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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인가? 타살인가?

 

지난 7월 10일 낮 12시30분경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지붕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된 고 최광진(38) 과장의 사망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유가족과 28개 단체로 구성된 ‘대한항공 고 최광진 과장 의문죽음 진상규명 대책위’는 ‘자살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자살로 결론 내렸다가 부산지방검찰청의 지시에 따라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책위는 “경찰이 초동수사를 잘못하고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했으며, 억지로 끼워 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고 최광진 과장의 부인은 만삭인 채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안에서 1인시위를 벌이다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두 달 보름이 넘도록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은 고 최광진 과장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사망 3일만에 장례를 치렀다. 그것도 화장해버렸다. 그리고 당시 고 최 과장의 시신에 대한 부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사망 당일 검시를 통해 ‘자살로 판단된다’고 밝힌 의사의 검시조서에 따라 처리했다.

 

고 최광진 과장 사망 사건 일지
- 7월10일 : 최광진 과장,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지붕 아래 사체 발견.
- 7월12일 : 유가족, 고 최광진 과장 시신을 화장해 장례 치름.
- 7월27일 : 부인 정은영씨,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안 1인시위 돌입.
- 8월16일 : 유가족,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 침해 사건 제소’.
- 8월21일 : ‘대한항공 고 최광진 과장 의문죽음 진상규명 대책위’ 구성.
- 8월23일 : 대한항공 측, 검찰에 재수사 요청.
- 9월 4일 : 고 최광진 부인 1인시위 도중 쓰러져 병원 후송.
-10월 1일 : 대책위, 부산고검 앞 기자회견 ‘경찰 직무유기 등 주장’

고 최 과장의 죽음과 관련해 남아 있는 자료는 사진이 거의 유일하다. 사진은 먼저 대한항공 직원이 촬영했으며, 뒤에 출동한 경찰이 촬영한 게 있다.

 

먼저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119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 최근 대책위는 대한항공과 경찰이 촬영한 사진을 입수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책위에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항규 민주노총 부산본부 노동상담소 소장은 “시신도 없고 부검도 하지 않았기에 유일하다시피 한 사진자료만으로 살펴 볼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등에서는 사진을 촬영해 놓고 뒤늦게 제출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놓고 보면 자살로 보기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유서가 없는데?

 

먼저 유가족들은 고 최광진 과장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자살이더라도 ‘단순 자살’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고인은 둘째를 임신(당시 7개월째)한 부인과 7살 난 딸과 함께 84살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유가족들은 “장남인데다 7년만에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부부나 가족관계가 나쁘고 말고를 논할 게재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대책위는 “자살이라면 유서가 있어야 하는데,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자살이 아니다”고 주장.

 

이에 대해 부산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음독․투신하는 자살사건 중 30% 정도만 유서가 있고 나머지는 없다. 유서가 없다고 해서 자살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투신자살자의 10명 중 9명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데, 고 최광진씨도 지붕에 신발이 놓여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일 지붕에서 발견된 고 최 과장의 신발은 자신이 출근하면서 신고 갔던 구두였다. 정비공장에서 일할 때는 구두 대신에 안전화를 신게 된다. 근무 중에 일어난 '자살‘이라면 지붕에는 구두 대신에 안전화가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게 대책위 측의 주장.

 

이에 대해 경찰은 “동료 직원들을 조사했는데, 고인은 평소 깔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평상시에도 안전화를 신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1시간 전에 항공기 결함시험을 위한 회의 때도 구두를 신고 있었다고 동료들이 진술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대책위 측은 “대한항공 정비공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화를 의무적으로 신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고인은 과장으로 중간 간부라 할 수 있다. 평소에도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고 버릇처럼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인이 구두를 신고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설명.

 

지붕 위에서 발견된 구두에 묻은 흰가루의 정체는?

