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가한 어느 오후, 친구 영재의 하숙집을 찾았습니다. 러시아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우리들을 위해 공황에서부터 마중나와 이것저것 세세한 것들을 자기 일처럼 챙기며 도와준 마음 착한 친구랍니다. 완전 비호감 사감 아줌마 앞에서 '친구들 잘 좀 봐달라'며 생글생글 거리며 서툰 러시아어를 구사하던 모습에 살짝 감동까지 했더랬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피아노를 조금 잘 친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는데 워낙 털털한 성격의 친구인지라 이곳에서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어학연수로 온 영재는 학교에 부탁해서, 배정받은 기숙사 대신 일반가정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실리섬의 끝자락 핀란드만이 내다보이는 '카라블리스트라이첼리'에
있는 아파트에서요. 주소는 원체 간단해서 지도에서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물론 헤매지 않을 수 가 없었죠.

러시아에 있는 서민 아파트입니다
 러시아에 있는 서민 아파트입니다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들은 화려한 도심의 고건물들과 달리 개성도 없고 굉장히 낙후했습니다. 집주인은 가난한 '연금생활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인 경우가 많아서 유학생들은
홈스테이 형식의 하숙을 저렴한 가격(20~30만원 내외)에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말벗이 필요하신 할머님, 할아버님들 덕에 생활 러시아 어도 빨리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폐쇄적인 사회분위기 탓에 철창과 철대문, 건조한 인테리어
(집 내부는 나름 깨끗합니다)뿐이어서 실제로 보면 '오래된 시멘트 벽돌더미'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재건축 대상 서민아파트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네 장독대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훨씬 아름다운 것 같아요.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철문 앞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통화버튼을 누른 후 집주인에게 열어달라고
부탁해야만 복도로 들어가 비로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습니다.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냉동창고와 흡사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입니다. 오물 냄새와 어지러운 낙서를 마주한 채 컴컴한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자니 5층까지밖에 안 올라가는데 오금이 저려 아주 혼났습니다.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생각보다 전망은 참 좋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도 깨끗한 편이고요.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털,털. 영재의 성격은 털털 그 자체입니다. 제 방보다는 100배쯤 낫네요.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영재의 머리맡에 생긴 저 누런 자국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동안 우리는 이에 대해  꽤나 진지한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한 번 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포를 체험해야 했습니다.

ⓒ 이재흥

관련사진보기


햇살이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러시아, #서민아파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테르부르크, #뻬쩨르부르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