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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아이들한테 어떤 구실을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 차분하게 들려주는 <케스-매와 소년>이라는 소설책입니다. 책이름만 보고는 교육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지 매 이야기를 다룬 책인지 짐작을 하기 어렵겠지만, 한번 손에 쥐면 마지막 쪽을 펼칠 때까지 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도 느낌을 적기 참 힘들군요. 두 차례 읽은 뒤 <케스-매와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 빌리가 학교를 다녔을 나이에 저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느낌글을 올려 봅니다. (글쓴이 말)

 

<1> ‘학교’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1


 한 때는 학교에서 저를 가르쳤던 교사 이름을 퍽 떠올리곤 했지만, 이제는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떠올릴 까닭이 없는지 모릅니다. 국민학교 때 만난 교사 가운데 세 사람쯤, 중학교 때 만난 한 사람쯤, 고등학교 때 만난 네 사람쯤이 그래도 교사 노릇을 하지 않았냐 싶기는 하지만, 다른 분들은 글쎄요, 그분들한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한 가지, 그분들이 저한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학교에서 그분들이 저한테 가르친 것 가운데 아무것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가르쳐 준 셈이에요.


.. 침묵이 짙어졌다. 소년들은 목젖을 삼키기 시작했고 꼼짝않고 있는 머리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선생들은 서로 마주 쳐다보고는 곁눈으로 강단을 바라보고 했다.


 그때 한 소년이 기침을 하였다.

 “누가 그랬어?”

 모두들 주위를 돌아보았다.

 “누가 그랬느냐 말야?”

 선생들이 가까이 다가들었다. 폭동진압대처럼 경계태세를 갖추고.

 “크로슬리 선생! 그 가까운 데예요! 못 보셨소?”

 크로슬리는 낯을 붉히고 공포에 찬 아이들을 밀치며 소년들 사이로 달려들어갔다.

 “거기요, 크로슬리 선생! 거기서 났소! 그 주위요!”

 크로슬리는 한 소년의 팔을 잡고 넓은 데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아니에요, 선생님!”
 “아니긴 뭐가 아냐.”
 “아니에요, 선생님. 정말예요!”
 “우기지 마, 내가 봤어.”

 그라이스는 콧구멍으로 씩씩 숨을 내뿜으며 독경대 너머로 턱을 내밀었다.

 “맥도월! 바로 너였구나! 내 방으로 가!” ..  <48쪽>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 무시무시한 학교를 그만두지 못한 제 자신을 얼마나 나무라고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끔찍한 학교를 다니면서 참을성 하나는 끈덕지게 길렀는지 모릅니다. 아! 저는 이 나라 제도권 교육에 고맙다는 말씀을 올려야 할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여태껏 한 가지 일을 다부지게 붙잡고 언제까지나 힘내어 밀고 나가는 바탕을 길러 주었으니까요. 그 참을성 하나로!

 

 어릴 적에는 하나도 몰랐던 일들을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이오덕 교육일기>나 <전은이 선생의 교단 30년 일기> 같은 책을 보면서 하나둘 깨달았습니다. 국민학교 때 골목길 청소를 나가고, 열 사람씩 모여서 새마을노래나 건전가요를 부르면서 하나둘 하나둘 구령도 붙이며(높은학년 언니가) 학교까지 걸어가던 일을 왜 시켰는지, 골마루에 왁스를 맨들맨들해지다 못해 사람 얼굴까지 비칠 때까지 닦으라고 시키던 일이나 환경미화를 왜 했는지 말입니다.