 

지붕 위에서 발견된 구두에 묻힌 흰가루를 놓고도 논란이다. 구두 양 쪽에 흰가루가 묻혀져 있고, 더구나 한 쪽 구두에는 다리목 부위까지 묻혀져 있다. 대책위는 “굴곡이 있는 지붕인데, 정상적으로 걸어 올라가면 구두 바닥은 몰라도 구두 옆이나 특히 발목 부위까지는 흰가루가 묻지 않는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지붕에 난 골 사이가 7cm 정도인데, 골 사이에 빠지면 흰가루가 구두에 묻을 수 있다. 직접 구두를 신고 올라가면서 확인했다”면서 “구두 옆과 발목 부위에 흰가루가 묻은 것은 격납고 안에서 작업 도중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

 

하지만 대책위는 “구두는 제법 발목 부위가 높은데 거기까지 흰가루가 묻혀져 있다. 구두는 신은 채 올려진 게 아니고 임의적으로 누군가 흰가루를 묻혀서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30여 미터에서 추락했는데 시신 손상 적다?

 

대책위는 지붕에서 바닥까지 약 30m 높이인데, 추락했다면 시신의 손상 정도가 너무 적다고 주장. 사진으로 볼 때, 고인의 상체는 안면부에 약간 찰과상과 오른쪽 눈 부위가 찢어져 있고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고여 있는 정도라는 것.

 

그리고 하체는 다리가 부러져 있으며 약간 부어 있다. 머리 부분은 거의 손상이 되지 않았다. 또 대책위는 시신이 놓인 바닥에는 피가 너무 적다고 주장.

 

대책위는 “30여m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바닥이 딱딱한 시멘트콘크리트라는 점을 감안할 때 피가 낭자했을 것이고, 피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

 

이에 대해 경찰은 “얼굴 함몰도 심하고, 양쪽 팔과 다리 허벅지의 뼈가 다 부러졌다. 입 안 아랫니도 조각이 나 있었다. 투신했다고 해서 피가 많이 퍼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

 

또 경찰은 “투신하는 몸이 바로 땅에 달라붙지 않는다. 다리가 먼저 닿든 머리가 먼저 닿든 충격으로 튀어 올랐다가 넘어진다”고 말했다.

 

찢어진 옷, 소지품 상태 등 의문?

 

사진으로 볼 때 고 최광진 과장의 바지가 찢어져 있고, 웃옷도 가슴 부위가 10cm 가량 찢어져 있다. 대책위는 “떨어져 죽기를 결심한 사람이 자기 옷을 스스로 찢을 리는 없다. 옷이 찢어져 있었다는 것은 고인이 죽기 전 누군가와 멱살잡이를 하는 등 심하게 다투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

 

이에 대해 경찰은 “몸이 바닥에 닿으면서 충격으로 튀어 올랐다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바지와 웃옷이 찢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사진에 나타난 소지품의 상황도 의문이라는 것. 목에 걸었던 출입증이 줄에서 떨어져 있고, 시계도 줄은 떨어졌는데 몸통은 파손되지 않았으며, 출입증과 신분증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는 것. 또 휴대전화도 전혀 파손되지 않았고, 수첩과 지갑은 옷 속에 있거나 주머니에서 조금 나와 있는 정도다.

 

대책위는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시계 몸통과 휴대전화가 전혀 파손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줄에 연결된 출입증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는 것도 이상하다. 출입증 등이 시신 옆에 모여 있는데, 바람에 날려 흩어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첩이나 출입증 등 소지품은 물리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휴대전화와 시계가 옷 속에 있었다면 파손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먼저 119 대원과 장의업체에서 도착해 시신을 먼저 본 상태였는데, 그 때 1차적으로 수습하는 과정이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

 

과연 CC-TV는 없는가

 

과연 CC-TV는 없는가. 김해공항 곳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고 최 과장이 김해공항 대한항공정비공장 격납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추락해 자살했다고 할 경우, 지붕에 올라갈 때와 추락하던 장면이 찍힌 CC-TV가 있다면 이같은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증거로 충분할 것이다.

 

대책위 측은 “그 격납고는 APEC이 열렸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타고 온 비행기를 보관했던 시설이다. 김해공항은 중요한 군사시설이기에 곳곳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경찰은 격납고 지붕을 비추는 감시카메라의 설치 여부에 대해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그 부분은 상관이 없다고 판단해 확인하지 않았다.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사건은 자살로 종결했다. 유가족들이 의문을 제기해 그 부분을 풀어주기 위해 재수사를 하는 것이다. 아직 자살을 뒤엎을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그:#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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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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