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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영화·연극·뮤지컬 등 다른 장르를 탄생시킨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어요.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생겨버린 우리의 학습효과가 있으니, ‘그저 적당히’ 원작을 재해석 해보려 한 결과는 우리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꿔 놓는다는 것이죠.

 

또 원작의 힘만 과도히 믿은 여러 실망스러운 작품을 접하며 단단해진 경험칙도 있네요.

 

해당 장르가 온전히 가져야 할 독특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무대와 원작의 싱크로율과는 별개로) 무대와 관객의 싱크로율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고요? 올 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 <싱글즈>가 상당히 전략적이라는 말을 하려고요. 저의 기대를 실망으로 환원되지 않게, 또한 관객들이 무대 속 그들에게 동감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에요.

 

네 남녀가 있어요.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회사에서도 원치 않았던 레스토랑 매니저로 가게 된 나난. 자유연애주의자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창업을 준비하는 동미. 능력도 돈도 없지만 순정파인 정준과, 나난에게 작업을 시도하는 멋진 남자 수헌까지.

 

그래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2003년작 영화 <싱글즈>와 동일합니다. 앞서 설명드린 주요 캐릭터 4명도 그대로지요. 그러니 새삼스레 줄거리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죠? 그래도 조금 말해볼까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존심과 밥 사이에서, 사랑과 일 사이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 싱글들의 이야기라고요. 원작인 94년작 일본드라마 <29세의 크리스마스>가 10년을 넘겨 한국에서 영화·뮤지컬로 각각 제작될 만큼, 국적을 초월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요.

 

 

원작을 ‘부실하게 재해석’하는 일은 피했네요. 이제 관건은 원작을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속성에 얼마나 잘 녹였느냐의 문제. 뮤지컬 <싱글즈>는 거대한 스케일로 객석을 압도하지는 않아요. 대신 깜찍한 무대와 예쁜 소품들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죠. 종종 분할된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잇는 감각적인 연출도 눈길을 끌고요.

 

무엇보다, 이 모두를 유연하게 묶어주는 <싱글즈>의 아기자기한 뮤지컬 넘버들은 꽤 만족스럽답니다. 직장을 그만둔 채 사업계획서를 들고 뛰어다니는 동미를 묘사하는 ‘사회가 만만해 보여’와 정준이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담배’가 듣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킨다면, 수헌이 나난에게 구애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자기’와 후반부 모두가 합창하는 ‘우리’같은 달콤한 노래들의 힘도 무시하지 못해요.

 

결국, 공연을 보면서 저는 그들에게 동화됐어요. 무대 속 그들도 나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뮤지컬 <싱글즈>는 또한 다정히 제 등을 두드려줬어요. “두려워… 서른 되면 난 어떡하나”(‘스물 아홉’)라며 떨던 나난은, 마지막에 “이제 서른, 난 시작이야… 난 무섭지 않아, 지금 난 행복해”(‘이제 서른’)라고 외치죠.

 

객석을 향해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어요. 꿈을 잃는 순간 늙는 것이라고, 꿈이 있다면 항상 다시 시작이라고. 뮤지컬 <싱글즈>가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제게는, 너무나 따스한 공연이었답니다.

덧붙이는 글 | 뮤지컬 <싱글즈>는 12월 31일까지 KT&G 상상아트홀에서 공연합니다.
문의ㆍ예매 : 02-501-7888

이 기사는 공연문화전문잡지 <씬플레이빌>에 실린 기사를 수정ㆍ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싱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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