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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산성으로 가는 길을 걸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집을 나서 산을 넘고, 산과 산 사이로 난 길을 걷고, 몇 개의 마을을 지나야 한다.  가는데 이십 릿길, 돌아오는데 또 이십 릿길. 그래도 고단하다거나 멀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감나무에 걸린 감도 쳐다보고, 멍석 위에 널어놓은 나락도 만져보고, 신자가 없어 폐가처럼 버려진 교회에 들러 녹슨 종탑도 올려다보며 걸어간다. 쌩쌩 흙바람 일으키며 옆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흘겨보면서.   
 
그렇게 두 시간을 걸으면 눈앞에 피골마을이 나타난다. 백제군과 신라군이 "너 죽고 나 살자"라면서 치열하게 싸워 흘린 피가 내를 이루었다 하여 피골이라 불렀던 마을이다. 지금은 한자로 피 직(稷)자를 음차해서 직동이라 부른다.
 
마을은 체험 마을인지 뭔지를 만든다고 공사가 한창이다. 직동마을은 성씨에 따라 다시 4개 마을로 세분할 수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새마을 회관을 중심으로 북쪽 끝에 있는 양지말과, 성씨 별로  북서쪽에 변뜸(卞村), 남쪽에 있는 강뜸(姜村), 남동쪽에 있는 오뜸(吳村)으로 나눌 수 있다.
 
노고산성으로 가는 길은 오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갈 수도 있고, 양지말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오뜸 옆으로 난 길이 내가 애용하는 길이다.
 
 
 
20여 분 가량, 산길을 허위허위 올라가면 해발 250m, 산꼭대기에 있는 노고산성에 닿는다. 남문지를 통해 성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성 중앙에 있는 할미바위가 반색하며 객을 맞는다.
 
"뭐, 볼 거 있다고 또 왔어 그랴? "
"할매 보고자퍼 왔구먼이라우. "
"흰소리 잘 하는 건 여전하시구랴. "
"그러는 할매 입담도 전혀 녹슬지 않았으셨구만이라.  "
 
노고산성은 산 정상을 따라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둘레는 300m가량이었다고 하는데 성벽은 거의 허물어졌다. 남문지 근방의 남벽과 동벽에 약간의 성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쌓은 방식도 아주 조잡하다.
 
그래도 내가 가끔 이 성을 찾는 것은 이곳에 올라오면 전망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대청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계족산성이 보이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옥천- 문의 간 도로가 빤히 바라다 보인다. 역사의 향기도 맡고 눈요기도 할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산성 답사에서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
 
올여름과 가을에 유난히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성안엔 잡풀이 자욱하게 우거져 있다. 그 사이로 구절초, 쑥부쟁이 등이 "여기, 나도 있수"하면서 고개를 내민다. 전설에 따르면 쑥부쟁이는 쑥을 캐러 다니던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어서 피어난 꽃이다. 무리를 이루어 피는 연한 보라색 꽃이 아름답다.
 
잔대는 도라지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꽃의 모양이나 잎, 줄기, 뿌리까지 도라지를 닮았다. 잔대는 가장 오래 사는 식물 가운데 하나다. 생장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싹을 내지 않고 잠을 자기도 하고 뇌두가 생기기도 한다. 뇌두 수를 세어 보면 대략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생태만 놓고 보면 완전 '짝퉁 산삼'이다.
 
흑색의 종자를 듬뿍 단 산초나무도 보인다. 추어탕에 넣어 먹는 제피나무 열매와 너무 많이 닮아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나무다. 서로 마주나 있는 제피나무 가시와 달리 산초나무 가시는 서로 어긋나게 난다.
 
 옛 성에 고풍스런 멋을 더해주는 바위솔
 
 
할미바위 근처에서 반가운 식물을 만난다. 산의 바위 위나 오래된 기왓장 위, 돌담 또는 바위 등 햇빛이 잘 들고 건조한 곳에 자라는 바위솔을 본 것이다. 바위솔은 환경에 아주 민감하다. 사람의 손때를 타면 금세 사라져버린다.
 
기왓장에 자라는 바위솔 같은 경우는 기와를 걷어내면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8년쯤 지나야 다시 생겨난다. 9월에 백색의 꽃이 핀다.  꽃받침 잎은 5개며, 꽃잎도 5개, 열매도 한 주머니에 5개씩 들어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죽어 버린다.
 
사람들의 손때를 덜 타서 바위솔이 자꾸 번지면 마치 바위가 꽃 핀 것처럼 얼마나 보기 좋을까. 갑자기 출현한 작은 식물의 존재가 옛 성에 멋을 더해주는 것 같아 흐뭇하다.
 
할미바위 위로 올라가서 대청호를 내려다본다. 옛날엔 저 앞으로  금강의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노고산성은 그 물길을 타고 적이 오는 것을 감시하던 성이었으며, 옥천이나 문의 쪽에서 육로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던 성이었다.
 
건너편 풍경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호수가 생김으로써 많은 것이 달라졌다. 논밭이 물속으로 사라짐으로써, 이곳에서 대대로 땅을 붙이며 살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변화 혹은 발전이라 부르는 현상들의 공통점은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등 뒤에 남긴 상처를 결코 뒤돌아 보는 법이 없다. 반성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흉포한 행위인가.
 
나는 옛 산성이 좋다. 산성이 안은 폐허는 바라보는 사람을 적당히 쓸쓸하게 한다. 난 그런 정서적 환기가 좋다. 수북히 자란 풀섶을 헤치며 산길을 내려간다. 겨울 흰 눈이 쌓였을 때, 이곳에 다시 오리라.

태그:#직동 , #노고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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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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