 

 방위성금은 얼마나 자주 내야 했으며, 평화의댐 짓는 성금은 왜 그리도 재촉이 모질었는지, 폐품 모으기는 또 왜 그다지도 반 경쟁까지 시키며 들들 볶았는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한 사람 앞에 가지고 오라는 부피(빈병 둘, 신문지 한 뭉치(한 달치쯤))를 못 채운 아이들이 매를 맞고 운동장을 한 시간 동안 돌며 벌을 받을 때에도 ‘빈병이 있으려면 집에서 사이다를 사마시든 술을 사마시든 해야’ 하며, ‘헌 신문지가 있으면 집에서 신문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도 못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폐품 모으기를 했는가 모르겠는데, 국민학교 때 그 무거운 빈병과 신문뭉치를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낑낑 들고 학교까지 가지고 갔던 일, 달마다 폐품 모으기를 할 때면 한두 시간쯤 운동장에 모든 학년이 다 모여서 얼마를 모았는가 세고 순위를 매겨서 발표하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 소년들은 창문 앞에 열을 짓고 카펫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쳤다. 그라이스는 마치 시원찮은 상품들 중에서 물건을 골라야만 하는 사람처럼 번번이 고개를 저으며 하나씩 그들을 살펴보았다.


 “늘 보는 얼굴이야. 어째서 항상 그 얼굴이지?”

 심부름 온 학생이 한 발 나서서 한 손을 들었다.

 “저, 선생님.”
 “끼어들지 마, 내가 말하고 있을 때.”

 그는 물러서서 열의 빈 자리를 채웠다.

 “난 너희들이 지긋지긋하다. 너희들이 날 죽일 거야. 하루도 내가 처리해야 할 녀석들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어. 하루도 없었다구, 하루도. 내가 이 학교에 온 뒤로 내내. 그게 얼마나 됐는지 알아? … 십 년이야. 그런데 학교는 처음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어. 난 이해할 수가 없어. 난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구.”

 소년들도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그들의 얼굴에서 대답을 찾으려는 듯 살피고 있을 때 그들은 시선을 떨구었다 ..  <57쪽>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지난날 저를 가르쳤던 교사 가운데 퍽 많은 이들이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립’니다. 학교문을 갓 열었던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십대 중반인 교사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떠들거나 말썽을 일으킨다는 아이들한테 손찌검, 매질 한 번 못하고 큰소리도 한 번 못 친 교사도 한둘 있었지만, 나머지 교사 가운데 4/5쯤은 당구채, 각목, 야구방망이, 쇠자 따위를 출석부와 함께 꼬박꼬박 챙기며 다녔습니다.

 

 더러 출석부도 안 들고 맨몸으로 다니는 교사도 있었는데, 이런 교사한테 수업을 받을 때면 주번이나 반장ㆍ부반장이 미리 출석부를 챙겨서 교탁에 얹어 놓아야 했고,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주번이나 반장ㆍ부반장이 곧바로 교탁으로 불려나와 ‘맨몸으로 온 교사’한테 따귀 한두 대 얻어맞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맨몸 교사’는 언제나 ‘몽둥이 현지조달’ 교사였고, 교실에 밀대자루가 있으면 밀대자루로, 밀대자루를 숨겨 놓았으면 빗자루로, 빗자루마저 숨겨 놓았으면 칠판지우개로, 출석부로, 또 우리들이 쓰던 필통 가운데 쇠로 된 것을 빼앗아서 휘둘렀습니다.

 

이런 교사 가운데 하나로 중학교 때 기술 선생이 떠오르는군요. 어느 날인가 기분이 아주 나빴는지, 한 아이를 불러내어 권투를 하듯 엄청나게 주먹세례를 퍼부어 그 아이가 코피를 흘리며 교단 구석에 몰려서 벌벌 떨고 있는 데에도 때리기를 멈추지 않아 교실에 온통 소름이 끼치던 일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젊은 선생이라면 ‘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더욱 젊게 껴안고 부대끼면서 가르쳐야 했을 터인데, ‘젊다는 객기와 넘치는 힘’으로 우리들을 짓누르고 모질게 때리기 일쑤였습니다. 제 초중고등학교 때 떠오르는 일 하나를 대라면, 아니 가장 크게 떠오르는 일을 대라면 이 몽둥이질 천국, 하루도 매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억눌려 있는 세상, 이것을 들겠습니다.

