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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은 책이 너무 흔하다. 너무 좋은 책이 쏟아져 나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하는 시대이다. 게다가 이 좋은 책들을 수고스럽게 읽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각종의 진귀한 정보와 지식들을 얻어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만나는 대개의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내용을 귀기울이면 신문에서 본 정치 기사와 텔레비전에서 본 다양한 생활 상식과 인터넷에 올라온 신간 정보와 영화의 상세 리뷰 등을 통해 얻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바쁜 세상 하루에도 헬 수 없이 쏟아지는 많은 책과 영화 등을 다 접할 수는 없다.
 
 
 
실제 나도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의 검색창을 통해 얻는다. 그런데 이렇게 알게 된 지식은 나의 것이 아니여서일까. 금방 몇 시간 후에 잊게 된다.

책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 큰 무기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인생의 무기를, 이제 애써 수고하지 않아도 가만히 내것처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옛날에도 인터넷 검색창과 같은 지식과 정보를 노예를 통해 얻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셀'이라는 로마의 큰 부자인데, 그 사람은 대궐 같은 저택에 삼백명이나 되는 학자나 유명인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은 필사 서적을 많이 읽어 늘 화제가 풍부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초대한 '이셀'은 게을러서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도 없고, 따라서 그들의 화제 속에 끼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나머지 노예들 속에서 머리가 좋은 듯한 사람을 한 2백명 정도 골라 내어서 그 사람에게 각기 다른 책을 암기하도록 시켰다. 이들이 '살아 있는 도서관' 노릇을 하였다. 주연이 있을 때 이 사람들이 나와서 암기했다. 그리고 이셀의 '살아 있는 도서관'은 로마 안에 퍼졌다.
 
그리고 다시 성대한 연회가 열리는 날, 호로메스의 <일리아드>을 암기한 노예를 부르려 하였을 때, 심부름꾼이 나와 "주인님 죄송합니다. 일리아드가 복통을 일으켰습니다."라고 말해서 모두 배를 쥐고 웃었다는 이야기는, 현 인터넷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네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내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타오르는 책> 남진우
 
 
전에는 가을이 돌아오면 '독서의 계절'의 강조로 각 학교와 관공서, 언론기관에서 독후감 쓰기 대회를 유난스레 많이 열었다. 요즘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고 외치지도 않고, 사계절 구분 없이 독후감 공모 등 어디서든 책을 쉽게 살 수 있고 흔하게 빌릴 수 있는 시설이 많다.
 
시와 구, 동 단위 등 많은 도서관의 책들은 보관하기 힘들어 지하철 문고 등으로 개방된다. 웬만한 가정과 사무실에 비치된 책들을 다 읽기만 해도 '살아 있는 도서관'이 될 것이다.  
 
대개 마을 문고들은 동사무소 안에 자리해 있어 도서 대출이 많다. 그러나 도서 대출자가 많지 않아, 우리 마을 문고의 경우는 격일제라도 오후에만 운영되고, 마을 문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원봉사자로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과 비교적 시간이 많은 주부들이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쏟아져서 어느 책을 읽어야 좋을지 고민스러운 참 좋은 세상인데, 너무 많은 아이들이 빌려 읽어서 낡디 낡은 동화 책을 읽던 유년의 가슴만큼은,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읽어도 전혀 가슴에 불이 일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이 세상의 온갖 책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은 남몰래,
너를 저 자신 속에 돌아가 서게 한다.
<책>-'헤세'

태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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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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