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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동춘 고택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살았던 집이다. 고택 앞엔 모두 다섯 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어제(21일) 오전, 등산가는 길에 잠시 동춘 고택에 들렀더니, 누군가 감을 따고 있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이 간짓대로 감을 따고 있다. 아마도 일요일을 맞아 이 집에 놀러 온 친척이라도 되는가 보다. 처음엔 맨땅에 그대로 서서 딴다. 이윽고 낮은 곳에 열린 감은 다 따자, 사다리 위로 올라가서 따기 시작한다. 가을날의 감 따는 풍경은 참 평화롭다.

 

어렸을 적, 우리 집 텃밭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가을이면 나도 길고 긴 간짓대를 들고 저렇게 감을 땄었다. 간짓대 끝에다 감나무 가지를 집어넣고 살짝 돌리면 가지가 툭, 부러진다. 그 와중에서 너무 익은 홍시는 가지에 붙어 있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만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아주 파싹하게 깨져버린 홍시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고택의 문을 열고 한 아이가 나타나서 성큼성큼 걸어와서 감따기를 거든다. 저 아이가 아버지의 일을 도울 수 있을까.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 하지 않던가.

 

감을 따던 사람이 갑자기 감따기를 멈추더니, 간짓대로 풀밭을 요리조리 헤친다. 아마도 감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찾는 모양이다, 그래도 찾지 못했는지 마침내 사다리 아래로 내려와 땅을 살핀다. 잠시 후, 찾은 감을 아이에게 주고 그는 다시 사다리로 올라간다.

 

아, 이 정다운 '부자유친'이여. 어느덧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밀려온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peace!"를 외치는 어느 개그맨이 떠오른다. 그가 만일 이 광경을 보았다면 "피스 따따블"을 외쳤으리라.

 

아이도 이 '부자유친'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예 풀밭에 주저앉더니 본격적으로 감따기에 동참한다. 아이야, 네 참여가 세상을 크게 바꾸진 못할 것이다만, 그래도 보기에 나쁘진 않구나.
 
아버지는 간짓대로 감을 따고 아이는 그 감을 손으로 받아서 차곡차곡 깡통에다 집어넣는다. 깡통에 든 감의 무게만큼 세계 평화가 증대 되기를…. 이제 낮은 곳에 있는 감은 얼추 다 딴 것 같다. 감따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목을 요리조리 돌리는 걸 보니 고개가 아픈가 보다.
 
감을 따던 아이 아버지가 감자기 소리를 지른다. "가서 네네 엄마 오라 해라!" 엄마를 데리러 간 아이가 대문 안으로 사라진다.
 
 
이상하다. 평화스럽기 짝이 없던 '부자유친'의 시대를 이렇게 빨리 종결지어야 할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혹시 감따기 임무를 교대하려는 것일까. 아무튼 이제 바야흐로 '부자유친'의 시대가 거하고, '부부유별'의 시대'가 전개되려는가 보다.

 

과연 이 감따기가 평화스럽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살아보면 옛 어른들의 말씀 하나도 그릇된 것 없더라만. 부디 '부부유별'이 '부부유친'으로 연착륙하기를 빌며 가려던 길을 다시 찾아 나선다.


태그:#동춘 고택, #감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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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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