 

 어쩌면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그러니까 저를 비롯한 우리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겠지요. <케스―매와 소년>에도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학교 교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교사들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미친개-불독-또라이-개뼉다귀’였습니다. 어쩌면 학교 교사들도 우리들을 ‘미친놈-또라이-개뼉다귀’ 따위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어요.

 


<2> ‘학교’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2


 지금 생각해도 참 낯부끄럽지만, 고등학교 다니던 때에 시를 쓴다고 깝죽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쓰기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뚝 끊었지만.

 

 아마 고2인가 고3 때로 떠올립니다. 저는 부지런히 습작을 했고, 언제나 습작 공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국어 시간에도 수학 시간에도 음악 시간과 과학 시간에도. 체육 시간만 빼고. 어느 날 국어 시간에 한참 문제풀이에 골똘하고 있던 때입니다. 교실을 죽 돌아다니던 국어 선생이 제 옆에서 멈추더니 제 책상에 올려진 여러 가지 가운데 이 습작 공책을 보고는 냉큼 집습니다.

 

 저는 다른 동무들과는 좀 다르게 참고서와 문제모음 빼고도 틈틈이 읽던 소설이나 다른 문학책, 역사책들을 늘 책상에 함께 올려놓곤 했어요. 그래서 이 국어 선생도 ‘이놈이 또 뭘 올려놓고 있나’ 하고 구경해 보다가 이 낯선 공책을 보았지 싶습니다. 남들한테 보여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습작 공책. 이 공책 두 권을 국어 선생은 한참 보다가 내려놓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부지런히 써 봐’라고 한마디 했는지 아무 말도 안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 이 습작 공책을 본 뒤로 교실에서 우리들한테 수업하는 모습이 좀 달라졌다는 것.


.. 그는 파아딩 선생을 내려다보았다. 빌리의 눈은 빛났고, 눈물과 때로 범벅이 된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넌 아주 흥미롭게 얘길 했어.”
 “사실 흥미로워요. 그렇지만 제일 멋진 건 처음으로 줄 없이 날렸을 때예요. 그때 거기 계셨으면 좋았을 거예요. 저는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파아딩 선생은 학생들을 향했다. 의자는 움직이지 않고 몸만 돌려서.

 “너희들 그 얘길 듣고 싶니?”

 합창 ―“네.” ..  <73쪽>


 고등학교 다니던 때에 세계사 선생과 정치외교 선생이 떠오릅니다. 이 두 사람도 이십대 중후반에 처음으로 교사일을 했을 텐데, 매를 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동무들은 두 사람 수업 때면 늘 교실이 떠나가라 떠들어댔고, 옆 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잘 이끈 교사였을까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교사였을까요. 이 아이들 때에는 어쩔 수 없다고, 입시지옥에 짓눌린 아이들로서는 떠드는 모습이 자유로움을 터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분들 스스로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떠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하는데, 두 사람은 교과서를 거의 안 썼습니다. 세계사 선생은 ‘민맥’ 출판사에서 펴낸 <세계사 수첩> 상ㆍ하권이 우리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였습니다. 정치외교 선생은 우리한테 ‘신문기사 스크랩’ 공책을 만들게 해서, 이것으로 점수를 매겼고 수업을 이끌었고 더러 발표도 시켰습니다.

 

 대학입학시험에 세계사나 정치외교 문제가 몇 가지 안 나오니까 수업이 자칫 흐트러질 수 있고, 우리들은 거의 엉망진창이었는데, 이 두 사람은 아예 그런 틀을 벗어나서 ‘우리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세계 역사-우리 정치와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우리 스스로 깨닫고 느끼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런 교사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끔찍한 체벌 천국에서 열두 해를 가까스로 버티었는지 모르겠군요.


 “쥬드?”
 “뭐야?”
 “늦겠어.”
 “어유, 닥쳐!”
 “시계가 빠른 거 아니잖아.”
 “닥치라고 했어.”


