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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개폐 시도는 무산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이시우씨가 아내 김은옥씨와 함께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팻말을 들고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이시우씨가 아내 김은옥씨와 함께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팻말을 들고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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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법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수도 없이 지적한 것이라 새삼 다시 언급하려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 살아 기승을 부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언론의 뛰어난 변신이 놀라워 한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조봉암의 선전에 놀라서 196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의 하나가 1958년 국가보안법 3차 개정(폐지 제정)이었다. 3차 개정에서는 적을 이롭게 할 '국가 기밀 정보 탐지·누설죄'와 더불어 심지어 관공서·정당·단체 또는 개인에 관한 '정보수집죄'까지도 처벌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허위 사실 유포죄’ 또는 '인심 혹란죄'를 처벌토록 규정하였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물론 '적을 이롭게 한다'거나 '허위사실'이라는 단서 조항이 들어갔지만 실제 적용과정에서 얼마든지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언론을 옥죌 수 있는 가능성은 생긴 것이다.

<동아> <조선>도 반대했던 국보법 개정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10월 1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10월 1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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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정부기관지나 다를 바 없던 <서울신문>을 제외하고 모든 신문이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했고, 지금도 그 역사를 연면히 '자랑'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역시 동참했으나 안타깝게도 개정 저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예상대로 언론은 그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은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까지도 옥죄었다. 술 마시다 못된 친구에게 "김일성보다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는 법이었으니 그게 민주사회에 가당키나 한 법이겠는가.

이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 마땅할 정도로 폐해가 심했지만 언론에 가해진 국가보안법 통제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을 통제하고 민주사회를 좀 먹게 하는 패악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근간이 된 1980년 이전 국가보안법과 1961년 제정 반공법은 2대 안보 형사법이라 불리던 것으로 언론 통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진보·혁신 언론들만이 통제 대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보수적인 언론들도 정부 비판적인 경우에는 피해갈 수 없었다.

1962년 '삼양동 천막촌 노인 사망'이라는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빌미삼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남시욱을 구속 입건한 사건, 같은해 7월 28일에는 <동아일보> 사설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를 빌미로 집필자 황산덕을 구속한 사건, 11월 29일에는 <한국일보> 기사 '가칭 사회노동당주비설'을 빌미로 사장 장기영 등 4명을 구속한 사건 등이 그 초기의 적절한 예이다.

그 이후에도 MBC 황용주 사장 구속, <조선일보> 이영희 기자 구속, 대전방송국 편집부장 김정욱의 '송아지' 사건 등 계속 언론을 통제하는 데 이 악법들이 동원되었다. 어디 이것뿐이었겠는가? 그 이후로도 걸핏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언론을 옥죄었다.

침묵의 피해자, 적극적 수호자로

따라서 안보 악법의 최대 피해자였던 언론은 당연히 국가보안법 폐지 내지 최소한 개정을 주장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피해자이면서도 침묵했다. 1980년대까지는 언론사가 워낙 폭압적인 정치권력에 약할 수밖에 없어 그랬을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그 사정은 달라진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던 언론들의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은 언론, 정파적 선택을 하기 시작한 언론들은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도 아니오, 오히려 수호자로 변신한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국가보안법은 비록 세인의 관심으로 부상하지는 않았지만 개혁 쟁점이며,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2004년 가을만한 호기가 없었다. 국가보안법 사수를 국체를 보존하는 길이라 여기는 수구세력도 있기는 했지만 한나라당도 개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히 폐지 운동이 일어나고, 개혁의 관점에서 세인의 관심,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변화요, 발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호기를 날려보낸 것이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던 언론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보수언론의 단골 메뉴 '광화문 인공기 깃발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50여명의 지식인들이 16일 오후 4시 정보통신부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지식인 공동행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50여명의 지식인들이 16일 오후 4시 정보통신부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지식인 공동행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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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이니 '전위대'니 '홍위병'이니 하면서 사회분위기를 보수적으로 몰아가고자 했던 보도행태는 수구 언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보수 언론들은 구체적인 법리 논쟁에서도 사실에 눈감고자 했다.

간첩행위를 했다면 국가보안법 폐지 후 보완할 형법이 아닌 현재 형법으로도 처벌 가능하다는 주장들을 도외시 하거나 '주장'이라고 폄하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법적용 자체가 안 돼 잠입·탈출이나 회합·통신 등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은 주장이 아니라 '지적'이라고 격상시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 당사자들을 차별화하였다.

이는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불공정한 언론행위였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광화문 인공기 깃발론'을 다시 언급했던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서는 말문이 막힌다. 광화문에서 폭동을 일으키지도, 일으킬 생각도 없으면서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사람을 정상이라고 볼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악의없이 비정상이거나 우연한 실수를 저질렀던 그런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처벌되거나 곤욕을 치렀던 것이 우리의 경험이고 그래서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는 치욕스런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그것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중대 사유라는 점에는 눈을 감아 버렸다.

고문에 빼앗겨버린 삶이 보이지 않는가

2004년 12월에는 드디어 참았던 희생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자신의 억울함보다 동료들의 억울한 연루를 막기 위해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문을 참아낸 현대자동차 노조의 배만수씨. '국가전복세력'이라는, 생각 없는 아니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였던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희생물이 되어서 정당한 주장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한국통신 노조. 항문조사·잠 안 재우기·성기고문 등을 당하면서 받은 수사에도 주요구성혐의가 무죄로 밝혀졌으나 유인물 한 장에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적용되어 해직되어 버렸던 박정훈 전 교사.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던 수구 보수언론들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정파적이 되어 버린 신문들에게서 개인의 처참한 피해는 중요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해 12월 후반기에 들어서 한나라당이 개정안을 내놓자 <동아>와 <조선>은 동시에 그것을 환영하는 사설을 내놓았으니 이런 보수 언론들의 행태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정파적'.

그렇다. 지금 남북정상이 두 번째 만나고, 종전선언이 논의되고 있으며, 북미수교가 제안되고, 정상회담에서 수구세력이 빌미로 삼았던 노동당 규약마저 개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 시점, 한 때 피해자였던 언론들은 악법에 의해 다시는 우리가 겪었던 암흑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2004년 처럼 수구보수세력의 움직임만을 주시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개별 정파 이익에 앞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보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김서중 기자는 민교협 소속으로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국가보안법,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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