 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꽃게로 요리하는 집이 있는데 먹을만 하단다. 즉시 회장님과 면담, 담판을 지었다. 다행이다. 차를 모텔 앞에 세우고 그 집으로 갔다. 모두 얼굴이 벌게지도록 먹고 마셨다.

 

회식하는 분위기에서 내 나이를 묻는다. 손님들은 모두 63, 4년생. 자기들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명랑하게 '지는 50대입니다' 했다. 50대 가이드라니, 믿기 어렵다는 눈치. 테마 여행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10년 전 가이드 제의가 들어왔었다.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 좋지 않느냐며. 나는 사람 숫자를 세면서 무슨 여행이 되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때까진 누가 뭐래도 여행은 아무 걸릴 것 없이 가볍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우연히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이 추천을 해준 것이다. 막상 해보니 힘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보람이 있었다. 앞에 나가서 마이크 잡고 잘난 척할 기회도 생기고. 이제 1년이 넘었다. 길을 몰라 손님을 싣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적도 있고, 놀고 싶어 하는 손님을 말리다 경을 친 적도 있지만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궁무진 할 말이 많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3일 다녀왔습니다.


태그:#등대섬, #통통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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