 그는 담요 속에서 주먹을 휘둘러 빌리의 아랫배를 쳤다.

 “하지 마! 아파!”
 “그럼 닥치고 있어.”
 “엄마한테 이를 테야.”

 쥬드는 또 한 번 휘둘렀다.  <4쪽>


 <케스―매와 소년>에서 주인공인 꼬마 ‘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선생을 비롯해서 반 동무들까지도 빌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괴롭히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빌리와 동무들을 가르치던 파아딩이라는 사람이 ‘빌리’한테 말하기 발표를 한 번 시킵니다. 그 뒤 빌리가 쓴 글을 보며 무엇인가를 느꼈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외롭고 힘든 아이 하나인 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가서려고 합니다. 빌리도 학교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 나이는 많아도 동무로 여길 만한 사람 하나를 알게 된 셈이라서 마음이 놓이게 되었고, 자기 혼자서 즐기는 ‘매 키우기’를 파아딩 선생한테 한 번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빤 집에 없어요.”
 “그럼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겠구나.”
 “그런 식으로 없는 게 아녜요. 집을 나갔다구요.”
 “아, 알겠다 … 그렇다면 너의 어머니가 서명을 하셔야겠구나.”
 “일하러 갔어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서명을 하실 수 있겠지, 그렇지?”
 “알아요. 그런데 저녁때까진 안 돌아와요. 그리구 내일이 일요일이구요.”
 “바쁠 거 없지, 안 그래?”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난 오늘 보고 싶어요.”
 “기다릴 수밖에 없겠는 걸.”
 “보세요, 그냥 가서 있는지 보게만 해 주세요. 저기 책상에 앉아서 읽을게요.”
 “그럴 순 없어. 넌 회원이 아니야.”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규칙 위반이야.”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럼 월요일에 이 종이를 갖고 올게요.”
 “안 돼! 집에 가서 신청서에 서명을 받아 와.”


 그녀는 몸을 돌려 조그만 유리 칸막이 방으로 들어갔다.

 “저.”

 빌리는 손짓으로 여자를 불러내었다.

 “뭐지?”
 “책방이 어디 있어요?”  <32∼33쪽>


 빌리는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또 학교에서마저도 ‘한 사람 몫’ 사람 대접을 거의 못 받습니다. 집에서는 배다른 형한테 시달리고 어머니는 아예 빌리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매를 키울 때 도움을 받으려고 책을 빌려 보려고 하지만 마을 도서관에서(책 줄거리를 보면 도서관뿐 아니라 마을 어디에서고 반겨 주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도 고달프기만 할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빌리라고 하는 아이 하나뿐일까요? 빌리이건 다른 아이이건, 힘겹고 고달프게 살아가지 않는 아이가 우리 둘레에는 얼마나 있는가요? 어디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본다면.

 

 이웃 아이까지 나아갈 것 없이 우리 자신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어떠했는가 돌이켜본다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아늑한 분위기에서, 배움과 나눔과 얻음이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가를 느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가요?

 


<3> 무엇을 하며 살면 좋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을 했던 독일말 교사가 문득 떠오릅니다. 이분도 그때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지 싶어요. 제 나이가 올해 서른둘인데, 나이 서른인 사람치고 세상을 밝게 보거나 훤히 꿰뚫는 사람 드물다고 느낍니다. 또한 저마다 다 다른 아이들, 한 반에 예순쯤 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부대끼면서 껴안을 만한 그릇을 갖춘 교사란 드물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만 모든 것을 쏟아붓고 바쳐도 이렇게 부대끼기란 힘들 테지요.

