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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무래기의 락

 

가무락 조개 난 뒷간 거리에
빚을 얻으러 나는 왔다
빚이 안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낙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 베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백석-


시를 많이 고민했다. 한글로 쓴 시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인을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난 고민없이 백석을 이야기 한다. 한때 북쪽에 적을 두었다고 금지되었던 시인 백석, 지금이야 리얼리즘에서 최고로 치는 시인 백석 시인을 내놓고 이야기 하지만 옛날에는 그 자체가 불온했다.

 

백석을 품에 안고 산 지 20여 년. 과연 시란 무엇일까?  고민할 때 히든 카드로 내놓는 시인이 바로 백석이다.  

 

그 다음에 이야기 하고 싶은 시인은 임화다. 혁명시대에 전설적으로 나오는 시인도 물론 있다. 김혁이라고 1920년 대 항일투쟁때 활동했던 총을 든 시인 김혁. 그는 혁명가였지 시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그리고 박노해를 보았고, 김남주를 만났다.

 

김남주가 죽기 전 배재대학교에서 만나 잠깐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전사로 살다간 김남주, 그가 유일하게 만난 시인이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훌륭한 시인들은 사라져 갔고 남은 시인 중에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소개해보겠다.

 

어떤 해약

                                      -김광선-

다리를 절며 보험을 깨러 갔다
오래 묵은 친구처럼
나란히 걸어온 지병을 붙들고
보험을 깨러 갔다
내일을 준비해야 해요. 내일은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어요.
설계사 말에 혹해서가 아니라
오늘이 괴로워도 내일이 있어 사는 것
내일이 있다  믿어야
오늘을 견디는 것

보험을 깨러 갔다. 소변이 탁하고 혈변이 비치고
무거운 다리
더 무겁게 보험을 깨러 갔다 내 언제
나의 미래 설계해 둔 적 있던가

서로를 추스르기 위하여
우리는 가끔 믹서를 한다.

 

김광선은 대전에서 활동하던 노동시인이다. 현재는 주방장으로 현장에서 노동일을 하며 시를 쓰고 있다. 창비에서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절절하게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생활 이야기를 주로 시로 형상화 한다.

 

귀가

                                -임동천 -

오방떡을 사들고 집으로 간다.
어둠은 무겁고 춥지만
누구나 희망의 안쪽은 36도 쯤
식기전에 먹이자고 잠바 품에 넣고
감싸며 아이들에게로 간다

추운 겨울 오일장이면
호떡을 품고 오시던 어머니
속이 터지고 쭈굴쭈굴해진 호떡
고맙다는 인사도 잊게 했던
그 맛
어머니의 흐뭇해 하시던 눈빛을
이제 알 것도 같은데
식기전에 먹이자고 서두르는 걸음
자꾸 어머니처럼 절룩거린다.

 

우리 지역에 사는 대표적인 농민시인이다. 관념적인 시인이 농민들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농사 짓는 농민이 직접 자기의 삶을 그리기도 한다. 임동천 시인은 20년 가까이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시를 쓰는 진짜 농민 시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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