 

 독일말 교사는 저한테 ‘생각을 늘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생각한다고, 밥먹을 때에도 수업을 들을 때에도 걸어다닐 때에도 생각을 한다’고 대꾸했습니다. 가만 생각하면, 독일말 교사는 ‘생각하는 중요성’은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나 ‘무엇을 생각해야 좋은지’를 말하지 못했고,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 또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만난 교사들 거의 모두는 ‘교과서에 나온 지식을 교수법에 맞게 진도를 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한 반 예순에 가까운 아이들이 나중에 저마다 어떻게 자기 삶을 다 다르게 꾸려 나가야 좋을지’를 살피거나 헤아리면서 가르칠 수는 없었구나 싶어요. 주어진 지식, 진도에 맞추고 시험문제를 잘 맞힐 수 있도록 머리속에 쑤셔넣는 일은 하는 교사인지 몰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 사람마다 다 다른 모습을 가꾸고 돌보는 스승, 참 선생 노릇은 하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고 할까요.


 “그리구 오늘 아침 영어시간에요, 제가 안 듣고 있었을 때요.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에요. 손 땜에요. 아파 죽을 지경이었어요! 손이 아려 죽겠는데 정신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그러긴 어렵겠지.”

 “그래두 그 때문에 또 야단을 맞았잖아요. 그죠?”
 “넌 그걸 보상했지. 그렇지?”
 “알아요. 그래도 늘 그렇단 말예요.”
 “뭐가?”
 “선생님들요. 선생님들은 자기들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진 않겠지.”
 “선생님들은 언제나 자기들은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때는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오늘 아침처럼요. 또 정말 지루할 때 안 듣는다고 매를 맞을 때요. 제 말은요, 재미가 없을 때에는 딴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요. 안 그렇겠어요, 선생님?”  <89쪽>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숫자는 40만이 넘습니다. 이 40만이 넘는 교사들한테 배우는 아이들 숫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교사 40만이라고 할 때, 생각이나 마음이나 몸가짐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겝니다. 그래서 40만 교사마다 자기가 맡은 과목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방법과 차례와 말씨는 모두 다릅니다. 어느 교사는 말씨가 굵직하고 어느 교사는 말씨가 가느다랗고, 어느 교사는 말씨가 상냥하고 어느 교사는 말씨가 투박할 테지요. 아이들은 어떠할까요? 수백만에 이르는 ‘다 다른’ 아이들은 어떠할까요?

 

 다 다른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다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대학교 입학시험이 있지만, 모든 아이들이 대학교에 갈 수도 없을 뿐더러, 모든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야 할 까닭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네 교육은 어찌 되어 있는가요? 대학교에 가지 않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조선일보>부터 <한겨레>까지 ‘대입 논설시험 대비’ 지면을 한 해 내내 특별판으로 찍어서 뿌립니다. 대학교 입시요강 따위는 틈만 나면 꽤나 넓은 지면을 내주며 싣습니다. 하지만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다운 마음씨를 기르고 착하고 맑고 싱싱한 생각과 몸을 추스르도록’ 하려는 교육 이야기를 다루거나, 우리 삶 이야기를 기사로 담는 신문은 아직 한 가지도 없습니다.

 

 굳이 언론매체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학교부터, 교육인적자원부 행정부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우리 부모님들 생각부터(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는가 하는) 달라지지 않는다면 선생들 몸가짐과 교과서 줄거리와 학교 터전과 대학입시 문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실마리를 잡을 수 없지 싶어요.

 

 아이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대학교까지 나온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요? 대학교를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요? 이 대목을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는 학교라면 제구실을 못하는 ‘교과서와 대학입학시험 지식 훈련터’가 학교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케스―매와 소년
- 글쓴이 : 베리 하인즈
- 옮긴이 : 김태언
- 펴낸곳 : 녹색평론사(1998.8.20.)
- 책값 : 5000원

저는 1998년 첫판으로 찍힌 5000원짜리 책을 사서 읽었지만, 요즈음은 물건값이 올라서 책값도 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케스 - 매와 소년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1998)


태그:#케스-매와 소년, #베리 하인즈, #소설, #교육소설, #책읽기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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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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